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절] 깐부도 극찬한 그곳 주왕산, 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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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절] 깐부도 극찬한 그곳 주왕산, 대전사
  • 최호승
  • 승인 2021.11.1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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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둘러 절 들러]

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사진은 아이폰으로 촬영했습니다.

주왕산국립공원 탐방로에 펼쳐진 가을과 단풍.
주왕산국립공원 탐방로에 펼쳐진 가을과 단풍.

다큐멘터리 3일과 오징어 게임
지난 11월 7일 방영한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은 주왕산국립공원의 72시간을 담았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깐부’ 오영수 배우가 내레이션에 참여했는데, 그는 주왕산국립공원의 주산지에서 촬영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노스님으로 출연해 인연이 깊다.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그의 목소리로 전한다는 기사를 먼저 접했고, 뭔가에 홀리듯 11월 7일 새벽 2시 차를 몰아 주왕산으로 향했다. 대전사에서 출발해 주왕암과 유명한 폭포 3곳을 들러 다시 대전사로 돌아오는 약 8.5km의 길을 걸었다.(스크롤 압박 주의! 글은 거들 뿐!)

숲은 수척했지만, 가을은 깊어졌다.
숲은 수척했지만, 가을은 깊어졌다.

그래도 가을 그래도 주왕산
주왕산(해발 720m)은 1976년 우리나라에서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어디를 쳐다봐도 보이는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을 돋보인다. 무려 7,000만 년 전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생긴 바위들이 특색이다. 용암과 암석 파편, 화산재가 뒤섞인 무시무시한 환경이었고, 주왕산 일원에는 많은 양의 화산재가 화산의 옆면을 타고 흘러 500m 두께로 쌓였단다.

이 화산재가 식으면서 주왕산을 이루는 응회암(화산재로 만들어진 암석)이 만들어졌다. 용암보다 빨리 식는 화산재 특성상 튼튼한 결정 구조를 만들긴 어려웠고, 풍화에 약한 응회암 특징 탓에 갈라진 틈, 즉 ‘절리’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주왕산국립공원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심상찮은 이유였다.

‘길 둘러 절 들러’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가을 단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주왕산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지만 그래도 가을을 택했다. 하지만 올해 단풍은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완연한 가을은 만나지 못했다. 숲은 수척했고, 가을은 뒷걸음질 치고 있었고, 바람은 겨울을 재촉했다.

실망은 이르다! 주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옆 탐방로를 걷는 내내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길에는 가을이 지천으로 널렸고, 길옆에 빼곡한 나무들은 아직 가을을 붙들고 있었다. 설악산·월출산과 함께 3대 암산(巖山)으로 불리는 산답게 커다란 바위에 시선을 뺏기며 걸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 적상산과 달리 계곡을 끼고 있어, 눈과 귀가 즐거웠다.

“단풍이 고사했어. 갑자기 날이 추워지고 비까지 와서 그래.” “그래도 가을이네. 아직 단풍은 예쁘다.” 중년 부부의 대화 중 남편보다 아내의 말에 지지를 보냈다. 그래도 가을, 그래도 주왕산이었다.

주왕산국립공원 들머리인 대전사에 이르는 길목.
주왕산국립공원 들머리인 대전사에 이르는 길목.
대전사 보광전 뒤로 부처님 손바닥 모양의 기암단애.
대전사 보광전 뒤로 부처님 손바닥 모양의 기암단애.
주왕산국립공원 탐방로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대전사 소원탑.
주왕산국립공원 탐방로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대전사 소원탑.

부처님 손바닥 안 대전사
주왕산 들머리는 은해사 말사 대전사다. 담벼락 위로 붉은 단풍을 즐기다 걷다 대전사 입구에서 첫 계단에 발을 올리는 순간,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대전사 보광전 뒤에 떡 하니 버티고 선 거대한 봉우리 때문이다. 기(旗). 암(岩). 단(斷). 애(崖).

주왕산 들머리에서 한눈에 보이는 기암단애(旗岩斷崖)도 화산폭발로 생긴 암석이란다.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전했단다. 당나라가 반역에 실패한 주왕을 잡기 위해 신라에 도움을 청하자, 신라 마일성 장군과 그의 형제들이 주왕굴에 숨었던 주왕을 찾아낸 뒤 주왕산 첫 봉우리에 꽂았단다. 그 깃발을 꽂았던 봉우리가 바로 기암단애다. 깃발 기(旗), 바위 암(岩) 끊을 단(斷), 언덕 애(崖)라는 한자 이름을 하나씩 뜯어보면 수긍이 간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청송군이 등재됐는데, 이 기암단애가 대표적인 바위란다.

기암단애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손오공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았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마치 부처님 손바닥이랄까?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자리한 도량인 만큼 대전사의 기운이 남다를지도 모른다.

