조국통일의 초석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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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의 초석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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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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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의 이 원이 겨레를 구하리니

불교는 모든 존재가 홀로 고립된 것이 아닌 관계되어지고 변화,발전한다는 연기론(緣起論)의 입장에서 있다. 어떠한 절대자가 존재하여 우주만물을 생성하고 주관한다는 신(神)의 창조설, 주관설을 단호히 부정한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아래로부터의 철저한 현실 파악, 진단을 통한 형이상학적 세계의 이해에 도달한 것을 요구한다.

단순히 어떤 절대자의 가르침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믿어버리는 태도가 아닌 합리적이고 냉철한 인식의 토대 위에 신앙의 탑을 세울 것을 가르치는 종교가 또한 불교이다. 이렇게 불교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하향적(下向的) 가르침이 아닌 아래로부터 위로의 상향적(上向的) 가르침이라는 것은 불교의 대표적·핵심적 교리인 사제설를 통해 명백히 알 수 있다.

깨달음(道)을 얻기 위하여는 중생의 무지(無知)를 멸(滅)하여야만 가능하며 그러한 중생의 무지를 없애기 위하여는 그 근본원인(集)이 파악되고 이해되어야 하며, 최우선적으로 무지로 인한 중생의 실상(苦)이 왜곡됨이 없이 수용(受容)되고 진단되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바로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후 열반에 드시기까지 초지일관 어느 때나 반드시 설하셨다는 사제설이다.

불교는 세상을 등 돌리고 떠나버린 성격의 대상이 끝끝내 보듬고 나아가 바르고 완성된 사회로 할 성질의 변혁의 대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아무리 현재 이 세계가 모순으로 인한 고통과 혼란의 모습일지라도 이러한 공간(空間)을 저버리고 다른 데서 유토피아(불국토)를 찾을 것이 아닌 완성의 모습을 내포(內包)한 잠재적 불국토로 인정한다. 중생을 단순히 한없는 바보로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불성(佛性)을 간직한 위대한 부처의 모습으로 보듯이.

그런데 중생이 자신의 현 모습을 보고 자신이 끝없이 방황과 혼돈 속을 헤맬 어쩔 수 없는 존재로 체념하여 자신 속에 내재(內在)된 불성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중생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세계를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저주의 세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현 세계는 구제의 가능성은 희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세계관을 정립(定立)하는가는 장차의 세계의 향방(向方)을 가름하는 관건이 된다고 하겠다.

올바른 세계관을 지니고 현 사바세계의 모습을 부단히 정토세계로 화하기 위해 정진하는 이를 보살(菩薩)이라고 한다. 보살은 각자가 처한 곳에서 모순과 고통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변혁.발전의 노력을 기우리며(하화중생·下化衆生)또한 자기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상구보리·上求菩提) 원행자(願行者)이다. 그러면 한반도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의 불자(佛子)들은 과연 이 시대에 어떠한 노력을 기우려야 보살 본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 조국현실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분단상황이겠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말미암아 뼈아픈 분단상황을 초래한 오늘날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은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고통의 시련기이다. 같은 민족이라면 문화적 공동체를 이룩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집단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분단 40여년의 역사는 문화적 이질감만을 더해가고 있다. 하나의 조국강토에 태어난 한 민족이 강토가 잘린 상황에서 오고가기 힘든 형편에 처해 있고 비록 같은 조상의 피를 이어받았다 할지라도 너무나 다른 체제 속에서 공동체적 얼을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분단으로 인한 결과적 상황은 한민족을 총체적 고통 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 그런데 분단의 실상을 가장 첨예하고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155마일 휴전선인 것이다. 항시적 (恒時的) 긴장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휴전선은 민족의 아픔 그 자체이다. 어느 때 돌발적인 6.25와 같은 상황이 재연(再演)될 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조국 수호를 위해 휴전선 철책을 지키고 있다.

한국 불교의 특징은 호국불교적 입장을 견지해 온 데 있다고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호국불교의 참된 의미는 불국토 건설을 향해 부단한 정진을 기우린다는 불교적 세계관이다. 결코 정권적 차원에서나 운위(云謂)되는 협소한 의미가 아닌 것이다.

이 시대 한반도의 역사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 불교로서의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 불교로서의 진정한 호국은 어떤 것일까. 그 것은 민족을 총체적 고통 속에 처하게 한 분단상황을 극복하는 길일 것이다. 한국불교는 올바른 의미에서의 호국불교의 자랑스러운 역사 전통의 맥을 이어 오늘의 한민족의 고통의 상황을 구원해야 한다.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불교계는 20여년 전서부터 군에 승려(법사)를 파견, 대다수가 젊은이인 군에서 그들을 화랑의 후예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사상적.정신적 가르침을 펴고 있다. 통일이라고 하는 시대적.역사적 책무를 완성하는데 잇어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투철한 역사인식을 지녀 통일의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도록 정신적 가르침을 주는 것이리라.

지금 이 시간에도 땀 흘리며 훈련에 열중하는, 혹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철책을 지키는 병사들과 함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을 법사님들의 대열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나의 최소한의 헌신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겨레를 위한 나의 원은 다음의 ‘호국발원문’으로 대신할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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