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된 선승, 범일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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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선승, 범일국사
  • 자현
  • 승인 2023.11.2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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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무형유산 강릉단오제의 주신, 범일국사 통효의 생애와 사상

 

신이 된 선승, 범일국사
저작·역자 자현 지음 정가 32,000원
출간일 2023-11-20 분야 불교-학술
책정보

판형 크라운판 변형(173×230mm)|두께 28mm 544쪽|ISBN 979-11-93454-06-0 (9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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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우리나라에 선종의 뿌리를 심은 사굴산문의 개창자, 범일국사!

그는 선승인가, 신인가?

우리나라에 선종(禪宗)의 뿌리를 심은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창자, 범일국사(梵日國師). 그는 한국불교사의 중요한 위치에 놓인 선승(禪僧)이지만, 한편으론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으로 추앙되고 있다. 우리 불교사에서 생불(生佛)이나 신이승(神異僧)으로 평가받는 다른 고승(高僧)들과 달리 민간 신앙적 변형을 거친 독특한 경우이다.

불교계 전방위 지식인 자현 스님의 이번 신간은 이런 범일국사와 관련한 우리 불교사의 주요 장면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하여 범일국사의 탄생과 출가, 입당 유학 시기는 물론 귀국 이후의 행적까지, 현존하는 옛 기록과 기존의 연구 성과, 중국의 지리적 측면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해 그의 생애를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로써 범일의 생애에 관한 후대의 설화적 윤색, 강릉단오제의 주신과 관련된 측면을 더욱 명확히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범일국사가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민간 신앙 제례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된 사연을 분석한다. 범일국사는 민간의 신앙과 어떻게 결합되어 주신으로 정립되었는지, 불교의 틀을 넘어 신으로 숭배되는 독특한 이력의 고승으로 변모하게 된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일우자현(一雨玆玄)

무봉 성우 대율사께 율맥 전수(2020), 여천 무비 대강백께 강맥 전수(2022), 중봉 성파 종정예하께 선맥 전수(2023).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율장)와 고려대학교 철학과(선불교), 그리고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건축)・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미술학과(고려불화)・부디스트 비즈니스학과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강의전담교수와 능인대학원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와 불교학연구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또 월정사 교무국장, 사단법인 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불교학회 법인이사, 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인도・중국・한국・일본과 관련된 180여 편의 논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수록했으며, 『시대를 초월한 성자, 한암』, 『한국 선불교의 원류 지공과 나옹 연구』, 『성공을 쟁취하는 파워 실전 명상』, 『최강의 공부 명상법』 등 6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저서 가운데 『불교미술사상사론』은 2012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사찰의 상징세계(상・하)』는 2012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붓다순례』(2014년)와 『스님의 비밀』(2016년), 『불화의 비밀』(2017년), 『스님,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2019년)는 각각 세종도서, 그리고 『백곡 처능, 조선불교 철폐에 맞서다』는 2019년 불교출판문화상 붓다북학술상에 선정되었다. 이외에 제7회 영축문화대상(학술 부문)과 제1회 한암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추천의 말

“범일국사는 시대를 초월한 한국 선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입니다. 이분께서 개창하신 사굴산문에 보조지눌과 송광사의 16국사 그리고 나옹혜근과 환암혼수, 무학자초 등의 거목들이 배출됩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선종사를 관통하는 남상濫觴인 범일국사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_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 중봉성파

목차 위로

머리말 민중에 의해 신으로 추앙된 고승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의 목적과 선행 연구 검토

