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역자 | 강수하 | 정가 | 14,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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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9-12-06 | 분야 |
문학 > 에세이 > 한국 에세이 |
책정보 |
장정: 반양장 쪽수: 240 판형: 122 * 188mm 두께: 15mm ISBN: 979-11-90136-06-8 (03810) |
주어진 인생 말고 스스로 만드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86년생 강수하의 분투기
스스로 이름을 짓고서 오래전부터 블로그에 일기처럼 써 온 에세이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나누어 온 강수하. 이 책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는 여성은 독립적이기 불리한 한국 사회에서 독립을 꿈꾸며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강수하가 냉정한 분노로 자신을 지켜 나가는 이야기다. 책에 실린 글 가운데 예비 시부모와의 첫 만남을 다룬 〈신붓감 1순위, 교사 며느리〉, 결혼 후 두 번째 명절 후기인 〈빚 없는 채무자, 며느리〉는 브런치 연재 당시 각각 30만 회가 넘는 조회수와 200회가 넘는 공유 횟수를 기록하며 수많은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과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그만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는 이 에세이집에는, 자신을 뭉개려 하는 불공정한 관계들로부터 벗어나 서로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우리가 그저 자기 자신이기만 해도 되는 연대 속에서 딱히 독립적일 필요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독자들에게도 가닿았으면.
강수하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공대를 졸업하고 서울 외곽에 자리한 공장의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다. 남들이 사는 대로 살고 있지만 그것에 늘 불만이 많았다. 그 불만을 글로 쓰다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때의 공감을 기억하고 다시 나누고 싶어서 계속해서 글을 쓴다. 큰 물질적 보상은 없지만 즐겁게 열심히.
프롤로그_과업의 대물림
1. 내 이름은 강수하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나의 복수 실패기
희경의 알리바이
아빠가 없는 이유
패륜이 다가와서 말했다
내가 처음 성차별에 눈떴을 때
조건부 용돈은 화대다
인순의 일생
가족애 권하는 사회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아서
2. 결혼은 선택이었을까
결혼 카운트다운
현실주의자의 프러포즈
신붓감 1순위, 교사 며느리
우리는 계속 동등할 수 있을까
명절 공포증
남자가 철이 들 때
결혼하는 이유를 찾아서
혼전 계약서
결혼일까, 입양일까
결혼 전야
나의 재미없는 결혼식
내가 결혼한 진짜 이유
명절 출구 전략
첫 명절 후기
며느리의 안부 전화
빚 없는 채무자, 며느리
3. 각성은 덤
어릴 적에는 한량을 꿈꿔 봐도 좋을 거야
점심시간
촌스러운 아저씨들에게 대처하는 방법
이쁨의 권위
강 대리는 털털해서 좋아
모욕에 대처하는 필살기를 장착하는 방법
사장님에게 보내는 편지
퇴사는 토하듯이 하는 거야
동업자 설득하기
4. 출구를 찾아서
나는 내가 한없이 평범한 존재일까 봐
인생은 몇 인용 프로젝트일까
자기만의 방
결혼과 함께 서로의 인생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토요일 아침 사용법
내가 딩크를 결정한 이유
플랜 B와 반반결혼
가정의 달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나의 결혼 1주년 후기
에필로그_어쩌면 만나게 될지도 모를 당신에게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
독립을 꿈꿀 수밖에 없는 86년생 강수하의 분투기
“주어진 인생 말고 스스로 만드는 인생을 살기로 했다.”
권위적인 할머니,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아빠, 무뚝뚝한 엄마 밑에서 독립적 인간으로 자라난 강수하. 공대를 나와서 남자들로 빽빽한 어느 공장의 연구실에 다니며 아저씨들의 촌스러움과 무개념을 정면에서 적절히 지적할 줄 알게 된 30대 여성 직장인 강수하. 하지만 원래는 교사 며느리를 원했다며 “여자가 일에 너무 야망을 가지면 가정이 무너”진다는 예비 시어머니의 말에는 차마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뒤늦게 자신의 비겁함을 후회하는 86년생 기혼 여성 강수하.
