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달,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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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달, 서원
  • 관리자
  • 승인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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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지심 연작소설

아침 청소를 끝낸 강 여사는 다관(茶罐)에 물을 부어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유리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은 거실을 깊숙이 비추고 있는 선반 위에 올려놓을 바이올렛이 아침햇살 속에서 보라색 꽃잎을 앙징스럽게 터트리고 있었다.

‘저 햇빛은 어떻게 내집 거실까지 찾아와 작은 바이올렛 한 송이를 피워냈을까?’

강 여사는 푸른 잎새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여리디 여린 보라색 꽃잎을 바라보며 혼자 감격해 했다. 정말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었다.

태양은 지구에서 1억5천만km 떨어져 있다고 하니 자신의 거실을 비추고 있는 햇빛은 1억5천만km를 달려와 여기 이 자리에서 보라색 꽃 한 송이를 피워낸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보라색 꽃을 피워낸 것은 햇빛이 아니다. 꽃은 1억5천만km의 허공을 달려온 햇빛과 화분속에 심어있는 작은 바이올렛과의 만남. 그 만남의 자리에서 피어남 것이다. 생명의 꽃은 만남에서 피어난다. 만남만이 생명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만남이 다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여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웃들의 삶을 통해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렇다면 어떤 만남에서만 생명의 꽃은 피어나는 것인가?

가스불 위에 올려놓은 다관에서는 물 끓는 소리가 돌돌돌 하고 들려왔다. 강여사는 불을 줄여서 조금 더 물을 끓이다가 불을 끄고 다관과 다구를 챙겨 들고 거실로 왔다. 햇빛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거실에 앉아 더운 물로 다기(茶器)를 데우고, 더운물에 차를 넣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고, 우러난 차를 찻잔에 따라 빛과 향기를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고 있노라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자족감이라고 할까? 차와 햇빛, 더 무엇을 취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했다. 강여사는 등에 와 닿는 따뜻한 햇빛과 손안에 들려져 있는 찻잔의 따뜻한 온기를 함께 즐기며 두 잔 세 잔 … 차를 따라 마셨다.

자신의 입과 몸이 다같이 맑혀지기를 기다리며.

한참 동안 그렇게 차를 마시고 있던 강여사는 다구(茶具)를 치우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초에 불을 켰다. 그러자 거실 안은 은은한 향 내음으로 가득찼다.

강여사는 두손을 모아 합장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마음이 더욱 편안해졌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

상단예문을 드리고 있는 강여사 가슴속은 뜨거운 감동으로 차 올랐다.

우주법계를 지키시면서 법계 속의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 불보살님과 화엄성중님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를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전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셨을 무수한 스승님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일을 하기위해 노심초사하고 계신 무수한 스님네들… 이분들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바늘귀만한 지혜라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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