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으로 인생관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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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으로 인생관을 바꾸자
  • 관리자
  • 승인 2009.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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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불교의 믿음은 인생관이 바뀌는 것으로 시작되는가 한다.
이제까지는 이 몸을 보기를, 세계 속의 자기라 보고 물질 환경과 그 조건 속에서 자기 생명을 보며, 육체적 감정적 요건을 자아로 삼아 왔다. 거기서 안정도 평화도 기쁨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므로 부터 우리의 생각하는 바, 보는 바가 달라지기 시작하단. 이 몸은 견고한 듯해도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고, 나라고 하지만 나라는 실체는 잡을 길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물질도 자연적 현상도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어 가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 역시 실체가 없는 공허한 환상임을 알게 된다. 오온(五蘊)은 다 공한 것이라든가 제행은 무상하다든가 제법은 무아라든가 하는 가르침에서 더욱 이제까지의 어리석은 생각과 집착이 허물어져 버린다. 이렇게 되어서 형상 있는 것, 얻을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런데서 불자가 지혜의 눈이 열리고 인간이 바로 서는 것이다.

 허물어진 것은 허무하고 없는 것이었으니 실로는 허무에 집착했던 망견이 허물어지는 것뿐이다. 그래서 참자기에 눈을 뜨고 참으로 있는 것에 새로운 감동을 얻게 된다. 불자의 인생관은 이렇게 되어서 참으로 있는 것, 참으로 사는 길을 보아가는 것이다.

 경에서는 불성(佛性)의 보변(普徧)과 불신(佛身)의 상주(常住)를 역설하신다. 허무한 것은 허무하고, 허무하지 아니한 진실을 정면 우리에게 들이대는 말씀이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형상이 아니다. 물질이 아니다. 참된 존재는 형상으로 잡을 수 없다. 실로는 법 그대로인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 그러하고 일체 존재가 그러하다. 그것은 형상을 보는 눈, 형상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알 길 없지만 원래로 진리 그대로 완전하고 원만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한 물건도 없다. 그렇거니 어찌 대립이 있을 손가. 완전한 법성생명 그대로의 원만성이 영원할 뿐이다. 거기에는 불행이 있을 리 만무하고 악이 있을 리 만무하다. 불자의 믿음은 여기에 이르러서 그 인생관이 바로 서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법뿐이요. 법은 영원하고 원만하고 내 생명으로 완전하다.

 불자의 기쁨도 용기도 권능도 환희도 이런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불자는 이러한 인생관을 확고히 가지고 있는 자다. 그러므로 설사 눈앞에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거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직 진리의 원만성과 일체 성취의 공덕성을 보고 항상 희망을 불태우고 고난을 이겨가는 것이다. 이런 밝은 신념은 그 사람의 온 마음 온 표정, 모든 행동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통하여 밝은 광명이 뻗어 나가고 다시 성취 조건등을 불러들이고 새로운 성장을 도모해 간다.

 이와 같은 밝은 신념, 밝은 인생 태도가 그의 온 생활을 지배하게 되니 밝은 벗은 모여 들고 맑은 요건은 갖추어 가며 밝은 소망은 이루어져 간다. 불법을 믿어 기쁘고 행복하자는 것은 한낱 자기 위안 자기도취만이 아니다. 참된 진리에로 인생관이 바뀌었다는 것이 이와 같이 자기를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사업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불자라고 하면서 물질이나 육체에 집착하는 것은 불자가 아니다. 모든 것은 허무하고 인간은 업보 소생이며 그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자가 아니다. 모름지기 참된 믿음에 돌아와 진리인 생명, 부처님의 공덕 세계 그 속에서 무한 창조를 펼쳐나갈 끝없는 희망과 광명을 머금는 자가 불자가 할 것이다.

 이 밝은 믿음, 밝은 인생관으로 우리 모두에 대하고 우리 생명을 역사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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