‘강수하’는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분노가 많았고 사주에 물이 없었던 강수하는, 불과 같은 분노를 식히기 위해 물이 들어간 한자인 강 강(江), 물 수(水), 물 하(河) 자를 써서 제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주어진 인생 말고 스스로 만드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오래전부터 블로그에 일기처럼 써 온 에세이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나누어 온 강수하는, 이 책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에서 여성은 독립적이기 불리한 한국 사회에서 독립을 꿈꾸며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 실린 글 가운데 예비 시부모와의 첫 만남을 다룬 〈신붓감 1순위, 교사 며느리〉, 결혼 후 두 번째 명절 후기인 〈빚 없는 채무자, 며느리〉는 브런치 연재 당시 각각 30만 회가 넘는 조회수와 200회가 넘는 공유 횟수를 기록하며 수많은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과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그만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는 이 에세이집에는, 자신을 뭉개려 하는 불공정한 관계들로부터 벗어나 서로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우리가 그저 자기 자신이기만 해도 되는 연대 속에서 딱히 독립적일 필요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독자들에게도 가닿았으면.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한
강수하의 독립이 언젠가 쉬워지기를
강수하는 “(엄마 아빠) 둘 다 내 편 아님”이라고 작게 적어 눈에 띄지 않게 스탠드 뒤에 붙여 놓고,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본능을 억지로 누르던 초등학교 2학년 아이였다.
자라면서는 집에 두 개밖에 없는 방을 하나는 엄마 아빠에게, 다른 하나는 아빠에게 빼앗긴 채 거실에 이층 침대를 두고 동생과 함께 지냈으며, 남초 직장에서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 모욕감과 수치심에 몸을 떨었고, 남자 친구와의 동거로 이미 충분했지만 ‘결혼 적령기에 적당한 짝과 결혼을 하라’는 사회의 지령과 압박에 굴복해 결혼을 실행하며 자괴감을 느꼈다. 강수하를 둘러싼 것들은 그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수하는 제 인생을 수수방관하지 않는다. 대학생 시절 10만 원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의 감정 노동을 사던 귄위적인 할머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용돈을 거부하고, 동등한 결혼 생활을 위해 혼전 계약서를 쓰고, 결혼으로 생겨난 가족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시부모와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는다. 성차별과 언어폭력을 일삼는 회사 아저씨들에게는 눈을 똑바로 뜨고서 ‘무례하게’ 맞서고,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미니멀리즘을 수행하는 한편, 수입원을 늘리는 식으로 퇴사 준비까지 차곡차곡 해 나간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안쓰러움, 분노, 슬픔, 허탈감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위트와 여유, 영리함,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나’로 오롯이 서겠다는 꿋꿋한 의지와 용기도 함께 느껴진다.
강수하는 변화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기 삶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무들이 그러하듯 그가 내린 뿌리가 독립적이고자 하는 우리 각자의 뿌리와 서로 이어진다면, 우리 모두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독립이 조금 더 쉬워지는 생태계가 언젠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부디 그러하기를.
나는 취직을 할 때도 차를 살 때도 집을 구할 때도 선택과 고민의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엄마를 배제했다. 이렇게 하기로 이미 계약까지 끝냈으니 알아만 두라는 식으로 결과만 통보했다. 엄마가 딸의 인생에서 소외되는 기분을 맛보여 주고 싶었다. 무뚝뚝한 엄마가 딸을 독립적으로 키웠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마땅했다. 내 안의 공감받지 못한 어린아이는 그렇게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했다. 나의 독립성으로 엄마에게 징벌을 내리고자 했다. (p. 23)
우리 집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어쩌다가 집으로 온 전화를 받았는데 상대방이 할머니면 집에 혼자 있는 척하는 것이다. (중략)
할머니는 어떤 사람은 집에서 중요한 일을 할 수도 있고, 혹은 좀 쉬고 싶어서 하루 정도는 외출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요청하지 않은 것을 받을 때 별로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돈을 벌진 못해도 사는 게 바쁘기도 하다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싶지 않기도 하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거절은 허용되지 않았다. 할머니가 모르는 것은 그 밖에도 많았으므로 우리 식구는 할머니를 이해시키길 일찍이 포기했다. 대신 누군가가 할머니의 전화를 받으면 나머지 식구들이 그 옆으로 달려가서 온갖 손짓 발짓으로 ‘나는 집에 없다고 해!’라는 뜻을 전했다. 그렇게 우리 식구만의 룰이 탄생했다. (pp. 49-50)
남자 친구가 피식 웃으며, “사실은 교사 며느리를 원하셨거든.”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남자 친구 어머니가 교사의 장점과 사기업을 다니는 여자의 단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직업 안정성에 대한 말씀도 있었지만 주로 육아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여자가 일에 너무 야망을 가지면 가정이 무너져.” 있지도 않던 야망 지피는 소리 하시네. (p. 79)
“결혼하지 않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 있는 선택지는 뭐야?”
