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스님, 정말 좀비가 무서운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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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스님, 정말 좀비가 무서운걸까
  • 불광미디어
  • 승인 2022.03.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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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00:00 정말 좀비가 무서운걸까?

00:58 좀비와 해바라기

06:49 두려움의 본질

09:25 죽음, 두려움, 존재

12:46 나의 존재 확인하기

18:12 나는 누구인가

22:08 나를 보세요

24:46 원제 스님의 스토리텔링

제가 인상적으로 플레이한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라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의 주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폭동의 순간에 딸 사라를 잃게 된 주인공 조엘은 생존자 격리 구역에서 암시장에 밀수품을 밀반입하고 판매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엘은 죽어가는 친구로부터 엘리라는 소녀를 지켜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열네 살의 소녀 엘리는 좀비로부터 면역이 되는 유일한 인간이었습니다. 엘리를 파이어플라이라는 비밀 집단으로 데려다 달라는 게 조엘이 친구로부터 받은 부탁이었습니다. 딸을 잃고 난 뒤 황폐한 마음으로 살았던 조엘과 모든 가족을 잃고 그 스스로 험난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나야만 했던 소녀 엘리. 무서운 좀비 무리를 헤쳐 나가고,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여러 인간 집단들과 싸우기도 하며, 조엘과 엘리는 서로의 우정과 연대감을 쌓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게임 속에서는 여러 형태의 좀비들이 나옵니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던 좀비가 ‘클리커 Clicker’입니다. 평상의 상태에는 ‘딸각, 딸각’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클리커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변이 과정을 거쳤는지 어쨌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클리커는 얼굴이 없는 좀비입니다. 외형적으로 클리커는 얼굴 부분이 뭉개져서 몇 방향으로 퍼져버렸습니다. 눈 귀 코가 없어서 인간 생존자에 대한 지각 능력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일단 생존자를 감지하면 그 무엇보다 강력해지는 좀비입니다. 게임을 하면서 저는 클리커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꼭 이랬습니다.

‘저 클리커가 과연 꽃하고 다른 게 뭘까….’

클리커가 물론 괴상하고 징그럽게 생기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에 고개를 한쪽으로 떨구고, 딸각이는 소리를 내는 모습은 그저 이를 데 없이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그러다 인간 생명체가 나타나면 그쪽으로 달려들어서 공격합니다. 클리커는 단지 자극에 반응할 뿐이었습니다. 왜 햇빛이 나면 해바라기가 잎을 활짝 펴지 않나요? 그래

서 클리커의 얼굴이 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활짝 펼쳐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인지되면 그쪽으로 달려들어서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끈끈이주걱이라는 식물도 곤충을 가둬서 그 곤충으로부터 양분을 얻습니다. 우리가 약용으로 잘 알고 있는 겨우살이라는 식물도 알고 보면 나무에 기생하는 풀입니다. 스스로 양분을 얻을 수 없으니까 나무줄기나 가지에 붙어서 나무에 올라오는 양분을 뺏어먹고 자라는 풀인 겁니다. 끈끈이주걱이나 겨우살이에는 의지나 욕망이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살기 위해 상황에 적응한 것이고, 자극에 반응한 것뿐입니다. 이런 끈끈이주걱이나 겨우살이에 대해서 우리는 별다른 공포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클리커와 같은 좀비들에게는 다릅니다. 클리커나 좀비에게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은 좀비와 싸우는 겁니다. 하지만 좀비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좀비는 어떤 악랄한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고, 악행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자극에 반응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 반응이란 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반응입니다. 곧 상대방을 해치는 게 목적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클리커에게는 어떤 번뇌나 괴로움도 없습니다. 자극에 반응만 하는 어떤 생명체도 우리 인간처럼 스스로 만들어낸 번뇌와 욕망으로 고통 받는 일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번뇌와 욕망이라는 원인을 만들고 이에 집착하여 고통이라는 결과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그토록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클리커보다 못난 존재가 아닌가요?

게임이나 영화에서 죽지 않기 위해,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좀비를 죽인다지만 사실 그것 또한 아닌 듯합니다. 인간성이라는 것은 훌륭한 방패입니다. 생명이나 인간성을 운운하기 이전에 인간이 좀비와 싸우고 좀비를 죽이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한 데 있다고 봅니다.

나를 잃고 싶지 않은 겁니다.

인간은 나를 잃어버리는 그 모든 상황에 공포를 느끼면서 이를 거부하게 되어있습니다. 사실 좀비가 되는 것이 무서운 일은 아닙니다. 정작 좀비가 되면 감정이나 생각이 사라지게 되지요. 무서움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좀비가 두려운 건 인간성을 잃어버리기 때문도 아닙니다. 좀비라는 외부의 적이나 인간성이라는 고결함, 이것들은 다 명분인 것입니다. 사람이란 ‘나’를 잃어버리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단 이 한 가지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쩌면 얼토당토않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나에 대한 집착만 버린다면 저 좀비나 클리커가 되는 것도, 해바라기나 겨우살이가 되는 것처럼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저 클리커나 해바라기는 욕망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번뇌도 없고 괴로움도 없습니다. 도대체 저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문제는 나를 결코 잃고 싶지 않은 ‘나’한테 있을 뿐입니다.

정말 좀비가 무서운 걸까요? 저는 차라리 '내'가 간교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원제 스님의 스토리텔링 채널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ySTfvC7CTN_eLi2cK1ph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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