1. 연구의 목적

2. 선행 연구 검토

제2절 연구의 범위와 서술 방향

제2장 범일의 탄생과 입당 유학

제1절. 범일의 탄생과 붓다와의 연결 검토

1. 탄생의 신이성과 붓다와의 연결

2. 「범일전」의 신이성과 붓다화

제2절. 범일의 출가와 입당 유학

1. 범일의 출가 배경과 경주행

2. 범일의 입당 시기와 초기 행적

제3장 범일의 남종선 사법과 귀국 후 행적

제1절. 범일의 남종선 사법과 회창법난

1. 범일의 마조계와 석두계 계승

2. 수도행과 회창법난의 관련 기록 검토

제2절. 입당의 마지막 행적과 진귀조사설의 문제

1. 육조탑묘 참배와 귀국 연도 문제

2. 진귀조사설의 의미와 범일의 제창 의도

제3절. 백달산 연좌와 명주도독의 굴산사 초빙

1. 백달산 연좌 기록의 내포 의미 검토

2. 굴산사 초빙과 40여 년 주석의 강조 의미

제4장 범일의 굴산사 주석과 명주불교로의 확대

제1절. 명주도독 김공의 범일 후원과 성격

1. 명주군왕 김주원과 명주도독 김공의 관계

2. 명주도독 김공과 사굴산문의 후원 세력 변화

제2절. 범일의 정취보살상 봉안과 오대산 주석 등

1. 낙산사 정취보살상의 봉안 기록 검토

2. 범일의 오대산 주석과 사굴산문의 관계

3. 잔존하는 범일의 불사 기록과 흔적

제5장 범일의 강릉단오제 주신으로서의 확립 과정 검토

제1절. 강릉단오제의 특징과 국사성황신 성립 기록

1. 중국 단오제와 강릉단오제의 차이와 특징

2. 대관령 산신과 국사성황신의 관련 기록 정리

제2절. 이승의 존재와 범일로의 대체 가능성

1. 이승과 승・속이신의 ‘승’에 대한 판단

2. 자장에서 범일로의 변화 가능성과 타당성

제3절. 명주 지역의 범일 신격화와 민간 신앙화

1. 민간 신앙의 범일 수용과 신격화 시기

2. 범일에게서 확인되는 민간 신앙적 구조

3. 강릉단오제에서의 주신 확립과 범일

제6장 결론

참고문헌

범일 연표

상세소개 위로

아직 숙제로 남아 있는 범일국사의 생애를 복원하고

유네스코 무형유산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된 사연을 밝히다!

인간은 때로 인간을 신으로 섬긴다. 중국인들이 관우를 상업과 전쟁의 신으로 섬기듯 말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신이 최고의 대상이 아니므로, 고승을 붓다나 보살로 여긴다. 당나라 때 유학 온 신라 승려인 김지장을 지장보살로 추앙하는 것이나, 의상대사를 금산보개여래의 화신으로 이해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우리 불교에는 특이하게도 ‘신’이 된 고승이 있다. 바로 범일국사이다.

범일국사는 당나라에 유학해 선불교를 배우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선종의 뿌리를 심은 고승이다. 특히 그가 연 사굴산문은 구산선문의 대표 산문으로, 이후 순천 송광사의 보조지눌과 양주 회암사의 나옹혜근 등 거목들이 배출하기도 하였다. 특이한 점은 그런 선승이 민간 신앙 제례로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추앙된다는 점이다. 우리 불교사에서 생불(生佛)이나 신이승(神異僧)으로 평가받는 다른 고승(高僧)들과 달리 민간 신앙적 변형을 거친 독특한 경우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떠한 이유로 민중들에 의해 신이 되었을까?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추적하는 불교계 전방위 지식인 자현 스님의 연구서이다.

아직 숙제로 남은 범일국사의 생애를 복원하다

저자는 먼저 범일국사의 탄생과 출가, 입당 유학 시기는 물론 귀국 이후의 행적을 정리한다. 이는 시기적으론 810년 1월부터 889년 4월에 이르는 80여 년의 기간이 되며, 옛 명주 지역에서 중국 대륙에 이르는, 지역적으로도 매우 광범위하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태어났다고 전하는 한 고승의 생애를 다시금 복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로써 ‘범일국사에 관한 후대의 설화적 윤색(강릉 굴산사지 일대를 배경으로 한 범일국사의 탄생설화 등),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추앙되는 부분과 관련된 더욱 명확한 접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사에서 범일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매우 크다. 그런 이유로 다수의 연구가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강릉 굴산사지 발굴에 따라 간접적이긴 하지만 범일의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또한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시기를 전후하여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서 그와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다만 저자는 범일에 관한 초기 연구는 상대적으로 치밀함이 적었고, 강릉단오제와 관련한 연구는 대체로 연구 용역에 관한 결과물이 다수를 차지해 연구량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미진하다고 평가한다.

