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경남 양산 정토원 가행정진 현장

양산 정토원은 가행정진加行精進의 현장이라고 했다. 어렵지 않게 사용하던 단어임에도, 왠지 ‘가행정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가행정진이란 무엇일까. 가행정진이란 어떤 행위인가. 그런 물음을 품고 차를 달렸다. 양산에 진입하고도 정토원이 있다는 오룡골은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꽤 긴 외길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절집 창문 사이로 새나오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빛이 따스해 보였다. 차에서 내려 몸을 움직였다. 북쪽에서 몰아친 차가운 공기는 골짜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외롭게 버티고 선 나뭇가지들을 흔들고 있었다. 머리 위로 ‘솨’ 하는 오룡골의 텅 빈 기침소리가 울려 퍼졌다.

| 원효가 남긴 정토관을 만나다

내려가는 길에 전화로 인사를 나눴던 노보살님은 7시부터 정진을 시작할 거라 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이 있었다. 주뼛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박에 정체를 알아본 보살님이 일어서서 맞아준다. 곧 이어 문을 열고 스님이 나온다. 정목 스님이다. 사진으로는 꽤나 단단한 선승의 이미지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타인에게 먼저 미소를 건네는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인터넷 세상에서 정목 스님은 이미 꽤나 유명한 인사다. 2003년부터 인터넷 카페 ‘아미타파(cafe.daum.net/amitapa)’를 만들어 염불수행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유투브를 통해 좀 더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스님이 주창하고 있는 사상은 신라의 원효 스님에서부터 비롯된 내용들이다. 원효 스님의 정토사상과 체계에 대해 깊이 공부한 스님은 『염불신행의 원리와 비결』, 『한국의 염불수행과 원효 스님』,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원효의 무량수경종요』 등 15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스님은 소탈했다. 당신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중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중심에는 원효 스님의 사상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불교의 교학적 바탕은 원효 스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정목 스님의 주장이다. 원효 스님은 팔만사천 법문의 핵심을 관통하는 교학을 이야기했고, 불교의 근본이 무엇인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명료하게 밝혀놓았다고 했다. 더불어 수행만 있고 신앙이 없는 것이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라고 스님은 소리를 높였다.

| 오로지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수행

스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잘 맞는 법우를 만난 것처럼, 스님은 무지한 재가불자에게 원효 스님의 사상과 수행법에 대해 쉽게 풀어주며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그 과정에서 정토에 대한, 염불 수행에 대한 무지가 차례로 깨어지고 있었다. 원효 스님의 정토는 단순한 서방정토가 아니었다. 그것은 근기 낮은 초심자들을 위한 방편의 차원에서 제시한 방향설정이었을 뿐, 요체는 ‘일심정토一心淨土’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에 귀의해 내 삶과 이 땅에 정토를 구현하는 게 원효 스님의 정토관이다.

품고 온 질문을 던졌다. “가행정진이란 무엇입니까?”

“더할 가加에 행할 행行을 쓰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온전히 정진에 힘쓴다는 얘기예요. 참선을 할 때도 용맹정진이라고 하죠. 저는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염불만한 게 없다고 봅니다. ‘전수염불專修念佛’이라고 하는데, 오로지 염불만 하는 겁니다. 염불수행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져요. 아미타불을 외치면서 하는 칭명,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하는 심명, 아미타불을 보는 관상이 그것입니다. 절을 해도 염불을 하고, 앉아서도 염불을 하는 거죠. 지관을 해도 아미타불을 봅니다. 염불이라는 게 단순히 소리를 통한 수행이 아니라는 거죠. 처음에는 칭명稱名 염불을 하지만, 이치를 알고 나면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아미타불은 과연 무엇인가, 물었더니 스님은 ‘빛’이라고 했다. 광명 그 자체라는 것. 문득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이 떠올랐다. 내 혈육, 내 스승을 그리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수행. 그 은혜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종국에는 하나의 빛을 마주하고 그 빛을 내 몸에 받아들이는 시각화visualization의 수행 체험. 스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두 수행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염불수행이 원효 스님 당시부터 이어져왔다는 점. 티베트 불교보다도 수 세기나 앞서, 원효 스님은 이런 수행체계와 교리적 근거를 이 땅에 밝혀두고 있었다. 최근 들어 해외에서 원효 스님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게 정목 스님의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7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정토원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법당에는 이미 30여 명의 재가불자들이 모여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토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루에 두 번 낮 법회와 철야정진을 진행하고 있다. 그날에는 이미 낮 법회에 20여 명의 재가불자들이 다녀간 상황이었다. 그런데 모여 앉은 구성원들이 범상치 않았다. 서울, 대전, 대구, 광주,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시간 맞춰 모여든 염불수행자들이라고 했다. 정목 스님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로, 평소에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수행을 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한데 모여 집중적인 수행의 시간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이 먼 산골짜기까지, 놀라운 열정이었다.

