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원은 비원(悲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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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원은 비원(悲源)
  • 관리자
  • 승인 2001.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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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원은 비원(悲願)]

보살의 원은 비원입니다. 슬픈 것입니다. 중생을 바라보는 보살의 마음은 늘 연민의 정이 가득 차, 눈물이 잠시도 마를 날이 없습니다. 왜 보살의 원은 이처럼 슬픈 것일까요?

보현행원품의 항순중생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넓은 사막 한 가운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이 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가득 끌어 올려 삭막한 광야에서 무성한 잎과 열매를 꽃 피웁니다. 생사광야의 보리수왕도 이와 같아서, 중생이 그 뿌리이며 불보살이 그 꽃과 열매인데, 보리수왕은 대비수(大悲水)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여(以大悲水 饒益衆生) 마침내 불보살이라고 하는 화과가 무성하게 맻히게 됩니다. 또한 보살은 대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따르므로 마침내 원만한 중생 공양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흔히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합니다. 여기서 '慈'는 남이 잘함을 같이 기뻐하는 것을 말하고,' 悲'는 남이 잘못됨을 안타까와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행원품에서 보는 불보살을 꽃피우는 도구는 '大慈水'가 아니라 '大悲水', 즉 슬픔의 눈물인 것입니다. 눈물은 기뻐도 흐르고 슬프도 흐르는데, 왜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이 기쁨의 눈물이 아니고 슬픔의 눈물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중생에 대한 사랑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연민의 정'이기 때문입니다.

기쁜 마음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우리의 일체 행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기뻐하기만 하는 마음은 자칫하면 자만과 아집에 빠지기 쉽게 됩니다. 그것을 막아 주는 것이 바로 연민의 마음입니다.

남을 애틋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그 마음이 있는 한, 우리는 자만과 아집에 머무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즐기고 자랑할 수만은 없습니다. 나보다 못한 이들에 대한 끝없는 슬픔은 이태껏 살아온 자신만을 위한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합니다. 이렇게 하여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중생의 마음은 보다 높은 단계로 성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보살의 원은 슬픕니다. 이 세상의 바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중생의 그 모습이 슬프고, 그 나락을 막아줄 힘이 자신에게 없는 것이 또한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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