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에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순정한 남자, 지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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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에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던 순정한 남자, 지효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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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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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 / 지효 스님의 손상좌 무비 스님
▲ 지효 스님

“지효 스님은 제 할아버지 스님인데, 평생 단 한 번도 법상(法床)에 오르지 않으셨던 어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청을 해도 절대 법상에 오르지 않으셨습니다. 법상에 오른다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계셨던 것이죠. ‘허물이 없고 깨달음을 이룬 수행자만이 법상에 오를 수 있는 법인데 어떻게 내가 오르겠는가?’ 그렇게 평생 당신을 채찍질하며 수행의 날을 벼리셨습니다. 저보고 사람들이 ‘이 시대 최고의 강백’이라고 일컫는데, 부득불 매일 법상에 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지효 스님이 떠오릅니다. ‘법상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하고 묻게 되는 거죠.”

안팎이 여일하고 예외를 두지 않았던 수행자 _____ 단 한 번도 법상에 오르지 않았을 정도로 스스로에게는 엄격했으며 깨달음에 대해 순정했던 지효 스님. 스님은 정화운동 초기에 홀로 할복을 감행했을 정도로 청정수행에 대한 의지가 서릿발 같았고, 전국 제방선원을 비롯해 천축사 무문관 6년 정진을 타파했던 몇 안 되는 어른 중 한 분이었다. 불국사 주지를 비롯해 세수 70이 넘어 범어사 주지를 다섯 차례나 역임하셨을 정도로 이사(理事)의 경계를 두지 않았지만, 어떤 자리에서나 수좌로서의 면면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주지 소임을 보면서도 언제나 꼿꼿하게 좌선하고 있었고, 공부하는 선승을 만나면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겸손한 몸짓으로 예를 갖추곤 했다고 한다. 선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각별했으면 한 살 터울로 사형사제 연을 맺었던 성철 스님 회상에 기꺼이 들어가 배움을 청하고, 손상좌였던 무비 스님과 나란히 입방해 깨침의 빛을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지효 스님은 무비 스님에게 그리 다정했던 할아버지 스님은 아니었다. 불국사, 범어사, 해인사에서 같이 오래 살았으면서도, 살뜰한 기억이나 둘만의 내밀한 에피소드 하나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냉엄한 수행자였다. 지효 스님은 짙은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앉은 수려한 용모를 지니셨다. 무비 스님은 언젠가 가야산을 헤치고 내려서는 지효 스님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신선이 아닌가 착각될 정도로 그 모습이 남달랐다는 얘기다. 그래서 처음 무비 스님이 출가했을 때, 당시 주지로 있던 지효 스님이 은사가 되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기도 했다 한다. 선승의 선기가 어린 눈에도 특별하게 다가왔던 까닭일 것이다.

“당시 행자가 네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은 주지스님 상좌가 되고, 두 명은 저의 은사이신 여환 스님 상좌가 되었습니다. 물론 제 은사이신 여환 스님도 훌륭한 수행자이셨지만, 어떤 인연인지 몰라도 살기는 지효 노스님하고 더 많이 살았습니다. 따뜻하다? 글쎄요. 지효 스님은 인간적인 정보다는 수행자의 도리에 입각해서 모든 인연을 대하셨던 것 같아요. 어떤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으셨던 안팎이 여일한 어른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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