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다 더 귀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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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다 더 귀한 스승
  • 관리자
  • 승인 2008.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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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 (欽慕) / 현웅 스님의 잊을 수 없는 두 분 스승
▲ 현웅 스님

서울 성북동 아리랑 고갯마루 막다른 골목에 육조사가 있다. 울며불며 넘는 아리랑 고개라더니, 이 고개만 넘어서면 옛날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희망의 세계가 있을까. 육조사는 그 고갯마루에 주막처럼 앉아 있다. 인생의 가파른 고개를 넘는 사람들, 혹은 이욕(利慾)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모여 들어 헐떡이는 숨을 내려놓는 곳이다. 현웅 스님은 이 도량의 주인장이다.

“수행의 고개를 넘어가자면 발심(發心)·의심(疑心)·분심(忿心)이 물론 제일 중요하지만, 꼭 하나 더 있어야 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스승입니다. 스승의 손을 잡고 가야지만 바르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이 공부입니다.”

현웅 스님은 히말라야 산행을 돕는 셰르파(sherpa)를 연상케 한다.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누구라도 좋다며 기꺼이 함께 간다. 당신이 이미 걸었던 길이고 그것이 생사를 가름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육조사를 전진기지로 삼아 안으로는 수행을 지도하고 밖으로는 모든 언론매체를 가리지 않고 상대하며 선의 뜻을 갈파해왔다. 필요하다면 논쟁도 마다 않는다.

“불법이 어렵다고 법을 중생심에 맞출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어려워도 바른 길로 가야 그것이 수행이지요. 이 공부는 까딱하면 다른 길로 가게 되는데 그것만큼 무서운 게 어디 있습니까? 나는 매일 생각합니다. 만약에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불법을 만났다 해도 만약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사는 모양새가 어찌 되었을까. 아찔한 일입니다.”

안팎이 깔깔했던 청정수행자, 구산 스님

현웅 스님에겐 생명을 준 부모보다 더 귀한 스승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머리를 깎아주신 구산 스님이고 또 한분은 전강 스님이다. 스무 살, 앞도 뒤도 꽉 막혀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현웅 스님은 불문에 들어섰다. ‘살기 위해서, 숨쉬기 위해서’ 찾아간 길이었다. 송광사 삼일암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구산 스님을 뵙고서야 ‘여기가 내 공부할 곳이구나’ 싶더란다. 구산 스님이 누구인가. 효봉 스님의 효상좌요, 송광사를 승보종찰로 중흥하고 조계총림을 개원했던 주역으로 송광사 승풍을 널리 진작시켰던 선객이다. 불교 정화운동 당시에는 500자 혈서를 써서 청정수행의 중요성을 역설했을 정도로 참으로 깔깔했던 수행자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삼일암으로 스님을 찾아갔죠. 그랬더니 제 머리를 깎아주면서 고맙다고 하십디다. 이 공부를 잊지 않은 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선방에 다닐 때였는데, 문득 스님 생각이 간절해 버선 한 켤레를 사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호통을 하시는 거예요. ‘공부 안 하고 이런 짓거리나 하느냐!’시며, 인사도 안 받으셨습니다.”

구산 스님은 한 달 만에 보든 1년 만에 만나든 애매한 인사 따위는 언제나 생략했다. 마주 앉기가 무섭게 공부한 내용부터 일러 보이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덧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엄격한 스승, 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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