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社會에 있어서의 大乘菩薩의 理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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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社會에 있어서의 大乘菩薩의 理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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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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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세계 불교학술회의 발표논문 要抄>

1. 현대문명의 막다른 골목


  우리들은 일찍이 인류가 경험한 일이 없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문명혜택을 입고 있다.

  현대사회는 정보화 사회라고 불러지는 바와 같이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에 의해서 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얻을 수 있고 칼라의 영상으로 세계정보를 일순간에 볼 수가 있다. 또 교통기관의 발달은 지구의 거리를 축소시키고 가고 싶으면 불과 몇 시간에 세계 끝까지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기술혁신이 가져온 현대문명이 찬란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옛날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아니하다. 현대사회는 풍부한 문명을 우리에게 주고 있지만 옛사람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많은 문제를 안은 채 고뇌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우리들이다. 예컨대 공해에 의한 자연파괴를 비롯하여 자원문제·식량문제·인구문제 등 많은 어려운 과제가 산적하고 있다.

  우리들 인간이 현대사회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다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다. 인간이 물질적ㅇ로 행복한 생활을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물·가스·석유를 물자로 필요로 한다. 그런데 지구상의자원은 한계가 있는데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없다. 지구상의 자원이 유한한데 인간욕망 만이 비대화한다면 결과는 어찌될까? 반드시 경쟁이 될 것이다. 경쟁은 국가 간에서는 전쟁이 되고 개인 간에서는 투쟁이 된다. 2차대전 이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은 세계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쟁은 상대를 멸망시켜야 자기가 생존하고 개인 간의 경쟁도 상대방을 실각시키지 않으면 자기 영달은 없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행복의 추구를 하면 할수록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살 수 없는 것 같은 불행에 직면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너무나 불행한 사실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면서 실은 불행을 향하여 동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현대문명의 비극이며 모순이며 현대사회가 봉착한 막다른 골목이다.


2. 이기심과 경쟁원리


  현대문명을 발달시켜 온 동력은 이기심의 추구에 있다 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이익의 증진을 위해서 노력하고 발명 발견을 거듭하면서 진보해 왔다. 개인의 이기심이나 국가의 내셔널리즘이 인류문명발달의 동력의 하나임은 의심할 바가 없다. 자유경쟁의 원리야말로 현대문명의 모태다. 그러나 경쟁원리가 너무 지나친 경제사회는 현대사회의 비극화의 한 원인이 됨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현대사회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불행한 행동패턴을 도식화하면 「경쟁적 개인의 노력→사회내의 적의→고립→불안→경쟁적 노력의 증대」가 된다고 한다. 이 도식은 미국이나 일본의 사회에서는 잘 들어맞는 도식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경쟁원리는 집단에게나 개인에게나 다 같이 적용된다. 가장 커다란 집단간의 경쟁은 국가사이에서 행하여진다. 옛날에는 영토나 자원의 약탈을 무력의 수단으로 해왔으나 현재에는 복잡한 형태의 경제전쟁·자원전쟁으로 행하여진다.

  하여튼 과도한 경쟁원리에 의하여 살아가면 과연 인간은 행복해질까?

  이와 같은 경제사회에 사는 인간은 자기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타인지향형의 인간이 된다. 그것은 타인이나 상사로부터 잘 보이거나 좋은 평가만을 염두에 두게 된다. 타인의 평가에 적적으로 자기가치를 맡기고 있는 것이다. 이야말로 주체성 없는 패배자의 생활이다. 평가나 진리는 남이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발상을 전환하라 - 이기주의에서 이타주의에로


  그런데 자원문제나 국토문제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원리에 서서 살아가는 한 인류는 파멸에 이를 것이 명약관화하다. 지금이야말로 종래의 인간의 생활방식의 기본이 되었던 이기심에 의한 이익의 추구라는 사고방식을 근본에서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 인간성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기심과 경쟁원리에서 생활하는 대신 이타주의를 생활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현대사회는 붕괴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이타주의로 향하기 위해서는 정신생활의 근본원리를 자비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자비는 최고의 우정의 뜻이며 바꾸어 말하면 서로 동포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경쟁원리에 입각하는 한 「인단은 인간에게 있어서 이리 떼」이고 타인은 단순히 이용가치 있는 도구적 존재이지만 불교에서는 타인은 최고의 우정으로 보는 동포의식이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타주의를 철저히 행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한다. 이러한 보살이 실천해야 할 덕목을 보살도라고 하는 데 구체적으로는 여섯 가지 덕목으로 된 6바라밀 즉 6도라고 불린다. 1, 보시 2, 지계 3, 인욕 4, 정진 5, 선정 6, 지혜다 이 6도 중 모든 덕목이 보살도로 중요하지만 특히 대승불교에 있어서는 제 1의 보시가 근본이 되고 있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보시는 또한 보살이 중생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해가는 방법인 사섭법(四攝法)의 하나이기도 하다.