그런 아쉬운 측면을 고려한 저자는 현존하는 옛 기록으로 〈(굴산)통효대사 연휘탑비〉 비편, 이 비문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당집』(952) 권17의 「명주굴산고통효대사」, 범일의 사법제자인 낭원개청의 비문과 낭공행적의 비문, 범일에 관한 단문과 삽화가 실린 『선문조사예참의문』 등을 1차 자료로 삼는다. 나아가 기존의 연구 성과, 그리고 중국의 지리적 측면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해 그의 생애를 복원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된 사연을 밝히다

다음으로 저자는 앞서 복원한 범일의 생애를 바탕으로 명주 지역 신격화 및 민간 신앙으로의 확대 수용과 변형, 그리고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 확립되는 과정에 대해 살핀다.

앞서 이야기했듯 범일국사에게서는 ‘선승이자 사굴산문의 개창자’라는 역사적인 측면과 ‘대관령 및 강릉단오제와 관련한 민간 신격화’라는 이중 구조가 발견된다. 이에 따라 다시금 복원한 범일의 생애를 기반하여 민간 신격화 과정과 관련된 분석을 위해 현존하는 옛 기록을 살핀다. 그 중심엔 『고려사』 권92의 〈왕순식〉과 『임영지』 「전지」가 있다.

전자의 자료는 대관령 신앙과 관련된 승려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자의 자료는 범일의 신격화와 민간 신앙적 변형이 늦어도 조선 전기에 존재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물론 두 자료는 기록된 시기나 구성면에서 차이가 크지만, 대관령을 아우르는 명주 지역에 국한된 전승이란 점에서 강릉단오제 주신 정립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이 두 자료의 관계를 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한다. 그리하여 범일이 자장 이래 신이승적 면모를 계승하는 민간 신앙적 측면에서 대관령 국사성황신과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더 분명하게 밝힌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주장은 기존에 있던 강릉단오제의 주신이 조선 후기에 김유신에서 범일로 변화했다는 주장이나 대관령 국사성황신의 ‘국사’가 범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산신이나 성황신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 등과는 다른 관점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범일은 불교적으론 국사이지만, 민중에 의해서는 대관령을 관장하는 국사성황신,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기도 한 강릉단오제의 주신의 역할도 맡고 있다. 사찰에 갇힌 고목(古木)이 아닌, 민중의 요구에 의해 신이 된 범일의 모습은 민중에 발맞추어 나아가는 진정한 고승의 면모를 잘 나타내 준다.

우리 고대사에 속하는 인물로서 관련한 역사적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범일국사. 하지만 강릉단오제를 통해 그의 탁월한 수행력과 실천적 측면은 지금도 여여히 흐르고 있다. 어쩌면 범일국사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우리 불교의 대표 고승인지도 모른다.

책속으로 위로

범일에게는 ‘선승이자 사굴산문의 개창자라는 역사적인 측면’과 ‘대관령 및 강릉단오제와 관련된 민간의 신격화된 부분’의 이중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시기적으로 봤을 때 역사적인 전승이 퇴색한 후에 설화적인 요소로 윤색된 것이 아니라, 역사와 설화가 상당 기간 공존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특이한 이중 구조라고 하겠다. _ 16쪽

범일은 한국 고대사에 속하는 인물로 고층에 속하는 연대상 관련 자료가 많지 않다. 자료의 부족에는 사굴산문의 종찰인 굴산사가 여말선초에 폐사되었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영서의 오대산이 이후 사굴산문의 영향권으로 편입되고, 지눌계 송광사 역시 사굴산문의 종찰급 사찰로 상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일에 대한 전승 자료가 적은 것에는 다소 의아한 측면이 존재하기도 한다. 즉 굳이 굴산사가 아니더라도 이들 사찰에 의해서 범일에 대한 전승이 유지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자료만으로는 이런 양상은 전혀 살펴지는 것이 없다. _ 27쪽

