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운동의 추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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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운동의 추진과정
  • 관리자
  • 승인 2009.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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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당위성을 중심으로 본 한국불교 정화운동(2)

정화운동추진에서 나타난 주요쟁점

  광복이 되고 국권이 회복되자 선학원에는 청정수행승들이 줄을 이으며 드나들었다. 불교도 광복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선학원에서 수행승들을 위한 수행사원의 배분을 요구한 것은 광복 직후의 혼란기와 6∙25의 격전기를 거치고 난 이후의 일이다. 선학원의 비구승려들이 대처교단인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에 처음에 요구한 것은 수행사원의 배분이었다. 1천의 독신수행승들이 기거할 수 있는 수도사원으로 오대산 월정사, 가야산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법주사, 선암사 6개사 내지 8개사를 요구한 것이다.

  박성하원장이 이끄는 교무원측에서는 광복이후 스스로 자성하자는 주장이 있어, 문란해진 사원의 분위기를 정화하고 승규도 바로 세우자는 시도가 있었으나 전혀 실효를 거둘 수가 없었다. 심산의 대사찰만이 아니라 각급 사원이 놀이터 내지는 유흥장으로 변하여 법당앞의 누각에는 술동이가 놓이고 돼지 다리가 기둥에 걸렸으며, 취객의 가무음곡이 끊이지 않았다. 사원의 방사는 유흥객들의 숙박이나 휴식처로 제공되고 승려들은 돈을 벌었다. 큰 사원은 수도 기도하는 도량이 아니고 사업장이 되어 승려들은 양복에 가방을 들고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처자가 있는 속가로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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