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싸움: 쟁(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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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싸움: 쟁(爭)
  • 현안 스님
  • 승인 2022.12.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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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72)]
출처 셔터스톡

미국식 위앙종 도량들에서는 새벽 예불과 저녁 예불 앞서 종지를 낭송합니다. 종지(宗旨, guiding principles)란 근본이 되는 중요한 원칙들을 일컫습니다. 우리 위앙종 종지에는 육대 원칙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첫째가 ‘문자기시불시불해(問自己是不是不害)’입니다. 다른 이를 해치려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불자라면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불교를 이해한다면, 다른 이를 절대 해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싸운다는 것은 다른 이를 해치는 일과 연관됩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치고자 한다면 그건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싸움에 끼어들면, 다른 누군가는 이기고, 다른 누군가는 져야만 합니다. 누군가를 때려눕혀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해쳐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것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싸움을 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거부하는 것도 역시 불교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그들이 틀렸을 때도 거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틀렸을 때 거부하는 대신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세요. 그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대신 포용하십시오.

출처 셔터스톡

그렇다면 상대가 계속 싸움을 걸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을 그으십시오. 이렇게 하는 겁니다. “오케이~ 당신을 존중합니다. 존중하고 높이 여깁니다. 어떤 부분은 당신에게서 배우고 싶지만, 당신에게는 내가 배우고 싶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서 있고 싶은 자리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점에서 한국 문화가 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표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점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을 예의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의견 충돌이 생길 때, 상대가 언짢아할 수도 있을 거라 여길 때, 안절부절못합니다. 하지만 더 큰 충돌과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건강한 경계선(Healthy boundaries)'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게 창피를 주지 않으면서 끼어들지 않는 방법입니다. 나는 당신을 존중하지만, 단지 어떤 부분은 원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는 판단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도 창피함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 수용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에 대해서 늘 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교적 접근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나와 다르지만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상대가 틀리거나 옳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을 도울 기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린 쌍방 통행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그와 동시에 선생님은 학생으로부터도 배웁니다. 선생님이 한 방향으로만 소통한다면 그건 현명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 내 의견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을 주기 때문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한 경계선을 지킬 수 있을 때, 선생님들도 계속해서 학생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다른 이들을 가르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진전합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미국에서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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