「범일전」에 기록된 범일의 탄생 신이는 크게 세 가지이다. 그것은 ① 태양을 품는 태몽, ② 13달 만의 출산, ③ 나계, 즉 나발과 정상계주와 같은 이상이다. 이에 반해 〈석증-범일〉에는 서로 연결된 두 가지만 확인된다. ① 우물가에서 태양이 배를 비추고 물을 마시자 임신됨, ② 얼음 위에 버리자 새가 덮어 주고 밤에 빛이 났다는 것이다. 양자는 동일인의 탄생 신이치고는 편차가 크다. 그러나 양자의 내용이 충돌하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범일전」이 태몽과 아이의 신이성에 주목하고 있다면, 〈석증-범일〉은 잉태와 버려짐이라는 논리적 층위에서 차이가 있는 영웅신화(hero myth)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_ 57쪽

태양 빛이 비치고, 아이를 내다 버리니 짐승과 새가 덮어 주었다는 것은 고주몽 신화에서도 확인된다. 또 버려진 고승을 새(까치와 까마귀)가 덮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고려 말 나옹의 영덕 까치소 설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새를 통한 영웅설화가 불교로 수용돼 고승의 탄생과 결합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_ 63~64쪽

「범일전」에는 범일이 810년 음력 1월 10일에 13개월 만에 태어났는데, “나계의 자태가 빼어났으며, 정주가 이상이었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또 889년(80세) 음력 5월 1일에 “우협에 누족하고 굴산사 상방에서 시적”한 것으로 나타난다. 탄생 때의 이상은 선천적인 것이며, 입적 시의 자세는 붓다를 의식한 의도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논리적 층위가 다르기는 하지만, 시종을 붓다에 맞추려는 붓다화가 존재함을 인지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_ 82쪽

범일의 출가 사찰 및 종파와 관련해서 가장 유력시되는 것은 명주 지역에 있는 낙산사의 화엄종(당시는 화엄업)이다. 이와 같은 추론이 가능한 것은 「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에서 범일이 의상의 제자라는 이야기가 일연 당시까지도 전해지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범일이 의상의 제자라기보다는 의상계 화엄종의 제자였을 개연성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_ 102쪽

명주 출신의 범일이 경주에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는 것은 범일이 명주불교보다 한 단계 위인 경주불교를 동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명주와 경주의 거리를 고려하고, 또 당시에는 명주권 안의 계단에서도 구족계를 받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범일은 경주불교를 동경해서 수도로 가 구족계를 받는 것이다. 이는 범일이 829년 구족계를 수계한 이후에도 경주에 남아 835년까지 6년간(829~835) 수학하는 것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_ 108쪽

제안이 범일의 됨됨이를 높이 보아 아사리라고 칭한 판단은 매우 적절했다. 범일은 제안의 두 번째 물음에 해와 달에는 동서의 장애가 있을 수 없다고 답변한다. 이는 와도 온 것이 아니고 가도 간 것이 아닌 본체에 입각한 본질론적인 대답이다. 즉 현상의 속제에서는 가고 옴이 있으나 본질의 진제에서는 여여부동할 뿐이며, 이를 남종선의 자성이나 불성으로 환원시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_ 143쪽

제안이 범일을 제접할 때 자기 말이 아닌 마조의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범일이 제안의 사법제자인 동시에 범일에게 마조의 사상이 온전히 이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범일은 제안의 제자인 동시에 마조의 온당한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_ 146~147쪽

삽화 우측에는 사슴 두 마리가 입에 무언가를 물고 와서 주는 것 같은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우측 사슴은 식물을 물고 있지만, 좌측 사슴이 물고 있는 것은 판단이 쉽지 않다. 그런데 「범일전」을 보면, 범일이 844년 제리(수도)에서 회창법난을 만나 고산에 은거해 극심한 고초를 겪은 내용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굶주려 탈진한 범일에게 “산짐승이 입에 떡과 음식을 물고 와서는 (범일의) 자리 옆에 두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_ 149쪽

약산은 범일을 긍정하고 칭탄하며, ‘신라의 청풍이 중국의 선승을 얼려 죽인다.’라는 심법의 전수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신라의 범일이 중국의 선승보다 낫다는 극찬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범일은 제안의 마조계를 중심으로 약산으로 대표되는 석두계마저 통합하는 모습을 확보하게 된다. 즉 약산이 석두에게 격발되어 마조에게서 깨침을 얻음으로써 ‘석두를 중심으로 하는 마조의 구조를 확립’했다면, 범일은 이와는 반대로 ‘마조계를 중심으로 석두계가 보조가 되는 통합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_ 162쪽

