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이 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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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지는 법
  • 관리자
  • 승인 2009.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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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멋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바둑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이다. 그러니까 어느덧 3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의 바둑 급수는 겨우 3급. 타고난 기재가 시원치 않음을 스스로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취미로 두는 아마추어 바둑에 급수의 높낮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바둑을 좋아하는 그 애호가로서 만족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바둑으로 밤을 새운 일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요즘은 기운이 딸려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너댓 판 두면 허리가 아파서 더 계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전화를 해오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 나가는 버릇은 여전하다.

바둑을 두면 잡념이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다음 한 점을 어디에 놓을까 하는 그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원고를 쓰다가 생각이 잘 풀리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지면 바둑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바둑을 두면 골치가 아프지 않느냐 하는 것은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사람의 오해에 불과하다. 노이로제 환자에게는 그 손쉬운 치료법으로 권하고 싶은 것이 바둑이다.

실력이 별로인 만큼 나는 바둑에서 이기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대신 그렇게 두면 틀림없이 지는 방법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욕심을 내서 더 많이 이기려고 덤벼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실은 최근에야 깨닫게 된 이 사실은 욕심의 억제를 나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삼독의 첫째 항목이 바로 그 욕심이 아니던가.

바둑은 물론 승패를 겨루는 놀이의 일종이다. 그리고 수많은 종류를 헤아리는 그러한 놀이는 내기를 해야만 재미가 난다는 게 일반적 통념이다. 나는 할 줄 모르는 마작이 놀이중에 제일 재미있다고 하는 친구가 있기에 물었다.
“내기를 하지 않는 마작도 재미가 있는가?”
“재미는 무슨 재미, 김빠진 맥주보다 못하지.”
바둑은 그렇지 않다. 내기를 하지 않아도 정신을 집중해서 머리를 깨끗하게 맑힐 수 있는 고상한 놀이가 바둑이다.

아니 내기를 하면 그러한 고상함이 순식간에 저질로 타락해서 대국자로 하여금 언성을 높이도록 만드는 것이 바둑이다. 그렇게 언성을 높이고서야 어찌 머리가 맑아질 것인가.
아직도 나는 바둑을 두면 머리가 맑아지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틀림없이 지는 방법을 피하기 때문에 전보다 덜 진다. 게다가 또 나이에 밀려 너댓 판 두고는 일어서 버리니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지 않는 이득도 있다. 겨우 3급자리 실력의 바둑으로 이처럼 많은 것을 얻는데 달리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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