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前生記憶 實例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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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前生記憶 實例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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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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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실증

[1] 걷는 것을 신기하게 여긴 아이
一九五八년 十二월 二十一일, 레바논(Lebanon) 산악 지방의 작은 마을 코나엘(konaayel)이라는 곳에 이마드 . 엘라와르(Imad Elawar)라는 아기가 탄생하였다. 코나엘 마을은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로부터 동쪽으로 十五마일 가량 떨어진 곳인데, 레바논, 시리아의 이 근방에는 드루즈(Druze)교라는 종교를 믿는 교도들이 살고 있는 지방이다. 이 드루즈교라고 하는 것은 十一세기 경에 시작된 기독교의 일파인데 현재로는 전 세계에 二十만정도의 교도가 있을 뿐이다. 이 교도들은 레바논 . 시리아 두 나라의 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엘라와르씨 집안도 이 종교의 교도였던 것이다.

『저것 보세요, 아빠. 이마드가 걸음마를 했어요.』

아기 엄마와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인 아기 역시 무척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커 가면서 이 「걷는 능력」에 대해서 좀 이상스러울 정도로 기뻐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가끔, 『내가 걷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야.』

하는 말을 하곤 하였는데, 어린 아이가 자기가 걷게 된 것을 다행하다고 말한다고 하는 것은 흔히 보지 못한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색다른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엄마가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수술했기 때문이야?』

이런 질문은 엄마를 당황하게 하곤 하였다.

[2] 전생 이야기를 하는 어린 아이
이 아이는 생후 一년 반 내지 二년 되던 해부터 가족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 이름이라는 것이 「자밀레(Jamleh)」와 「마하모우드(Mahmoud)」였었다. 게다가 자기는 전에 「보우함지이(Bouhamzy)」씨 댁 사람이었다고도 말하는가 하면 크리비이(Khribi) 마을에 살고 있었다고도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크리비이」의 발음을 「트리비이」라고 하더니 오래지 않아 「크리비이」로 바로 잡았다.

『크리비이라니 그게 어디냐?』

하고 아버지가 물었더니 이마드는,

『아주 저 먼 곳 이예요.』하고 말했다.

실은 코나엘 마을 가까이에도 이런 이름의 마을이 있는데 이 아이의 말로 보아서는 그 곳이 아닌 더 먼 곳 어딘가를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또 손가락 둘을 나란히 보이고서는 『총이 있었는데 총열이 쌍으로 된 총이었어.』라고 말하곤 하였는데 그 말은 바로 자기의 전생을 지적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 아이는 곧잘 혼잣말로 전생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하기도 하여 하루는 아버지가 크게 나무람을 주었다.

『그 따위 소리 자꾸 하지 말아, 너는 거짓말쟁이야.』

이들이 신봉하는 드루즈교는 정직(正直)을 굉장히 큰 종교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에게라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심한 꾸지람을 뜻하는 것이며, 이 의도는 자기 아들로 하여금 전생 운운하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자는 데에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3] 낯 모르는 사나이에게 달려가
이마드가 두 살이 지나서의 일이다. 어느 날 할머니 손을 잡고 거닐고 있었는데, 별안간에 할머니 손을 뿌리치고는 저 쪽에 있는 낯 모를 남자에게로 달려 가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하고 부르며 달려가더니 그 사나이의 두 다리를 껴 안는다. 사나이는 얼떨떨해 하며 물었다.

『아가야, 너는 나를 알고 있니?』

『알고 말고, 한 동네 아저씨 아냐?』

『한 동네라니?』

이 사나이는 살림. 엘. 아슈카(Salim el Aschkar)라는 사람인데 분명히 이마드가 말한 대로 그 먼 곳에 있는 크리비이 마을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사나이가 얼떨떨한 것은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이마드라는 이 아이를 본 일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살림은 코나엘 마을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에 이 마을에 종종 다니러 오곤 하였었다. 이러한 우연한 만남의 현장을 보고 할머니는 깜짝 놀랐으며, 할머니의 말을 전해 들은 가족들 역시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4]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다.
이마드가 만 4살 되던 해 가을에, 마아셀. 쇼우프(Maaser Shouf) 마을로부터 코나엘 마을을 찾아와서 이마드네 집을 방문한 여인이 하나 있었다. 쇼우프 마을은 이마드가 말한 「저 먼 곳에 있는 크리비이」마을 이웃이었기 때문에 이 여인은 크리비이 마을의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말에 의하면, 이마드가 입에 올리고 있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크리비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여인은 딸네 집이 이 동네에 있는 관계로 이 곳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말하고 있는 케말. 조불라트(Kemal Joumblatt)라는 사람은 세상을 떴어요.』라고 이 여인이 말하자 이마드는 금방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케말이라는 사람은 이마드가 늘 얘기 해 왔던 「친구」(전생의) 였던 것이다. 이마드가 하도 슬퍼하길래 이 여인이 타이르느라.

『거짓말이야, 아줌마가 네 마음을 떠 보느라고 한소리야, 슬퍼하지 말아.』하니까 이 어린 아이는 버럭 큰 소리로 『나가! 이 거짓말장이야.』하고 성낸 얼굴을 짓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이마드가 자기의 친한 친구라고 말해 왔던 케말이라는 사람이 실재의 인물임이 확인되었다.

자기 어린 아들의 말을 진실한 것이라고 생각지않고 있었던 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 어린 것의 말이 사실일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일로 해서 一九六三년 十二월에는 (이 아이의 나이 만 5살이었던 해) 아버지가 직접 크리비이 마을까지 가기에 이른 것이다.

[5] 생각지도 못한 행운
여기서 잠시 내가 이 사례를 조사하게 된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는 1962년에 브라질에서 10건 정도의 환생 사실 조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조사에 협력해 준 몇 사람의 통역 중에 마침 레바논 태생의 젊은 통역이 한사람 끼어 있었다. 이 사람은 포르투갈 말과 프랑스 말에 능통한 통역이었는데 나와 함께 사례 조사를 진행해 가던 중에 그 사람 스스로도 이 테마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선생님, 저희 나라에도 가끔 환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상한 아이들이 발견된답니다.』

『어! 그래?』

이 젊은이의 말에서는 지극한 진실성이 엿보였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이 사람의 모국인 레바논에 한번 가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젊은이에게 자기들의 모국어로 쓴 소개장 하나를 받아 냈는데 그 수취인(受取人)이 자기의 형이었다. 나는 이 한 통의 소개장을 들고 레바논에 건너가서 그의 형이 살고 있는 코나엘 마을까지 달려온 것이다. 통역의 형은 이 근방 사람들의 관습에 따라 따뜻한 베이루트로 피한(避寒)하러 가서 집에 없는 때였다. 그러나 길을 묻고 있었던 나에게서 레바논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낸 마을 사람들은 엘라와르씨댁 아이가 그런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면서 그 집으로 안내해 준 것이다. 나로서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행운이었는데 이 사례에서의 나의 행운은 단지 한 건의 사례를 내가 만나게 되었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환생 사례의 조사에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행운을 만난 때문인데 그 내용은 차츰 밝혀지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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