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새끼 사자흉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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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새끼 사자흉내<2>
  • 관리자
  • 승인 2008.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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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 운수시절

     5 사자새깨 사자흉내

 화엄사에 머물고 있는지 얼마 안돼서 하루는 도진호(都鎭浩)씨가 나를 보더니 대중 앞에 나와 법문을 한 번 해보라고 한다. 도진호스님은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제1차 태평양 종교자대회에 조선대표로 참가했던 유명한 사람인데 그 당시 쌍계사에서 화엄사로 전적해온 직후였다. 그들은 송광사 삼일암선방에서 수좌가 왔다고 해서 어떤가 하고 알아볼 심산이었던 모양이다. 「저 바닷물을 어떻게 다 먹을꼬?」이 생각만 하고 지냈던 나였지만 어쩐지 내 소신대로 한 번 말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화엄사 적묵당(寂默堂_큰방)에 법상을 차려 놓았는데 학인이 30명쯤은 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그 자리에 이르니 말잘하는 도진호변사가 일어서서 일장 소개말을 하였다. 「오늘 삼일암선방에서 견성성불을 목적하여 참선하는 애기수좌의 법문을 들을텐데 이 수좌님의 말을 한 번 들으면 귀가 번쩍 뚫릴 것이라고 굉장한 소개를 했다. 이쯤되니 나도 용기를 내서 법상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는데 올라가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저 사람들은 글을 많이 읽었는데 나는 배운 것도 없으니 무슨 말을 해서 저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곰곰히 생각하였다. 나는 선방에 있으면서 조실스님이신 조예운스님이나 최혜문스님이나 김석암스님에게 들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것 저것 정리해 보았다. 그중에 김석암스님이 장자(莊子)에 있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 그럴싸 하게 생각났다. 그리고 조실스님 법문하시는 것을 여러분 보았던 터라 그 흉내를 내 볼것이라 작정하고 법상에 올라 앉았다. 대개 종사법문에서 처음 주장자를 탕 구르고 「이 도리를 아는 사람은 말을 하라」하고 나서 대중도 답을 하고 거기에 종사도 의견을 펴는 것이 관례가 아닌가. 나도 그 흉내를 내기로  하였다. 그리고서 막상 법상에 오르니 학인들의 이목이 일시에 집중되면서 <무슨 저런 어린사람이 올라 왔는가> 하는 눈치가 환히 들여다 보였다 나는 주장자를 잡고(원숭이 흉내를 내듯) 방아찧듯 세번을 구르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 말이 막힌다. 가슴도 두근대고 순간 괜히 올라왔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미 올라왔으니 도리 없다 하고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었따.

 「내가 이 주장자를 여기 세웠는데 대중이 이 주장자를 여기 세웠는데 대중이 이 주장자를 다 보고 있다. 그런데 대중이 주장자를 볼 때 주장자가 대중을 보는 것을 아십니까. 아는 이가 있으면 말해 보시오.」 그러나 학인들은 다행히 아무 말이 없다. 나는 주장자를 다시 한번 쾅 내려찍고는 게송을 하나 읊었다. 이것도 삼일암에서 들은 풍월이다. 

 「매석(買石)에 득운요(得雲饒)하고 이화(怡花)에 겸접비(兼蝶飛)라.」(돌을 사니 구름이 넉넉한 것을 얻고, 꽃이 피니 나비가 나는 것을 겸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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