| 오룡골의 기도소리

순서는 여느 법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귀의와 예불, 천수경, 반야심경 등을 차례로 끝내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됐다. 정목 스님의 말솜씨는 법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원효 스님이 밝힌 사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현대 한국불교의 현실에 맞춰가며 설명하는데, 때로는 위험수위까지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불자가 가야할 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쥐었다 놓았다, 청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법문이 끝나고 정목 스님이 목탁을 잡았다. 본격적인 정진의 시간이다. 보통 자정 이전까지는 스님이 정진을 이끌고, 자정 이후로는 참가자들이 자체적으로 수행을 끌어간다. 목탁을 치면서 정목 스님이 칭명염불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오와 열을 맞춰 선 재가자들도 “나무아미타불”을 꺼냈다.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느 소리가 앞에 있고 어느 소리가 뒤에 있는지 알기 어려워졌다. 수십의 소리가 하나의 명호를 부르고 있었다.

정토원의 염불수행은 절도 함께 한다. 한 번 절을 올리는 동안 4번의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한다. 몸을 움직이는 지점은 “타”라는 음절이다. “타”에서 무릎을 꿇고, “타”에서 몸을 눕히고, “타”에서 부처님을 받든 몸을 일으킨다. 어느 순간이든 허리를 곧추 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일사분란하게, 누구도 빠지지 않고 목으로 뽑아내는 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타”의 순간에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방식은 집중력을 더하기 위함이다. 과정과 과정이 이어져 한 번의 절이 완성될 때까지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나에 대한 믿음이자 스승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 깨지면 수행이 되지 않는다. 그 순간 잡념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동작의 연결이 깨진다. 온전히 집중해서 한 번의 절을 완성하면 정확히 15초가 걸린다.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차 공명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리가 소리를 올라타고 겹쳐서 두꺼운 한 몸이 된 소리는 힘이 배가됐다. 기운이 실린 소리는 공간을 가득 메우며 공명했다. 잠시 후, 목탁으로 시작한 정진의 과정에 어느새 북소리가 더해졌다. 법당 한 편에 놓인 법고다. 목탁이 이끌고 법고가 독려한다. 묵직한 북소리는 움직이는 몸뚱이에 힘을 불어넣었다. 절로, 절로, 한 번, 두 번. 그렇게 절이 이어지면서 몸의 고통도 잊은 채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에만 온 신경이 집중됐다. 목탁과 북이 염불과 절을 이끌어 삼매로 나아가는 듯했다.

|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이어라

목탁소리는 귓전을 때린다. 북소리는 묵직하다. 그 두 소리가 워낙 압도적이기에 사람의 소리가 잠식당할 줄 알았더니, 정반대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랬다. 사람의 소리는 악기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소리가 옥타브를 올려 악기의 소리를 다스리고, 소리와 소리가 한데 섞이며 ‘가행정진’의 현장이 완성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은 저절로 감겨 있거나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動 속에 정靜이 깃들어 정중동을 이룬 세계에는 “나무아미타불”만 남았다.

‘정진’을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선방의 모습만 떠올리던 사람에게 이날의 기억은 꽤 신선했다. 온전히 정진 하나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는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그 과정은 어렵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를 동반한 수행이었기에 기억에 오래 남았다.

“재가자들은 바쁘잖아요. 많은 시간을 정진하는 데 할애하기 어려워요. 그렇다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집중적으로 해야 기억에 남겠죠. 매일 염불수행을 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어렵지 않게 정진하는 삶을 실천할 수도 있을 거예요. 다만 단순히 몸으로 실천하는 수행만으로는 제대로 정진을 하기 어려워요. 반드시 ‘바른’ 교학적 바탕도 함께 가져가야 합니다. 바른 이해와 실천이 함께한다면 비로소 올바른 정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장을 지켜본 이후, 의도적으로 몇 차례에 걸쳐 그들이 했던 그대로 염불수행에 도전해봤다. 2015년 연말에 다가온 시련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자리 위에서 새해를 맞이할 열쇠를 정진의 현장에서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의 그 정진 열기를 처음부터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빛으로 가득한 아미타불의 화신을 만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의 본성과 너의 본성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은 본디 환한 광명과도 같다는 것,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라는 그 사실을 믿어보기로 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그 세계를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반복되는 이 아픔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리라. 그렇게 이 삶 속에 정토를 만들어가기로, 진흙 같은 삶의 바닥을 다지고 또 다져 그 위에 한 송이 연꽃을 피워보기로. 그런 마음의 씨앗이 새해 첫 햇살을 맞이하며 아주 작은 싹을 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