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근본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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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의 근본적 해결
  • 관리자
  • 승인 2008.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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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근본사상(제4회) / 원시불교편(4)

 생사에 윤회(輪廻)한다는 것처럼 두렵고 괴로운 일은 없다. 이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은 없을까.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인간의 죽음과 삶을 비교적으로 관찰한 결과, 인간 존재는 끊임없이 이합집산(離合集散) 하려는 요소들을 그러지 못하도록 결합하는 작용이 그 근간에 자리잡고 있는 것임을 느꼈다. 따라서 인간 존재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본래적인 요소들의 모습과 성질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호에 소개한 불교의 육계설(六界說)은 이런 입장에서 세계의 본래적인 모습을 밝혀 본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과 자연은 흙 · 물 · 불 · 바람기의 네가지 요소이고 그런 요소들은 인 · 연에 따라 어김없이 「오르내리」는 성질을 띄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근간에 자리잡고 있는 「결합작용(行)」은 그러한 네가지 요소들을 결합하여 형체(色)를 지속해가는 작용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런 결합작용이 인간에게는 왜 있게 되는 것일까.  인간과 세계의 본래적인 모습이 고착되 있으면 이제는 이 문제가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원시불교는 다시 이 문제에 관심을 모으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나(我)」라는 것을 갖고 있다. 「나」는 인간을 대표하는 주체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디서나 자신을 표현할 영속성(永續性)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나」가 「나」라고 하는 그 「나」는 어떤 것일까. 다시 말하면 「나」는 무엇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현재의 자기 심신을 통털어 「나」라고 한다. 세계의 본래적인 모습이 육계설이 뜻하는 바와 같은 구조를 띈 것이라면 그러한 경계에서는 어떤 것을 가르켜 「나」라고 하게 될까. 인간은 최초에 어떤 것을 스스로 「나」라고 하였을까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흙· 물· 불 · 바람기의 네가지 요소들이 일시적으로 모아 있는 형체를 가르켜 「나」라고 할 것이 예상된다. 「나」라는 것은 통합적인 주체를 뜻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아니, 인간은 애초에 그러한 형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도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한 요소들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분석적인 관찰을 통해 비로소 얻어진 후천적인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어진 형체를 「나」라고 하는 이러한 집착이 있을 때 그 다음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까. 주위 상황(因緣)에 어떤 변동이 오게되면 그 형체를 이루고 있는 각 요소들은 그에 따라 오르내리려고 하고, 따라서 이런 움직임을 우리는 느끼(受)게 될 것이다. 본래적인 요소들에 대한 최초의 의식이 이 때 인간에게 알려지는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그는 그러한 요소들을 「결합하려는 생각(想)」을 하게 될 것이다. 왜그러냐면 만일 요소들이 변동하면 그 형체는 부서질 것이고 따라서 「나」는 존속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결합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거기에 곧 「결합하는 작용(行)」이 따르게 된다. 우리들이 앞서 인간의 죽음과 삶을 비교적으로 관찰하여 생존의 근간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느꼈던 그 「결합작용」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결합 작용을 통해, 주어진 형체가 실질 적인 것이 되면 그것은 그 이전의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그 이전의 것과는 다르다는 식별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식별이 자리잡게 되면 이에 입각해서 눈 · 귀 · 코 · 혀 · 몸 · 의지 등의 구별이 생기고 우리들이 눈앞에 보는 바와 같은 생사의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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