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있는 이를 선발하여 단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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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있는 이를 선발하여 단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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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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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의고전/선문단련설(禪門鍛鍊說)12

  명교 숭(明敎崇)이 말하기를

  "존귀한 것은 도만한 것이 없고, 아름다운 것은 덕만한 것이 없다. 도덕은 세간 출세간의 대보(大寶)로서, 재주로서 이를 이루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재주가 있으면서 덕이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덕이 있고 재주가 없는 것이 더 낫다"하였다.

  세간법도 그렇거니 하물며 불조를 바라고 생사를 벗어나며, 신명(神明)을 단련하여 적멸에 돌아가려는 자는 배워야 할 일이 어떤 일이기에 재능을 가지고 논란하겠는가.

  그러나 둔한 것에 안주하고 순박한 것을 지키면서 한갖 변변찮은 산림을 꾸려 간다면 일신을 편히하는 것으로는 족하거니와, 총림을 주재하고 납자를 가르치며, 법문의 막중한 소임을 맡았으며 불조의 높은 깃발을 세우려 한다면 우수한 재능이 있는 이를 선택하여 단련하지 않는다면 어찌 능히 소임을 감당하고 법문을 빛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총림을 꾸려 가는 데 있어서는 아무 재능이 없는 이도 곤란하지만 너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자도 못쓴다.

  자기의 재능을 믿는 자를 들이게 되면 해가 적지 않을 것이므로 그의 재능은 인정하더라도 그의 덕도 생각지 않으면 안된다.

  불조의 문중은 세속과 같이 사람을 쓸 수 없다. 설사 품행이 나쁘고 성질이 사나운 자라도 길 들이기에 따라서 훌륭한 재목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완전한 재능을 갖춘 이는 적고 치우친 재능을 가진 자는 많으며, 재능과 덕을 함께 갖춘 이는 적고 겸하지 않은 이는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진실성과 중후함과 언행과 배우기를 좋아함과 수행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살펴 보면 그의 덕이 대중을 감복시킬 만하다.

  그러나 천거하여 일을 맡겼을 경우에, 마음이 앞으로 나아가면 뒤가 걸리거나, 우왕좌왕하여 아무런 대책도 없어 속수무책이며, 그러한 단점은 재주요 덕은 아니다.

  그의 재주가 민첩하고 과감하며 우아하고 힘차면, 그러한 재주는 충분히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일을 맡겨 보아서 어진 이와 재능이 있는 이를 질투하거나 대중을 교란하면 그러한 자는 숨김 없이 드러난다. 이는 덕이 부족한자로서 재주가 아니다.

  장로가 누군들 덕을 소중히 하지 않으랴만 실제의 일로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며, 누군들 인재를 아끼지 않으랴만 일을 그르치는 자는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소중히 해야 할 자는 도가 있는 자로서, 이런 자들은 도야하고 탁마하면 강직하고 유순한 자들을 모두 효과있게 쓸 수 있고, 날카롭고 둔한 자라도 쓸모 없는 재목감은 아무도 없다. 이런 자를 선택하여 일을 맡겨야 한다.

  일에는 크고 작은 것과 안과 밖의 일이 있으며, 좌우(左右)와 문무(文武)의 일이 있으니, 총림을 주관하는 자는 이러한 것들에 하나도 모자라서는 안된다.

  백장도 이런 점을 감안하여 청규(淸規)를 세움에 있어서, 먼저 상소임(上所任) 열 가지를 정하고 다음에 하소임(下所任)을 두었던 것이다. 이는 조정에서 사람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별이 나열하듯하고 바둑돌이 널려있듯하며, 실올이 짜지듯하고 새끼가 꼬아지듯하여, 머리와 눈이 서로 돕고 손발이 서로 맞는다면 총림이 정돈되고 법도가 행해질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재질은 우수하고 부족한 자가 있고 기량은 좁고 넓은 자가 있으니, 그의 능력에 따라 부린다면 인재를 적절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림은 사람의 근기를 도야하고 기질을 변화하는 곳이기 때문에 또한, 그냥 그대로 버려 둘 수는 없다. 반드시 충분한 단련으로 그들의 허물을 시정하여 대중을 엄히 하여야 하며,그들의 나태함을 꾸짖어 다른이를 징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상과 벌이 분명하여야만 유능한 인재가 배출될 것이다.

  이것은 총림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의 대강(大綱)으로서 결코 함부로 처리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 중 특히, 두각이 영이(英異)하고 근본 강종이 분명하여 법문의 종자가 될 가망이 있는 자는 뽑아서 단련 시키되 더욱 엄격히 해야 할것이요, 소홀히 하거나 팽개쳐 두어서는 안된다.

  동서(東序)는 낮은 소임으로부터 올라간다. 곧 열중(悅衆)은 풍송(諷誦)을 주관하고, 직세(直歲)는 중무(衆務)를 맡아한다. 전좌(典座)는 음식을 주관하고, 지고(知庫)는 회계를 맡으며, 부사(副寺)는 총리를 도와주고, 유나(維那)는 당규(當規)를 바로 잡는다. 감원(監院)과 도사(都寺)는 절의 일을 총관케한다. 그러나 잠시라도 단련을 그치지 않으면 분란이 생겨서 반드시 피폐하게 되고 다스려 지지 않을것이다.

