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무빙템플 - 움직이는 절 무빙템플의 야단법석

[특집] 불교 속 작은 공동체

2018-03-02     유윤정

불교 속 작은 공동체

탈종교화 시대, “작은 공동체가 희망이다”는 말이 많이 보인다. 이웃 종교에서는 이미 ‘작은교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작은 공동체 집단의 필요성을 느끼며 작은 공동체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에 주목하고 있다. 작은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가 친밀하다. 그들의 활동은 능동적 이며, 빠른 의사결정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작은 공동체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단체가 아닌 참여와 소통이 가능하고 자율성이 보장된 수평적인 집단으로 움직인다. 월간 「불광」 2월호. 수행, 신행, 봉사 등 지속적으로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불교 속 작은 공동체를 만났다.

01 불광사 법등 법회 : 법등가족 서로를 비추다 / 김우진
02 정토회 일산 법당 : 우리는 행복한 수행자  / 김우진
03 움직이는 절 무빙템플의 야단법석  / 유윤정
04 금강강독회 :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 유윤정

세존은 길을 나섰다. 사슴이 뛰노는 넓은 들에서 여래는 다섯 명의 비구에게 법을 전했다. 야단법석 野壇法席 . 부처님은 들과 길에서 법을 설했다. 가르침은 길에서 길로, 무리에서 무리로 전해졌다. 그리고 여기, 길에서 법을 전하던 부처님의 뜻을 되새기며 자신을 개발하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모색하는 새로운 불교 공동체가 있다. ‘무빙 템플 Moving-Temple ’, 움직이는 절이다. 사부대중이 열린 공간에서 만나 탁마하는 이들, 무빙템플의 법회 현장을 찾았다.

사진:최배문


| 무빙템플은 어디에 있을까?

무빙템플의 법회가 열리는 금요일 오후 2시, 서울 마포 도심에 위치한 복합문화운동단체 ‘미르 문화원’에 사람들이 속속 모였다. 눈을 맞춰 안부를 묻고, 차를 건네고,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이들은 아주 친한 듯했다. 이제 막 미르문화 원에 도착한 이들은 불단을 향해 정성스레 합장배례를 올렸다. 불단에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부처님이 좌대에 앉아계셨다.

‘현대인들은 절에 갈 시간 여유가 부족하다. 절은 대체로 고준한 산속에 있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하면서 법회를 할 수는 없을까? 꼭 공간이 있어야만 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절이 없어도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법회를 열어보면 어떨까?’

무빙템플. 현대인의 삶에 맞춘 새로운 불교 공동체는 명법 스님의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 됐다. 무빙템플은 지도법사 명법 스님과 뜻을 함께한 불자들이 모여 이룬 열 명 남짓한 작은 공동체로 2013년 처음 문을 열었다. 이 수행공동체는 움직이는 절이라는 이름답게, 뜻을 함께한 불자 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법회를 열고 수행을 한다.

“공간의 제약이 없으니 자유롭게 법회를 열었습니다. 공원에서 걷기명상을 하기도 하고, 불교영어도서관에서 만나기도 했지요.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 좋은 미술전시나 영화, 음악을 나누던 날도 있었습니다.”

명법 스님은 그동안의 무빙템플의 법회를 소개하며, 2016년 미르문화원이 개원하면서부터는 법회 장소를 이곳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법회뿐만 아니라 수행도 소홀하게 하지 않았다. 법회를 할 때마다 명상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1 년에 2번, 안거 기간에는 집에서 정진할 수 있도록 재가안거를 도입했다. 집중수련회를 가기도 했다. 신행 또한 마찬가지다. 다섯 번째 토요일 마다 중증장애아동시설 승가원에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단지 ‘절’이라는 장소만 없을 뿐이다.

한편 특징적인 것은 이 모든 프로그램을 스님이 중심축이 되어 이끌지 않는 점이다. 명법 스님은 모든 결정은 무빙템플의 대중이 함께 만들어간다고 했다. 스님이 건네준 무빙템플의 재가 안거 수행일지 노트와 재가안거 수행집 표지 뒷면에는 단정하지만 경쾌한 필체의 캘리그래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함께 커가는 절, 함께 꿈꾸는 절, 함께 만드는 절.’

사진:최배문


| 함께 꿈꾸는 절, 함께 만드는 절, 함께 커가는 절

이날 법회는 명상과 예불, 경전공부, 그리고 마음 나누기로 이어졌다. 스님의 집전으로 예불을 시작했다. 예불의식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의식과는 약간 다르다. 예불은 목탁 소리와 함께 삼귀의를 하고, 백화도량 발원문과 관음예문, 수행서원문을 함께 독송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동참제자들이 예불문을 약간의 높낮이를 가진 운율에 맞춰 함께 읽었다. 아담한 규모이기에 모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예불문은 번역투가 아닌 ‘이해되는’ 한글로 풀이되어 있었다. 예불은 간단 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의식에는 분명, 예경과 서원의 힘이 있었다.

