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도시에 사는 한 남자는 하루하루를 쾌락 속에 산다. 어느 날 덜컥 병에 걸려 버린 남자는 방탕했던 삶에서 잠시 빠져나와 병에 걸린 자신을 돌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노후를 위해서는 4억7천만원이란 돈이 필요하다는 친구의 말에 그는 그 동안의 시간이 아까웠던 듯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폐의 60%를 잘라 내고 8년째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한 여자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폐가 아파 다리를 꼭 껴안고 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누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 하루를 피곤하게 살지만 그녀는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허진호 감독의 <행복>은 멜로 드라마다.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던 한 도시 남자 영수와 중증 폐환자 은희, 이 두 사람의 사랑은 평범한 연인들의 그것처럼 설레고 예쁘게 시작되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은희의 몸처럼 조금씩 불안해진다.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과 같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사랑에 대한 남다른 감성과 통찰을 보여 주었다. 죽음 앞에서 사랑을 발견한 한 남자,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사랑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한 남자, 그리고 배우자의 배신과 죽음 앞에서 또 다른 사랑을 만난 남녀 - 그가 보여준 사랑은 예쁘기는커녕 오히려 구질구질하지만 이런 게 인생이고 이런 게 사랑이라는 가슴 아픈 사실을 담담하고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의 최근작 <행복>은 전작들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진화된 사랑론 혹은 인생론을 보여준다.
월간불광 과월호는 로그인 후 전체(2021년 이후 특집기사 제외)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