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원어인 [폴.티릿히]는 (기독교와 여러 종교의 만남)이란 책에서 인연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그것은 업이 가지는 인과 율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악업을 지었기 대문에 악의 과보를 받는다는 인과율은, [이것이 이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기 대문에 저것이 생하며,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는 까닭에 저것이 멸한다] 라고 하는 연기설의 기본적인 글귀와 같이 상의성을 갖고 있기 대문에 [폴.티릿히]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고 물었을때, 한 마디로 법이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이법의 상의성, 즉 서로 의지하며 생하고 멸하는 내용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법이라고 하는 말을 중요하게 쓰이고 있는 용레에서 뜻을 가려낸다고 하면 법은 존재의 법칙을 뜻하는 경우와 존재의 법칙에 의거하여 설해진 가르침을 뜻하는 세 가지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귀의하는 삼보중의 법보는 마지막 경우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귀의 하는 법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존재의 법칙에 의거해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존재의 법칙이란 곧 연기를 말합니다. 다라서 존재의 법칙인 연기는 부처님의 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며, 그 점에서 부처님의 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존재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같은 법, 즉 존재의 법칙은 부처님이 있어 개닫거나 부처님이 없어 개닫지 못한다 해도 진리로서 변함이 없을을 이렇게 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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