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에서 청동병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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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에서 청동병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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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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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출토,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처리 예정
출토된 청동병 :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지난 25일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으로 진행 중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해체보수 과정에서 청동병(높이 22cm, 가장 넓은 동체부 너비 11cm)이 발견됨에 따라 분석을 통해 삼층석탑의 제작연대 등을 규명할 계획이다.

  청동병은 삼층석탑 3층 탑신석 하부에서 나왔으며, 사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6일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현장에 나가 청동병을 수습하였으며, 센터에서는 엑스레이(X-ray)와 CT(컴퓨터단층촬영) 촬영 등 비파괴조사와 부식물 제거·안정화 처리·재질강화처리 등 각종 보존처리를 할 예정이다.

  또한, 청동병의 3분의 1가량이 흙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 흙을 조사해 유물의 정확한 성격과 제작연대도 파악할 계획이다. 참고로,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지난 2013년 불국사 삼층석탑 2층 탑신석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에서 45과의 사리를 수습하여 과학적 조사 분석과 보존처리를 진행한 바 있다.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월남사 터에 남아 있는 8m의 거대한 3층 석탑으로,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백제 석탑의 기본양식을 따르고 있다. 월남사는 13세기 초반 진각국사(1178~1234)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중창(重創) 연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층석탑의 제작연대를 후삼국기인 견훤대로 보는 견해와 고려 무신정권기인 13세기 또는 고려 후기로 보는 견해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청동병을 분석하면 삼층석탑의 제작연대 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밝혀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석탑은 지난 2013년 안전진단 결과, 석재 간 벌어짐과 응력(변형력) 집중으로 인해 남쪽 면과 서쪽 면의 수평변형이 발생하고 지반 일부에서 이완층이 나타나는 등 해체‧보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2014년 관계전문가 진단을 거쳐 2015년부터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으로 보수정비 기본계획 수립, 석탑 해체보수 설계, 석탑 해체보수 등 일련의 사업을 진행해 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발견한 청동병의 조사‧연구를 비롯해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의 해체‧보수를 더욱 신중히 추진하고, 월남사지 발굴조사와 주변 정비사업을 통해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 규명과 보존관리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사리기 이운 모습 / 문화재청 제공
청동병 수습 모습 / 문화재청 제공

 

* 월남사지는?

유형  유적
성격 절터
건립시기·연도               고려시대
규모(면적) 1만여 평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125호
문화재 지정일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있는 절터.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 월남사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승 진각초창 유이규보비(高麗僧眞覺初創有李奎報碑)’라 하여 송광사 제2세인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시대 임진·정유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그 뒤 복원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17세기 중반 이미 폐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월출산 남쪽 평지에 위치한 월남사지에는 현재 마을이 형성되어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건물터로 보이는 기단부와 초석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절터 안의 백제계 모전석탑(模塼石塔)은 법당터의 전면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최근에 현 모전석탑 서측(向左)의 민가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되었는데, 현 석탑의 주변에서 수습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월남사지에는 원래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 같다.

현 모전석탑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 월남사지석비가 있다. 이 비는 이규보가 비문을 지은 진각국사비로, 현재 비신 일부가 완전히 떨어져나간 상태이나 기단부의 귀부(龜趺)는 완전하게 남아 있다.

월남사지의 전체 규모는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였던 것 같다. 현재 외곽 담장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데 동서방향인 전면의 길이가 175m, 남북방향인 측면의 길이가 185m로서 총면적은 1만여평에 달하고 있다.

가람배치 형식은 전체적으로 보아 완만한 경사지를 4개의 단으로 만들고 그 단부에 축대를 쌓아 점차적으로 오르면서 각각의 단에 평평한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들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좌우측으로도 5개의 단을 두어 각각의 단에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축선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건물과 다르게 배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월남사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뿐이다. 그중 기와류는 문양·태토(胎土)·소성도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의 유물은 극소수이고 고려시대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자기류도 완·접시·병·대접 등 다양하게 수습되었는데, 모두 고려시대의 유물들이다.

출처 : 월남사지 [月南寺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월남사지 삼층석탑 [月南寺址三層石塔 ]

지정종목                          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298호
지정일 1963년 01월 21일
시대 고려
종류/분류 석탑
크기 높이 7.4m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원남리 854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7.4m이다.
월남사는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慧諶:1178∼1234)이 세운 사찰이다. 월남사터에 남아 있는 단층 기단(基壇) 위에 세운 3층 석탑으로, 기단이나 탑신부(塔身部)를 여러 개의 작은 석재(石材)로 각 부를 구성하였다.
기단은 장대석(長臺石)을 사각형으로 돌려놓고 중앙에 높직한 하대석을 놓고 있는데, 그 위에 우주석(隅柱石)과 면석(面石)을 별석으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역시 우주석과 면석을 별석으로 조성하였다. 탑신부는 1층 탑신이 2, 3층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고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고,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塼塔:벽돌로 쌓은 탑)처럼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으며,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 있다. 탑의 상륜부(相輪部)에는 받침 위에 장식한 석재가 남아 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체감률이 낮다. 이 석탑은 전탑의 외모를 지녔다고 하여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고 하였으나, 여러 개의 판석형 석재를 끼워넣어. 결구(結構)한 수법으로 보아 전탑이라 볼 수 없다. 이 탑은 기단과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특징이다. 석재 결구에서 백제탑 양식을 많이 따른 석탑으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 : 두산대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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