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의 성좌들] 몽산 덕이 선사 蒙山 德異 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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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의 성좌들] 몽산 덕이 선사 蒙山 德異 禪師
  • 광덕 스님
  • 승인 2009.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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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의 성좌들

스님의 호는 <몽산>이시고 그밖에 호도 여러 개를 쓰셨다. 이름은 <德異>인데 때로는 <古筠比丘>, <休休庵主>, <殿山和尙> 이라고도 했다. 출생지는 중국 강서성 처육도 시양이며 고려 고종 원종 무렵 우리나라 스님들과 자주 서신왕래가 있었던 우리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스님이시다.

1. 成長과 時代

蒙山 德異禪師몽산스님은 중국스님이면서도 우리와는 퍽이나 가까운 사이로 느껴지는 스님중의 한분이다. 그것은 아마도 스님의 법어가 극히 친절해서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막힌 곳을 틔어주는 듯한 그런 점이 그럴른지 모른다. 그래서 스님의 법어가 우리나라에서 출판되고 이조때에 와서 번역까지 보았던 것이다. 또한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스님과 우리나라 스님들과의 사귐이다.

스님의 재세기간은 분명하지 않으나 출생은 一, 二三一년이고 도를 깨치신 것은 三十七세경으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스님의 교화시기는 그 이후가 된다. 우리나라 고려 고종 원종 충열왕 때가 된다. 그 시대에 중국은 몽고가 득세하여 남송이 망하고 원이 일어서던 그 때다. 우리에게는 몽고병이 수없이 쳐밀려 왔고 엎치락 위치락 민족의 사투는 계속되고 그동안 우리 강토는 쑥밭이 되고 한편 강화에서는 대장경판이 조성되고 몽고병은 일본을 치다가 패배하고 하던 그때다. 그래서 몽고와 고려와의 사이가 화평해지자 우리나라 스님들과 자주 서신 왕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은 스님의 법요다.

고된 수행의 길을 성실 一편으로 밀고 올라가 마침내 대오하신 스님은 그 법어가 실로 구구절절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남는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스님의 호는 <蒙山>이시고 그밖에 호도 여러개 쓰셨다. 이름은 <德異>인데 때로는 고균비구, 휴휴암주, 전산화상이라고도 했다. 출생지는 중국 강서성 처육도 시양이다. 뒤에 자세하게 애기하겠지만 晥山 正凝스님의 법을 이었으니 남악 회양스님 아래로 二十一世가 된다.

2. 道를 깨치기 까지

몽산스님의 오도 경위는 수행의 길을 걷는 우리 후생에겐 아주 매력적이다. 참선의 묘도가 있는 것을 안 것이 二十세때, 그 이후 줄곧 공부를 잊지 않고 지내다가 三十四세에 병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기면서 크게 발심하여 출가하고 용맹스런 정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환산스님의 풀무질과 방망이질 아래 대오하였다.

다음은 스님의 법어중 자신의 오도 경위를 말씀하신 부분을 살펴보기로 한다. 스님의 용맹스런 발심과 각고 전진과 또한 공부인은 마땅히 正知見인 선지식을 만날 것을 강조하고 있음이 특히 감격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3. 죽을 땅에서 분발하다.

내 나이 二十때에 참선도가 있는 것을 알고 三十二에 이르도록 十七.八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설법을 듣고 정진하였으나 도무지 제대로 공부를 지어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완산장로”를 찾아 뵈오니 “無”자를 참구하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밤낮으로 반드시 생생한 정신으로 지어가되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 하여 끊임없이 하라. 투철히 깨치지 못하거든 쥐가 나무궤를 뚫듯이 결코 화두를 바꾸지 말고 꾸준히 지어가라. 이와같이 지어가면 결정코 발명할 시절이 있을 것이다.” 하시더라.

그로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궁구하였더니 十八일이 지나서 한번은 차를 마시다가 문득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심에 ‘가섭’이 미소한 도리”(염화미소)를 깨쳤다. 그때 나는 환희를 이기지 못하여 三十四장로를 찾아다니며 공부가 바로 된 것인지 결택을 구하였으나 아무런 말씀을 듣지 못하였고 다만 어떤 스님이 일으기를 “다만 번뇌가 끊긴 맑은 마음이 이것이 海人三昧이니 다만 이 해인삼매만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다른 것은 모두를 상관하지 말라”하시었다. 그래서 이말을 믿고 두 해가 지나갔다

景定 五년(一二六四) 六월에 泗川의 重慶에서 이질병에 걸렸는데 극도의 상태에 빠져 하루 밤낮 동안에 백 번이나 위극이 극심하여 곧 죽을 지경에 빠졌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라고는 없고 해인삼매도 아무 용맹 못썼으며 종전에 좀 알았다는 것도 또한 아무 쓸데없어 입도 달싹할 수 없고 몸도 꼼짝할 수 없으니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 이었다. 업연경계가 일시에 나타나 두렵고 떨려 갈팡질팡 할뿐 어찌할 도리가 없고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 닥쳐 왔었다.

그때에 내 굳게 마음 먹고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일어났다. 그리고 가족에게 후사를 분부하고 향로를 차려 놓고 그 앞에 좌복을 높이고 일어나 앉아 삼보님과 팔부성중에게 목도를 드렸다.

“이제까지의 모든 不善業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원하옵나니 이 몸이 이제 수명이 다하였거든 般若의 힘을 입어 정념대로 태어나서 일찍이 출가하기를 바라오며, 혹 병이 낫게 되거든 곧 출가하여 중이 되어 속히 크게 깨쳐서 널리 후학들을 제도하게 되어지이다.” 이와같이 기도하고 나서 저 “無”자를 들어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고 있었다. 얼마 아니하여 장부가 서너번 동하는 것을 그대로 버려 두었더니 또 얼마 있다가는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았으며 또 얼마 있다가는 몸이 없어진 듯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화두만이 끊이지 않고 뚜렷하였다. 밤 늦게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니 병이 반은 물러갔기에 다시 앉아 三경 四점(0시 三十五분경) 이르니 모든 병이 씻은 듯이 없어지고 신심이 편안하고 아주 가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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