  보시야말로 보살도의 근본이며 안목이다. 보시를 중심으로 한 보살도의 실천이야말로 이기주의를 이타주의로 바꾸는 정신혁명의 원점이 되는 것이다. 보시야말로 이기심이나 경쟁원리를 행동력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대하여서 자비로서 사람들을 접하는 사회의 연대성을 확립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생활양식이다.


4. 사섭법의 현대적 의의


  보시는 대승보살도의 실천덕목의 근본이므로 6도의 첫째에 열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섭법의 제1덕목이기도 하다. 사섭법은 사삼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네 가지 방법일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상 없어서는 아니 되는 네 가지 덕목이기도 하다.

  사섭법이란 1, 보시 2, 애어(愛語=부드러운 말을 쓰는 것) 3, 이행(利行=신체의 행위, 입으로 말하는 일,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의 행위에 의한 선행으로써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 4, 동사(同事)=상대의 입장에 서서 행동하는 일) 이 네 가지 덕목은 모두 사람들에게 친근한 마음을 일으키므로 써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경쟁원리에 서서 「사람은 서로 이리(늑대)라고 하는 사고방식」과는 정반대의 발상이다. 주는 일, 부드러운 말을 거는 일, 협동하는 일 등이 얼마나 현대사회에 결핍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개주 영평도원(1200-1253)은 그의 저서인 「정법안장(政法眼藏)」 속에서 특히 사섭법을 문제로 하여 이를 논하고 있다. 먼저 보시에 대해서는 「보시란 탐내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탐(貪)·진(嗔)·치(癡)를 3독이라고 하나 3독의 첫째는 탐내는 것이다. 유교경(遺敎經)에서는 욕심 많은 사람은 이익을 좋아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고뇌도 또한 많다라고 하였고 욕심을 적게 가지라고 경고하고 있다. 도원은 보시를 행할 경우에는 물건의 대소를 생각하지 말고 1원의 재물도 한마디의 법도 보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에어에 관해서는 「중생을 볼 때에는 먼저 자애의 마음을 일으키고 자애의 언어를 주라」라고 한다. 애어는 능히 하늘을 돌리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행을 행할 경우에는 「과보나 사례를 바라지 말라」고 되어 있다. 이타를 먼저 행하면 자기는 손해 본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행은 자타를 함께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확신을 가지고 단언하고 있다.

  동사란 합동하는 일이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일을 행하는 것인데 도원은 동사를 알 때 자타일여(自他一如)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보살의 행원(行願)이다. 동사를 실천하려면 부드러운 얼굴로 사람들에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기심과 과도한 경쟁의식을 버리고 보시를 원동력으로 하는 인생관을 확립할 때 사람들은 자리주의로부터 이타주의로 전환할 수가 있고 사섭법을 현대사회의 실천덕목으로 하며 사람들은 서로를 동포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사회에 있어서 정신을 변혁하는 일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과도한 경쟁의식과 이기심이 무의식속에 움직이고 있다. 앞을 다투는 자동차의 흐름, 거대한 도시에 살고 있는 군중의 빠른 발걸음 등을 보면 무의식속에 경쟁의식이 싹터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 보살의 사섭법은 극히 간단하게 행할 수가 있을 것 같이 보이나 실은 대단한 발상의 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다.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행한다면 그 행위는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보살의 행위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 가마구라시대의 명혜상인(明惠上人) 1173-1231)은 조금이라도 사람을 위해서 정을 주고 대하면 멀지 않아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한다고 한다.

  보시라든가 사섭법의 실천이라 하면 사회사업이나 자선사업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가치관의 창조라고 하는 일이다. 무의식 속에서 활동하는 경쟁원리를 보살행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과도한 경쟁의식과 이기심을 보리심으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의 변혁이며 정신의 혁명이라 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비극과 파멸을 구하는 길은 종래의 이기심과 과도한 경쟁원리에 의하여 살고 있던 인간성을 재건하여 대승불교의 보살도를 생활의 원동력으로 하는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고 확신한다. 현대야말로 불교의 이념이 새로운 빛이 되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대사회를 비추고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는 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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