범일의 위치는 명주의 주통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범일이 일정 부분 명주도독의 스승과 같은 역할도 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 1978년 관동대학교의 지표조사 때 발견된 ‘명주도독’이 새겨져 있는 비편이다. _ 280쪽

낙산사의 관음전 옆에 정취전이 조성된 것은 신라 하대 관음 신앙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는 범일의 사굴산문 영향이 낙산사에 강하게 작용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_ 322쪽

‘오대산 금강사’ 명문 기와의 발견은 기존에 발견된 ‘오대산’ 명문 기와의 타당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오대산의 영향을 더욱 구체화해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이는 오대산의 굴산사에 대한 영향이 나옹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고 굴산사의 위상을 고려해 봤을 때 굴산사의 영향 또한 오대산에 미쳤을 것이라는 추론은 무리한 판단일 수 없다. _ 367쪽

현행 강릉단오제의 주신은 대관령 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이다. 이는 성황제가 조선의 성리학 이전에는 무속적인 요소가 강력했다는 점에서 불교의 민간화를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고승인 범일이 남성 국사성황신인데도 불구하고, 강릉의 정씨녀를 국사여성황신으로 등장시켜 합사(합배)하는 방식은 고승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모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민간 신앙화 과정에서 불교보다도 무속적인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_ 401쪽

범일의 민간 신앙 수용 시기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점 중 하나는 대관령의 비중 차이이다. 주지하다시피 명주에는 대관령이라는 영동과 영서를 분기하는 험난한 지형이 존재한다. 신라시대에는 경주가 수도였기 때문에 영서보다는 영동의 강릉을 중심으로 명주가 움직였다. 즉 동해안 길을 따라서 이동하는 경주와 강릉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_ 454쪽

범일의 민간 신앙 수용에 따른 구조는 총 네 가지로 살펴진다. 첫째, 영웅신화적인 측면으로 이는 〈석증-범일〉을 통해서 확인된다. 여기에서는 태양 숭배와 무염수태, 그리고 탄생 후의 이적 양상이 기록되어 있다. 둘째, ‘국사’와 ‘국시’, ‘국수’ 등의 명칭에 대한 부분이다. 국사는 불교의 국사와 발음과 내용적인 부분에서 연결되는 측면도 있지만, 여기에는 전통적인 무속의 산신이나 성황신과 같은 신을 지칭하는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셋째, 조선 후기에 편입되는 정씨녀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호환과 연관된 산악 숭배의 양상을 잘 나타내 준다. 또 범일을 승려라기보다는 무속의 신으로 보는 관점이 강하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측면이다. 넷째, 대관령 국사성황당의 〈무신도〉에서 확인되는 표현이다. 여기에 범일은 산악 숭배 및 무인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는데, 이 역시 무속적인 강자에 대한 의지를 잘 나타내 준다. _ 461쪽

그렇다면 무속적인 관점에서는 승려인 범일의 결혼도 가능할까? 민간 신앙적인 무속에는 일관된 체계성보다는 강함에 대한 의지가 더 중요하다. 특히 국사성황신은 범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민간 신앙적인 변화를 거친 무속적인 신으로서의 범일이다. 즉 불교적인 사굴산문의 범일과는 동일인인 동시에 논리적 층위를 다르게 확보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2차 변화 시기에 국사성황신의 결혼 구조가 발생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국사성황신이 범일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불교적인 범일이 아닌 민간 신앙에 수용된 무속적인 범일이기 때문이다. _ 473쪽

강릉단오제의 주신으로서 범일은 대관령과 관련된 이승의 불교적인 측면을 계승하는 동시에 민간 신앙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대관령 성황은 임진왜란 이후 민중적인 요청 구조에 의해 강력한 무장인 김유신과 관련된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대관령 성황으로서 민간 신앙에 의해 완성되는 범일이 주류였음을 인지해 볼 수 있다. 즉 강릉단오제의 주신은 불교적인 흐름과 연결된 범일로 보는 것이 타당한 판단이라고 하겠다. _ 497~4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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