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적적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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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적적한 삶
  • 관리자
  • 승인 2008.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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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할아버지는 충북 제천이 고향이다. 빈농의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천형처럼 가난을 달고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학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한 채, 고된 농사일을 하며 잔뼈가 굵어졌다. 결혼을 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더욱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남의 논밭을 부쳐 먹는 살림은 나아질 줄 몰랐다. 가난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딸 하나를 낳아 두고 집을 나갔다.

아내가 떠나고 되는 대로 일하고 술 마시며 자포자기 상태로 살아왔다. 혼자 크다시피한 딸은 도회지로 나간 후 소식이 끊겨 지금껏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좋은 추억 하나 없는 고향 땅에서 정을 붙이고 살기가 어려웠다. 무작정 상경하여 노동판을 전전했다. 그러다 서로 외로운 처지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나 함께 살게 되었다. 그때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그러던 5년 전,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보듬어주었던 할머니가 병환으로 먼저 눈을 감게 되었다.

“그 사람이 가고 나니 내 속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합디다. 살아서 뭐하나 싶고, 나도 어서 빨리 따라가야지 하며 술도 많이 마셨더랬지요. 그런데 이게 참, 살다보니 또 살아집디다. 그렇게 저렇게 또 살아지나보다 했더니, 몸에 덜컥 이상 신호가 왔어요. 이제 정말 가야 하나 생각하니, 이 모진 삶이 그래도 조금은 아쉽네요. 이왕 끊어지는 목숨, 좋은 일 한 번 못해 보고 원망만 하다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아요.”

할아버지는 올해 초부터 온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대변을 못 보고 속이 더부룩 답답했다. 특히 소변을 볼 때면 오른쪽 아랫배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오곤 했다. 견디다 못해 지난 9월 병원을 방문하니, 방광결석이라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위한 정밀검사와 시술 과정에서 병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방광암이었다. 곧바로 종양 일부를 제거하였다. 현재 할아버지는 퇴원하여 집에 머물며 외래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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