대전사는 672년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919년 주왕의 아들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보광전에서 1976년 중수 때 발견된 상량문 등 자료에서 주방사였다가 대전사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돌아온 불화 3점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이 법보신문에 쓴 글에 따르면 대전사 영산회상도와 신중도, 지장보살도가 도난됐다. 가장 먼저 회수한 불화는 신중도였고, 영산회상도와 지장보살도가 돌아왔단다. 영산회상도는 보광전에 있었던 크기 3m가 넘는 대형 불화였다고. 이 가운데 서울의 한 개인박물관장의 은닉처에서 발견한 불화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가져가서 숨겨봐야, 역시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대전사에서 본격적인 길로 접어드는 구간, 소원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소원탑에 합장 인사 올린 뒤 걸음을 재촉했다.

주왕암으로 오르는 길. 그냥 너무 예뻤다.
주왕암으로 오르는 길. 그냥 너무 예뻤다.
주왕암 가는 길에 놓인 돌탑.
주왕암 가는 길에 놓인 돌탑.

주왕이 숨었다는 산신각이 있다는데
주왕이 숨었다는 주왕굴은 주왕암(周王庵)에 있었다. 주봉 등산로와 탐방로 갈래에서 주왕굴까지는 1.5km 거리였다. 가는 길은 심심하지 않았다. 다리 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의 아들바위를 만났고, 잘 정비된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과 단풍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주왕이 신라 군사를 막고자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쌓은 돌담인 주왕산성과 마주했다. 주왕산성에서 주왕암은 0.3km에 불과했다.

조금 가파른 길이라 금방 숨이 찼지만, 길이 너무 예뻤다. 빨강 노랑 초록이 두 눈에 한꺼번에 들어왔다. 길 중간에 무질서하게 쌓인 돌탑에서 길을 오르내리던 이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기왓장으로 쌓은 얕은 담에 가지런히 놓인 돌탑이 주왕암보다 먼저 손님을 맞이했다.

단아한 주왕암. 16나한을 모신 뒤 나한도량으로 알려졌다.
단아한 주왕암. 16나한을 모신 뒤 나한도량으로 알려졌다.
주왕이 숨어 지내다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자연동굴 주왕굴. 주왕암 산신각이다.
주왕이 숨어 지내다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자연동굴 주왕굴. 주왕암 산신각이다.

대전사의 산내 암자인 주왕암도 대전사처럼 창건설이 나뉜다. 919년 눌옹 스님이 창건했다고도 하고, 통일신라 시대 의상 대사가 세웠다는 설도 있었다. 누가 창건했든 무엇이 중요할까. 도량의 자태가 고즈넉해 참배하고 잠시 쉬어가도 좋았다. 암자 주위를 둘러싼 봉우리 이름이 나한봉, 관음봉, 지장봉, 비로봉, 칠성봉이라고 하니 반가웠다.

촛대봉 아래 제비집처럼 자리한 주왕암 오른쪽 작은 협곡 사이로 난 길 따라 30m쯤 오르면 주왕굴(산신각)에 닿는다. 약 50여m 되는 절벽 하단에 세로 5m, 가로 2m 정도의 자연동굴이다. 주왕이 피신해서 숨었다는 그곳이다.

주왕은 천연 요새인 이곳에서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재기를 다짐했는데, 촛대봉에서 신라 마일성 장군이 쏜 화살을 피하지 못해 최후를 맞았다. 믿거나 말거나, 주왕과 군사 그리고 식솔들이 흘린 피가 흐르면서 붉은 수달래(진달래과에 속하는 산철쭉의 다른 이름, 꽃잎에 검붉은 반점이 특징)가 됐다고 한다.

등산객이나 불자로 보이는 이들,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이 소원지에 작은 바람을 적고 참배하고 있었는데, 지나칠 수 없었다. 작지만 시주도 하고 참배한 뒤 폭포 쪽으로 길머리를 돌렸다.

주왕암에서 용연폭포로 가는 길에 꼭 거쳐서 추억 한 장 남겨야하는 망월대에서 바라본 주왕산 봉우리들.
주왕암에서 용연폭포로 가는 길에 꼭 거쳐서 추억 한 장 남겨야하는 망월대에서 바라본 주왕산 봉우리들.
시루봉을 보면서 되새겼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시루봉을 보면서 되새겼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닌 용추·용연·절구폭포 그리고 돌탑
주왕암에서 용추폭포까지는 1km가 채 안 된다. 살짝 오르막을 걷고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 망월대를 거쳐, 돌탑 무리를 지나면 용추폭포를 200m 남겨두고 재밌는 봉우리를 만난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는 광고 문구가 떠오르는 봉우리. 바로 시루봉이다. 생김새가 꼭 떡을 찌는 시루와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옆에서 보면 사람의 옆모습 같기도 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한 도사가 시루봉에서 도를 닦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줬다는…. 봉우리 밑에서 불 피우면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는….

