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 스님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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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 스님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다
  • 김남수
  • 승인 2023.11.08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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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김일엽, 한 여성의 실존적 삶과 불교철학’

비구니 일엽 스님은 분명 한국불교에 문제적 인물이다. 20세기 초, 신여성으로 세상의 세파를 온몸으로 부딪히다 돌연 출가했고, 출가한 지 20년이 넘어서 발간된 책은 세상에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박진영 교수(아메리칸대학 교수)는 십여 년을 일엽 스님에게 천착했다. 이번에 발간한 『김일엽, 한 여성의 실존적 삶과 불교철학』(김영사)는 2017년 하와이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됐고, 이번에 한국어로 출판했다.

박진영 저·김훈 역 | 김영사 | 25,000원

1896년 평안남도에서 출생한 일엽 스님(출가 전 이름: 김원주)을 상징하는 단어는 ‘신여성’이다.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신학문을 배웠고, 일본에서 유학해 공부하기도 했다. 김원주라는 이름을 세상에 먼저 알린 것은 (비록 몇 호만 발간하고 중단됐지만) 1920년 창간한 『신여자』라는 잡지와 ‘수차에 걸친 결혼과 연애’다. 그리고 1933년 단행한 서른여덟 나이의 출가다.

 

일엽(一葉), 나뭇잎 하나

“(만공)스님은 내가 노래와 시와 소설 쓰는 것을 피하라고 하십니다. 스님은 저더러 세상의 신문이나 외간 사람과도 어울리지 말라고 합니다.”
- 「불도(佛道)를 닦으며」, 『삼천리』, 1935년

일엽 스님이 1950년대 다시 책을 출간하기 전까지 남긴 마지막 글이다. 그 이후부터 글을 쓰지 않았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밤 10시가 되기 전까지는 눕지 않으며 수행했다.

후에 법명(法名)이 된 ‘일엽(一葉)’은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필명이다. 이광수는 김원주에게 “한국의 히구치 이치요(樋口夏子, 1872~1896) 같은 사람이 되라”며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법명으로 많이 알려졌다.

일엽 스님. 김영사 제공

저자인 박진영 교수가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일엽 스님의 생애를 관통했던 ‘자아’와 ‘자유’다. 당대에서나 현대의 김일엽 연구에도 주 관심사는 출가 전의 김원주와 출가 후의 일엽이라는 ‘단절’과 ‘변화’다.

박진영 교수는 “(김원주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내재하는 성차별 문제에 도전하는 방법으로 자아와 자유를 추구했다”면 “그녀는 곧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더 근본적인 원인에 눈을 돌렸고,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실존적 차원을 탐구했다”고 판단한다.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도 추구했던 ‘자아’와 ‘자유’는 불교를 만나 출가한 스님에게 방향은 달랐을지라도 사유의 중심이었다.

삶의 용기, 삶의 긍정

그래도 질문은 계속 남는다. 어려서는 문명이라는 이름과 동일시됐던 ‘기독교’와 친숙했고(아버지는 목사였다), 남들보다 일찍이 신학문의 혜택을 입었고, 신여성으로 세간을 들썩였던 ‘김원주’는 왜 ‘일엽’이 됐을까?

출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문학지 『개벽』 1935년 1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스님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성북동에서 행복스러이 사시더니, 무슨 까닭으로 이혼했는지”라는 질문에, “불도에 나가기 위함이다”라고 단호히 답한다.

저자는 조심스레 ‘(그녀의) 실존적 위기’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실연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와의 만남으로 해석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불교와 만남 이후 진행된 일엽 스님의 궤적을 스님이 지녔던 불교 사상을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김원주. 출가 전의 모습이다. 김영사 제공

삶의 근원적 문제와의 만남이 ‘왜 불교였을까’라는 물음은 또 남는다. 스님의 삶에 다가온 여러 인연을 에둘러 갈 수밖에 없다. 11월 7일 진행된 저자와의 간담회에서 몇 가지를 인터뷰했다.

 

▷ 스님이 출가하기 전이죠? 1920년대 들어 불교와 인연을 맺을 때, 백성욱 박사나 하윤실 스님과도 인연이 깊었습니다.

▶ 백성욱 박사와 인연과 영향이 컸습니다. 스님의 불교에 대한 이해, 사상가로서의 일엽 스님은 백성욱 박사의 불교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죠. 백성욱 박사가 (1928년 수행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금강산으로) 떠나간 것은 스님에게 큰 아픔이었고, 이후에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여러 글에 나타납니다. 그 이후 하윤실과 인연이 시작된 거고요.
그때는 ‘출가하지 않고도 불교 수행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던 듯합니다. 그렇기에 결혼을 했을 것이고요, 나중에는 생각이 변했죠.

 

▷ 일엽 스님을 이끌었던 만공 스님과 인연의 시작은 언제일까요? 출가 전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 스님이 출가하기 전, “1920년대 초에 만공 스님의 법문을 들었고 그때부터 불법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죠.
일엽 스님은 1928년에서나 본격적으로 불교 수행을 시작합니다. 그전에 불교와의 인연이 있기는 한데, 스님이 1927년부터 월간잡지 『불교』에 글을 기재한 것이죠. 그런데 『불교』지에 글을 기고할 때도, 불교에 대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내용도 불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반 문학이었습니다. 당시 “불교 교리에 관한 기사를 읽을 생각도, 흥미도 가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일엽 스님이 후에 권상로 스님과 불경을 읽고, 불교 교리를 배웠다고 한다.

 

▷ 이외에도 출가 전 영향을 받은 곳이 있을까요?

▶ 일본의 여성운동가이자 “태초에 여성은 태양이었다. 진정한 사람이었다”라는 글을 쓴 히라쓰카 라이초(平塚雷鳥, 1886~1971)입니다. 이분이 세이토샤(靑鞜社, 청탑사)라는 여성단체를 결성하고 『세이토(靑鞜)』라는 잡지를 발간하는데, 일엽 스님이 『신여자』라는 잡지 주간으로 있으면서 활동한 여성 모임이 청탑회(靑塔會)입니다. 한자로 ‘푸른 스타킹’을 뜻하는 청탑(靑鞜)에서 ‘푸른 탑’을 뜻하는 청탑(靑塔)으로 바꾼 거죠. 한자만 바꿨습니다.
그런데 라이초는 참선 수행자였습니다. 내면의 정신혁명이 여성해방의 기반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죠. 또 “생의 철학, 창조의 철학 등으로 불리는 니체의 사상은 내가 좌선을 체험할 때 체득한 것을 통해서 볼 때, 공감되는 것이 적지 않다”면서, 참선 체험을 독일 철학자 니체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창조성’과 ‘삶의 긍정’은 일엽 스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임을 거듭 강조한다.

박진영 저자

박진영 교수는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에서 ‘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비교철학연구’(지도교수 박성배)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아시아 선불교와 화엄불교, 여성 철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근대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여성 수행자 – 일엽’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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