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맑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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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맑히는 일
  • 관리자
  • 승인 200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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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니?”

강여사는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 놓으며 조금 전에 친구가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말의 횡포에 흥분해 하다가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있던 강여사도 친구 못지않게 흥분하며 터무니 없는 말을 퍼뜨리고 다닌 또 다른 친구를 비난했지만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께름직하고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떤 불순한 물질이 앙금처럼 자신의 체내에 가라앉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강여사한테 전화를 한 친구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데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과 이혼을 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유일한 생활수단이기 때문에 그녀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그보다 그녀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거기다 건강까지 좋지 않아서 그 친구는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서 여지껏 살아왔다.

그런 중에서도 그녀는 꿋꿋하게 그림을 그렸고 자신의 삶도 그렇게 지켜왔다.

특히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 때문에 사람 사귀는 일엔 유별스럽게 까다로와서 그녀는 마치 주위 청소를 하듯 쓸데없는 사람, 부질없는 사람과는 일체 교류를 맺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녀에겐 터무니 없는 염문 같은 것이 가끔씩 따라 다니고 있었다.

‘그룹전’ 준비로 시내에 나갔던 친구는 동인들과 만나서 출품작품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동인들과 헤어진 그녀가 전철을 타기 위해 덕수궁 앞 지하도로 막 내려가려고 할 때 지하도 밑에서 마주 올라오던 친구가 그녀 어깨를 탁 치며

“어머 너 진희구나. 어쩌면 여기서 만나게 됐니”하며 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생각 속에 잠겨서 걷고 있던 친구가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는 미대 동창생인 수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수자구나. 어디 가는 길이니?”

친구는 정장을 하고 있는 수자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

감빛 투피스를 입은 수자 목엔 큐빅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남편 만나러 가는 길이야. 저녁에 친구들 하고 모임이 있다고 해서”

“남편도 안녕하시지?”

“그럼. 넌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집에. 늦기 전에 어서 가봐.”

친구는 수자와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서두르며 작별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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