엄청난 바위들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 그리고 용추폭포.
엄청난 바위들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 그리고 용추폭포.
용연폭포에도 가을이 활짝.
용연폭포에도 가을이 활짝.

여기서부터 오감을 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암벽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이 오감을 자극해서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들이었다. 용추폭포는 협곡 사이로 들어가는 암벽들부터 압도했다. 감탄의 위대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용연폭포로 향하는 길목을 장식한 낙엽들과 단풍과 함께 어우러지는 옥빛 물이 흐르는 용연폭포, 그리고 절구 모양의 절구폭포에 이르는 길까지 감탄은 쉬지 않는다.

절경보다 놀라운, 마치 신의 경지에 다다른 듯한 장면도 있다. 절구폭포에 쌓인 돌탑들인데, 바위에 올라탔다. 바위 옆면으로 쌓은 돌탑을 보면 의아함보다 놀라움이 먼저 온몸을 휘감는다. “와 폭포 좋네. 아니, 폭포보다 이 돌탑이 더 진기하네.” 절구폭포를 찾은 이들의 감탄과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절구폭포보다 놀라웠던, 바위 옆면에 쌓은 돌탑들.
절구폭포보다 놀라웠던, 바위 옆면에 쌓은 돌탑들.

일찍이, 그러니까 고려 말 나옹 스님도 주왕산을 찾았단다. “훗날 복되려면 주왕산으로 불러야 한다”라고도 했다는데, 스님이 ‘반청옹(半靑紅)’이란 시도 남겼다고 한다.

“가을 바람 한 떼가 뜰 안을 쓸어가고/ 만리에 구름 없이 푸른 하늘 드러났네/ 상쾌한 기운 무르녹아 사람들 기뻐하고/ 눈빛은 맑아져 기러기 연달아 지나가네/ 밝은 저 보배의 달 가늠하기 어렵고/ 굽이치는 산맥은 끝없이 뻗어갔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 처마 가득 가을빛, 반은 붉고 반 푸르네.”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달랐다. 가을 단풍의 절정이 지난 주왕산의 반은 붉고 반은 흥미진진이었다.

대전사 인근 가볼 만한 곳
주왕산국립공원 들머리인 대전사에서 차로 10분 남짓 이동하면 주산지에 도착한다. 늘 사람이 붐비는데, 늦게 들어가면 주차장에 진입할 때까지 2~4km 이상 기다려야 한다. 주산지와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서 1km 남짓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주산지가 나온다. 사람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가봐야 알 수 있다. 사진으로만 감상하겠다고 패스한다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지도….

이곳이 바로 주산지다. 오징어 게임의 깐부였던 오영수 배우가 노스님으로 출연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이 바로 주산지다. 오징어 게임의 깐부였던 오영수 배우가 노스님으로 출연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주산지 왕버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
주산지 왕버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

주산지
주산지는 농업용수를 모아두고자 만든 인공 저수지다. 1720년 8월에 착공, 이듬해인 1721년에 완공했다. 저수지는 길이 200m, 너비 100m, 수심 8m에 이른다.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라는 치밀하고 단단한 암석이 저수지 아래에 있고, 그 위로 비용결응회암과 퇴적암이 쌓인 큰 그릇과 같은 지형이다. 비가 오면 비용결응회암과 퇴적암층이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풍부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단다.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밑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고 한다.

수명이 20년에서부터 300년이 넘은 왕버들 30여 그루가 있는데, 눈과 카메라 렌즈에 담기에 벅찰 정도다. 11월 7일 오전 7시경에 찾은 주산지에는 저무는 가을과 막 뜨기 시작한 태양이 기묘한 풍경을 만들었다. 떠나는 가을의 소매를 붙잡으려는 이들로 붐볐지만, 주왕산에 왔다면 꼭 들러야 할 명소다. 새벽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촬영하려면 해 뜨기 전 자리를 잡고 기다려야 한다.

하나 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깐부’라는 주옥같은 말을 남긴 오영수 배우가 노스님으로 출연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가 바로 주산지다. 촬영 때 만든 물 위에 뜬 절 ‘부유하는 암자’는 촬영 직후 철거됐으니, 찾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주왕산 여정
코스 : 들머리로 돌아오는 걷기 코스(원점회귀)
대전사~자하교~주왕암~주왕굴~주왕암~망월대~학소대~용추폭포~용연폭포~절구폭포~용추폭포~급수대~자하교~대전사
거리 : 약 8.5km
시간 : 2시간 40분(왕복, 휴식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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