명절에 남의 집 부엌에서 자아가 상실되는 슬픔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결혼을 하기로 합의를 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청혼을 철회하고 더 이상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설사 나를 위한 결정이라 해도 마음이 아플 것이다. 나는 나의 자아를 붙잡아 줄 남자와 결혼을 하면 되고, 그러고 싶어서 너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전략을 짜 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결혼 후 우리의 명절이 어떠한 형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예측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p. 89)
‘남의 자식 데려다 키우기 되게 힘드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결혼 준비를 하는 것인지 입양 준비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나는 아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선을 긋고 친부모와 미리 공유함으로써 나를 방어하기 급급했다. 아이는 입양식 날 가게 될 여행과 친부모가 재촉하는 것들에만 관심이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p. 104)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대신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다니기 시작한 지 6년이 다 되어 간다. 10분 일찍 나가서 2.5킬로미터를 걷고, 10분 정도 공원에 앉아 있다가 다시 2.5킬로미터를 돌아온다. (중략)
앉아 있노라면 많은 이들이 오가는 걸 보게 된다. 등산을 막 마친 중년들, 축구장에서 축구를 하는 동호회 사람들,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들, 졸업 사진을 찍는 고등학생들, 도시락을 들고 산책을 나온 주민들, 그리고 벚꽃과 단풍과 고양이 친구들까지. 다들 저마다 눈부신 태양 아래서 자신들의 시간을 즐긴다. 나만 빼고.
나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되어 버린, 회사에 돈을 받고 팔아넘기고 만 시간 속에 있다가 그 사이를 비집고 잠시 나왔을 뿐이다. 잠깐이라도 내가 나이고 싶어서 회사가 허락해 준 시간만큼만 잠시 나왔을 뿐이다. 나는 나를 먹여 살리고자 할 뿐인데 왜 밥을 굶어 가며 내가 나이고자 하고 있을까. (pp. 153-154)
본사에 정리해고 공지가 떴다. 역시나 본사답게 비까번쩍한 쇼룸에서 멋진 수트를 차려입은 임원이 유창한 언변으로 정리해고의 이유와 규모를 프레젠테이션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멋져서, 자막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올해 최고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따위의 내용을 말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회사는 그 동영상을 전 직원에게 보란 듯이 뿌렸다. 정리해고 대상에서 우리 지사는 제외됐지만 여기서도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내 익명게시판에는 암울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도 곧”이라느니 “이 산업은 이제 사양길”이라느니.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쁘네 ㅋ”
(중략)
그의 미모 때문에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무시무시한 내용이 무시당한 것은 그의 잘못일까, 아니면 청자의 잘못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만 누구의 잘못인지 잘 모르겠다. 누구나 예쁘게 태어날 수 있는 거고, 누구나 해고당하는 순간에도 멍청할 수 있는 거니까! (pp. 158-159)
동생이 퇴사를 하고 나서 내게 말했다. “퇴사는 토하듯이 하는 거야.” 결심하고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해 버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토하는 것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때가 언제일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p. 178)
예전에는 전전긍긍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자유롭지만 때론 불안정하고, 공들여 키운 모범생 같지만 한편으론 싼값에 함부로 내놓은 매물 같기도 한 그런 요상한 것이 더 이상 아니다. 내 삶이 결혼 전과 비교했을 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그냥 내가 날 그렇게 정체화하게 되었다. 누가 그것이 좋은지 싫은지 묻는다면, 글쎄, 잘은 몰라도 싫지는 않다. 《그 남자네 집》 속의 새댁처럼 구슬 같던 시절을 떠나보냈더라도, 첫사랑이 가물가물한 때가 되더라도, 주저앉아 그것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저 자기 연민을 안주 삼아 비련의 여주인공 놀이를 하는 것일 뿐. 나는 늘 새로운 것을 탐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늙고 변하는 것도 그 새로운 것들에 포함된다. 그리고 탐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나는 계속 특별한 존재다. (pp. 188-189)
강수하는 가부장제가 주는 모멸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고 있다. 명절에 시가에 가는 것도, 가지 않는 것도 비슷하게 지치는 일인 걸 잘 알면서도.
여자인 자신을 같은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직장에서 그녀는 자신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점심을 굶고 혼자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강수하는 강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 꿋꿋하다. 그래서 읽다 보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며 고민하는 페미니스트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강수하가 너무 독립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함께 옆에 서서 가고 싶다.
-서늘한여름밤(《나에게 다정한 하루》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