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내 부처님] 1가 1불, 우리 집 부처님

[특집 ]1가 1불, 우리 집 부처님

2018-01-02     유윤정

내 집 내 부처님

“가정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염불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 존상은 사가에 모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1980년대, 한 재가불자가 광덕 스님에게 물어본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2017년인 오늘날도 여전히 온라인 포털사이트 지식코너에서 검색되고 있습니다. 12월호 불광, 불자로서 부처님 존상을 모시는 일을 권장하려고 합니다. 생활공간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자신이 부처님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합니다. 그렇다면 생활공간에 어떻게 부처님을 모셔오면 좋을까요. 가정집, 일터에서 부처님은 어떻게 자리하고 계시면 될까요. 우리 집에 모신 부처님을 소개합니다.

01    우리 집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유윤정
02    우리 곁에는 어떤 부처님이 계실까?  유근자
03    거실에 부처님이 편안히 앉아계신다면?    유윤정
04    1가 1불, 우리 집 부처님  유윤정

1가 1불, 우리 집 부처님

이들의 생활공간에는 불단佛壇이 있다. 집과 일터에 불단을 장엄해놓은 이들. 처처에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다지만, 부처님 가르침 등불 삼아 자신을 밝히며 사는 불자들의 공간에 부처님 계시니, 그 공간 곧 부처님 도량이 되었다. 자신의 생활공간에 불단을 꾸려놓은 불자들. 이들은 왜, 어떻게 불단을 만들었을까? 그들의 공간에서 부처님은 어떻게 자리하고 계실까. 당신은 상상해본 적 있는가? 우리 집에, 일터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어떨까? 

 

|    부처님과 함께 호흡하는 집

사진:최배문

부처님과 함께 호흡하는 집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감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향 내음이 먼저 반기는 곳. 현관에 들어서서 보이는 첫 번째 방은 안진숙(58) 씨의 기도 방이다. 그는 오늘도 불상 앞 작은 향로에 향을 사르고 초를 켰다.

안 씨의 불단은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무릎을 꿇고 앉으면 눈높이가 맞는 낮은 탁자에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적힌 다포를 깔고 그 위에 불상과 촛대, 향로, 경전을 올려두었다. 부처님 뒤로는 만다라를 놓아 불단을 장엄했다. 안 씨는 이 방 부처님 앞에서 삼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불단 옆에서 사경을 하고 경전을 공부한다. 일이 바빠 절에 가지 못할 때면 이 앞에 앉아 예불하고 기도와 수행을 이어간다.

“불단에 모신 부처님들은 모두 선물 받았습니다. 첫 부처님은 20년 전, 초등학생이던 큰 아이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선물이라며 전해 준 석굴암 불상이에요. 참 기쁘고 고마웠죠.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흔한 기념품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안 씨에게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부처님이었다. 자연스레 불단을 만들게 됐다. 이제 그의 불단 위에는 스님이 선물해 준 손가락 두 마디만한 작은 부처님, 도반이 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부처님, 부처님 사진 액자가 함께 자리해있다. 혹시나 싶어 스님이 불상을 선물해주시던 때에 ‘집에 불상을 모셔도 되는지’ 물었더니, ‘스님이 드리는 불상이니 걱정 말라,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는 불상을 놓으면서 점안식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부처님, 제가 여기서 모시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며 절을 올렸다. 이제 이 불단은 안 씨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도록 일깨워주는 장소이자 가족에게도 부처님 법을 전하는 고마운 자리가 되었다. 

“이 앞에 앉아 향을 하나 사르고 기도하다보면 좋은 에너지가 부처님을 통해 집안 곳곳에 퍼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불단이 현관 앞, 방에 있으니까 이제는 가족들도 외출할 때 삼배를 하고 나갈 때도 있어요. 집에 불단이 있음으로써, ‘엄마만 가는 종교인 불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         바람이 좋은 날에는 바람 공양을 올립니다

사진:최배문

“아침에 해가 좋으면 햇빛 공양을, 달이 뜨면 달빛 공양을, 바람이 좋으면 창문을 열고 바람 공양을 올립니다.”

백영숙(61) 씨는 “오늘은 볕이 참 곱지요.” 하고 불단 옆 창문을 활짝 열면서 이야기했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불단에 향을 올리고 예불과 함께 기도를 하고, 자신이 물을 마시기 전에 차 공양을 먼저 올린다. 소매로 입을 가리며 잔에 정성스럽게 물을 붓고, 머리 위로 받쳐 들어 올린 차는 그가 좋아하는 믹스커피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부처님께 공양한 것이다. 그의 불단에는 사과 한 알, 밤 한 톨도 같이 올라와 있었는데, 집에 사과나 밤 등이 생겼을 때 먹기 전에 첫 과실을 올린 것이라 했다.

“『입보살행론』이나 『중론』 등을 공부하면서, 정말 부처님의 뒤에 서서 착실히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스승, 내 삶의 방향에 멘토가 되는 분 아닙니까. 저분의 생각과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정말 누구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사진을 들고 다니잖아요. 그것과 똑같은 것 아닐까요. 부처님이 누구인가, 내가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나,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불단을 만들게 됐습니다.”