예불 의식은 가급적 목탁을 치지 않고 진행 했다. 무빙템플은 그 밖에도 의례의식을 최소화 시켰다. 스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며 이러한 시스템이 재가불자뿐만 아니라 스님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절에서는 각종 의례가 많지요. 예를 들어 백일기도를 한다고 하면 절에 계신 스님들은 의례의식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스님들도 수행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의례를 간소화하고, 재가자와 함께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스님은 수행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그 결과를 신도에게 돌려줍니다. 선순환입니다. 또 재가자는 자신이 의식을 함께함으로써 성장하죠. 구성원이 모두 각각 성장합니다. 구성원이 성장하면 절도 성장 합니다.”

예불을 마치고 이들은 익숙하게 좌식 책상을 펼쳤다. 경전 공부시간이다. 『유마경』을 공부하는 중이다. 대중이 경전 구절을 읽고 스님이 강설 한다. 공부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졌다. 스님만 질문하지 않는다. 강의를 듣던 보살님들도 그때 그때 궁금증을 질문한다. 질문을 하고 자기의 의견을 건네고 생각을 도반들과 함께 나누는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높고 낮은 질문이 없고, 높고 낮은 대답이 없었다.

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강의를 마치자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과를 꺼내고 둥글게 모여 앉았다. 일손이 얼마나 착착 맞는지, 준비도 정리도 순식간이다. 이들은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마음나누기를 이어갔다.

자신의 수행과 삶 이야기를 한 명씩 돌아가며 말하고 듣는 시간이다. 한 보살님이 ‘몸이 불편하니 말이 날카롭게 나온다’는 참회의 말을 하자 도반들은 그럴 수 있다며 응원하고 위로한다. 스님은 “몸을 잘 간수하는 것도 수행이다”라며 따뜻한 수행방편을 건넨다. 이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다. 명법 스님은 이 자리는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기 허물이나 어려운 점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나누기는 제가 어드바이스를 주는 자리가 아니에요. 도반들이 함께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도반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 계율을 지금 이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게 하는지를 함께 대화합니다.”

사진:최배문

| 작은 공동체가 갖는 장점

무빙템플의 구성원들은 스스로가 절의 주인이다. 법회의 모든 과정에서 지도법사 명법 스님은 지도자(leader)가 아닌 인도자(guide)였다. 그래서 모든 일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해 결정한다. 공부도, 수행도 직접 계획을 세운다. 그렇기에 스님과 일정이 맞지 않아도 도반끼리 모여 공부를 한다. 수행은 자신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예로 이들은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모여 다라니 기도정진법회를 한다. 이때는 스님이 오지 않는다. 다만 수행을 하다가 의문이 들면 지도법사인 명법 스님께 그때그때 질문한다.

또한 이들에게 무빙템플은 생활 공동체 부분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도반들끼리 모여 김장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먹기도 하며, 좋은 과일이나 물품이 있으면 공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무빙 템플이 삶속에 스며들수록 이들에게는 자기 목소 리를 내고 대화하는 힘이 생겼다.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제안하고 추진하기 시작했다. 무빙템플의 도반들의 유대감은 점점 더 깊어졌다. 이영미 (52) 씨에게 무빙템플 도반은 가족이었다.

“가족은 어떤 일도 함께하지요? 똑같아요. 함께 아파하고 기뻐합니다. 수행과 마음나누기를 함께 하니까 유대감이 굉장히 깊어요. 우리는 나이가, 누가 먼저 법회에 왔는지가 중요하지 않아요. 평등하고, 서로서로 배울 점을 본받습니다. 저는 이곳에 온 자체만으로 행복합니다.”

김연리 (52) 씨는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현대인의 생활에 특히 필요하다고 했다.

“현대인들에게는 누군가 ‘어디 아프니?’ 하고 선뜻 물어보거나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하지만 이곳은 마음을 나눌 수 있죠. 그런데 하나, 너무 ‘우리끼리’ 뭉치게 되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 오지 못할 수 있잖아요. 여기는 그렇지 않아요. 처음 이곳에 온 분도, 여러 해 함께한 분도, 스님도 평등하게 이야기합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김희남 (47) 씨는 이곳에서 공부할수록 점점 부처님 법에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꼭 대웅전에 서만 법회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법회는 가정 집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빙템플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어요. 어떤 분들은 절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깨야 할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빙템플이다. 무빙템플은 법을 등불로 삼아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법담을 나눈다. 길에서 들로, 들에서 거리로 이어지는 야단법석. 무빙템플의 법당은 처처 앉은 자리 모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