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앞 창으로 보이는 억새풀들이 진한 가을로 흔들리더니 쏴-- 하니 내닫는 차운 공기가 이젠 겨울로 완연하다. 계곡으로 단풍이 한창 선연한가 했는데 금방 빛 바랜 모습으로 떨어져 눕고, 비올 날 뒤면 한라산 정상 언저리도 하얀 눈으로 옷을 입곤 한다.
몇해 전만 해도 도심에 젖어 살아 틈틈이 도량을 찾아 산문(山門)에 들 때서야 겨우 잊어버렸던 고향에 돌아 온 듯한 안온함과 정적을 가질 수가 있었는데, 한라산 중턱에서 이태 이상 살다 보니 바로 산사(山寺) 그대로에 젖어서 살아가는 행복감이 있다. 앞 베란다에 풍경을 달아 간간이 들려 오는 청량함도 함께 하고, 풀 뜯으러 오는 소들의 방문을 때때로 받으면서 산새들의 노래 소리에 젖어 소일하다 보니, 바쁘게 돌아가야 제 몫을 한다는 요즘같은 시절에 하루하루 방일(放日)하는 맛으로 오히려 넉넉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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