백 씨의 불단에는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며 받은 작은 불상 하나와, 사진 부처님들이 계시는데, 티베트스님들이 관정 의식 때마다 주신 부처님 사진을 액자를 집이라 생각하고 끼워 봉안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친견하고 받은 불상은 한국에 와서 다시 스님이 법당에서 기도를 올려주신 후 받아 모셨습니다. 부처님 사진들도 때때로 절에서 관정 의식이 있을 때 보자기에 잘 싸서 모셔가 가피를 받고 옵니다. 의식을 받기 전에는 그냥 사진, 종이처럼 보였다면, 의식을 하고 가피 받은 부처님을 보니 참 뜻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집안에 불단을 만드니 더욱 불방일不放逸하게 되고 정진하게 됐다. 화가 나고,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부처님만 보면 참회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부처님이 하지말라고 하신 것은 더욱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일상에서 마음에 두려움이 들 때, 불확실할 때는 이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부처님 가르침을 상기할 수 있게 돼요. 부처님 말씀 잘 들어서 하라는 일은 잘 행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됐습니다.”

 

|    소박하지만 여법한 불단

사진:최배문

장수임(50) 씨의 소박하지만 여법한 불단에는 불상 대신 부처님 사진이 있었다. 안방 한쪽 서랍장 위에 반야심경 다포를 깔고, 수계식을 하고서 받은 부처님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 앞에 깨끗한 식기에 쌀과 청정수를 담아 공양했다. 그는 매일 부처님 전에 청정수를 올리고 일주일에 한 번 공양미를 소복이 올린다. 장 씨에게 이 자리는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장소이자, 내 마음을 두는 곳”이다.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앉아 매순간마다 지금 여기 깨어있을 수 있도록 점검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에 대한 후회 등에서 벗어나 현재에 머물 수 있도록, 부처님처럼 마음을 쓰도록 저를 살피게 돼요. 공양미도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우주가 곧 나고 내가 곧 우주의 일부임에 감사한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 번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초를 켜고 예불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 반야심경, 해탈게, 정토행자의 발원, 108배를 한다. 부처님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친정어머니도 집에 오실 때마다 이 불단을 보면서 절을 하셨다.

불단이 생기면서 가족끼리 생일을 챙기는 방식도 달라졌다. 장 씨의 가족들은 생일이 되면 팥밥을 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삼배를 하고서 밥을 먹는다. 얼마 전, 군대에 간 큰 아이의 생일날에도 가족이 함께 모여 불단에서 아이의 건강을 발원했다.

“이 장소는 저에게 안정감을 주는 곳이기도 해요. 마음이 울적한 날엔 부처님을 바라보며 앉아있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불단을 만들지 않았으면, 기도도 덜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한편 불단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집에서 예불을 함으로써 부처님이 집에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다만 불단이 있기에 절을 할 때도 조금 더 흐트러지지 않고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일상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부처님을 보면서 다잡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지속하다보면 생활이 조금이라도 더 반듯하게 흘러가지 않을까요? 매일 절에 갈 수는 없잖아요. 집안에서 생활하면서 한번만 봐도, ‘나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실천의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사진:유윤정

|    부처님 뒤 잘 따라가겠습니다

약간의 고정관념을 깬 불단도 있다. 강민지(38) 씨의 집에는 책장 한 칸에 부처님이 등을 지고 앉아계신다. 부처님이 계신 이 책장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이 닿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감사한 인연으로 개금된 불상을 선물 받고서, 자신의 눈길이 가장 잘 닿는 자리에 부처님을 모시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책상 위, 책장 한 칸에 있던 책들을 모두 빼내고 부처님의 등이 보이게끔 올려놓았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부처님을 바라보면 참 든든하고 안정됩니다. 수험생에게도 좋을 것 같아요. 부처님을 뒷모습이 보이게 돌려놓은 이유는, 부처님과 같은 방향을 보고 가자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앞서가신 스승이고, 저는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니, 부처님과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가며 행동하자는 나름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부처님의 등을 보면서, 저 뒤를 잘 따라가겠다, 부처님처럼 되기 위해 계속 정진해야겠다고 되새기게 됩니다. 불상을 모시고부터 ‘나는 불자다.’ 하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그는 매일 출근 전 삼배를 올리고, 문밖을 나서며 반야심경을 시작해 보리심을 발원하는 문수보살 서원과 진언, 칭명염불을 하며 회사로 나선다. 그는 ‘이 가르침을 듣고 너희들이 잘 생각해보고 판단하고 선택하라.’ 하신 부처님 말씀처럼, 불상을 모시는 것도 형식이 사람을 괴롭히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임형준(54)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향 가게에 불단을 만들었다. 사무실 책상 위 선반에는 본존불이 약사여래 부처님이신 불감이 있고, 그 좌우에는 금강역사가 지키고 서 있다. 부처님 앞에는 보리수 잎, 보리수 씨앗, 달라이 라마 존자가 기도하고 퇴공한 쌀 여남은 톨을 받아와 부처님께 공양 올렸다. 그리고 출근할 때마다 부처님께 3배를 올린다. 그는 일본이나 대만, 중국, 동남아 등 불교 국가의 불자들은 출퇴근길에 절에 들러서 3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활 일부인데, 우리는 너무 격식을 차려서 접근하기가 힘든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그는 불자들이 불단을 꾸리지 않는 곳은 우리나라뿐인 것 같다며, 항상 주변 지인들에게 불단을 만들기를 이렇게 권유한다고 전했다.

“불상을 눈길 닿는 곳 가까이에 두면, 잠깐 마음을 잘못 내는 순간에도 그 순간 그 마음을 되돌려오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꼭 넓은 장소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부처님과 초, 향을 꽂을 수 있는 작은 향로만 있으면 어디든 불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향기로운 이들의 공간에는 부처님이 있었다.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함께 하루를 밝히는 이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어떻게 장엄했는지, 어떤 부처님을 모셨는지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사진:유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