  서서(西序)는 힘 든 소임으로부터 올라 간다. 곧 시자(侍者)는 장로를 가까이 모시면서 향을 사르거나 의발을 챙겨 드리거나 탕약을 시봉하며, 기록과 서장(書壯)은 모두 학습을 편하게 한다. 지객(知客)은 손을 맞이하고, 지욕(知浴)은 대중의 목욕을 뒷바라지 하며, 지장(知藏)은 경함(經函)을 관장한다. 서기는 문묵(文墨)을 담당한다.

  당중의 판수(板首)는 당주(堂主)와 후당(後堂)이요. 더 올라 가면 서당(西堂)과 수좌(首坐)다. 이렇게 사판수(四板首)의 소임을 맡은 자는 불법의 모범이 되어 장로를 보좌하여 대중을 단련하고 사방에서 오는 학인을 제접하면, 일이 비로소 완비하게 된다.

  고인이 말하기를 "복잡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당해 보지 않고 특별히 날카로운 그릇이 없으면, 비록 재능이 있는 자라도 집사(執事)를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덕기(德器)를 도야하며 지능(智能)을 박종(博綜)하랴"하였다. 얼렁뚱당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어려운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한 자에게 총림을 맡기면 어찌 일을 망치고 결력되지 않겠는가!

   더욱이 고래의 선지식이 인재를 연마하려 할 적에는 총림의 소임을 겪게 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위산고불(위山古佛)은 백장이 전좌를 시켰고, 설봉은 덕산이 반두(飯頭)를 맡겼으며, 내지 양기와 자보는 고사(庫司), 앙산과 설두는 지객, 운봉은 화주(化主), 오조는 마두(磨頭), 묘희는 동사(東司), 백령은 지욕, 원통은 지중(知衆), 회석은 감수(監修)를 맡았으며, 군직세(權直歲) · 광통두(匡桶頭)라는 이도 있었고, 동산의 향등(香燈), 대백의 지수(知隨), 육침의 하판(下板)이 대개 고행을 우선한 것으로서, 모두 그릇을 기르고 재질을 단련하며, 바탕을 바로 잡고 신체를 튼튼히 하여 그들로 하여금 중요한 임무를 맡아 먼 곳까지 이르러 법문의 초석이 되게 하려 한 것이다.

  다만 어떤 일을 부여할 경우에 항상 여러가지의 직책을 주지 않고, 반드시 수좌나 서당의 직책을 맡겼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미 법문을 짊어지고 가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납자를 단련할 수 있어야만 사방에서 오는 학인에게 이익을 줄 수 있고, 총림을 주관해 주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여러 사람 앞에서 큰 소리 칠 수 있다 하여 혜명을 잇지는 못한다.

  만약 판수(板首)일 때에 엄한 수단으로 단련하여 발톱을 날카롭게해 두지 않으면, 병불(秉拂:장로를 대신하여 拂子를 들고대중에게 설법하는 것. 四板首가 이를 맡는다)에 천거되더라도 성광(聲光)이 드러나지 못한다.

  갑자기 이러한 지위를 차지하여 이러한 법을 행하면 어찌 변통을 대응하기에 어렵지 않겠는가.

  아 ! 근세의 법문을 보니, 단련을 가르치지 않고 사람을 받아 들이기에만 급급하여 납자가 문에 들어서면 그저 적당히 일을 맡기면서, 누구는 시자를 맡았고 누구는 지객을 맡았으며, 아무개는 요원(寮元)과 직세를 맡았고 내지 아무 아무는 선중(禪衆)을 맡았다고 하면서, 전사(典司)를 시켜서 복잡하게 뒤얽힌 일을 시험하거나, 판수에 천거하여 발톱을 더욱 날카롭게 하거나, 재능을 단련하고 성가를 축적하게 하지 않는다. 이런 짓은 볼품없는 것인줄 알면서 싼 맛에 샀다가 돈을 더 들이는 격이요, 형편없는 것인 줄 알면서 헛된 이름에 얽매인 것으로써, 비단 천하의 중생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여서 법문이 쇠퇴하더라도다시 일으킬 능력이 없을 것이니, 어찌 이런 자를 본받을 수 있겠는가.

  자고로 수월하게 된 불조가 없었으며, 무능한 장로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장로가 인간과 천상의 모범이 되고 용상과 같은 대중을 거느릴 수 있으며 영재의 표준이 되고 문무의 저울이 되려면, 반드시 도덕이 있어야만 남을 가르칠 수 있고, 또한 재능이 있어야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비록 재능과 지혜를 감추어 어리석은 듯하더라도 일단 대임을 당하면 가로 세로로 살을 발라내어 눈에 완전한 소가 없으니, 어찌 스승이 인재를 단련하면서 재능이 있는 자를 가려서 단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초학자를 단련하여 안목을 열어 주고자 한다면, 혹독한 방법으로 자극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구참(久參)을 단련하여 그릇을 이루려고 한다면,가려서 단련하는 것보다 정미한 방법은 없다.

  이러한 방법 외에 영현(英賢)이 배출되어 조정(祖庭)을 밟아버리기를 기대한다면 요행히 그런일이 있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속담에 "백성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바로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하였다. 통곡하고 탄식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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