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경하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특집] 이제 사경 수행을 시작합니다

2017-11-28     김성동

이제 사경 수행을 시작합니다

한국불교의 수행에서 사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참선이나 위빠사나 등이 수행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합니다. 예부터 사경은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과 공덕을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행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에서는 사경 수행을 잘 접하지 못하거나, 형식적인 의례 행위로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경이 어떤 의미를 주고, 사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경 수행의 효과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반갑게도 몇몇 사찰과 단체에서 사경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경 수행이 어떤 전통으로 오늘까지 이어져왔고, 지금 한국불교계에서 어떻게 이어오고 있고, 불자들이 사경 수행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01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사경했을까  박상국
02    한국전통사경연구원 김경호 원장  김성동
03    대만의 대부분의 사찰이 사경당을 갖춘 이유  리뤼차
04    지금, 여기 사경 수행자들이 모였다  김우진

사진 : 최배문

한국전통사경연구원 
김경호 원장

외길. 그의 자호自號다. 외길이란 다른 길이 없는 길이다. 하나의 길뿐이며, 이 길을 40년 가까이 걸어왔다. 사경寫經. 한국전통사경연구원 김경호(57) 원장이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는 길이다. 2002년 첫 사경 개인전을 계기로 본격적인 사경연구와 대중화를 위해 ‘한국사경연구회’(회장 행오 스님)를 창립했고, 회원들과 함께 전통사경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한국사경연구회 12번째 전시회를 통해 제자 33인의 작품 99점과 그의 작품 1점을 더해 모두 100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국내 유일의 ‘전통사경기능전승자’(제2019-5호)인 그가 쓴 사경개론서 『한국의 사경』은 국내 사경 연구의 독보적인 개론서이며, 『전통 사경 교본』은 사경에 입문하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교과서로 꼽힌다. 
 

|    사경 고수들의 스승

서울 연희동에 자리한 한국전통사경연구원에서 매주 수요일 사경연구 모임이 열린다. 십여 명이 모여 김경호 원장의 사경 강의를 듣고, 한 주 동안 작업한 사경을 스승인 김경호 원장에게 점검받는다. 1시간이 넘는 강의는 전통사경의 역사와 특징, 감지紺紙 종류 등이 꼼꼼하게 논의된다. 강의를 마친 후에는 회원들이 개인별로 사경한 사경지를 스승에게 내보인다. 사경지는 한눈에 봐도 전문가의 솜씨다. 회원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을 넘게 사경한 경력자들이다. 일대일 점검. 마치 선방에서 화두 점검을 하는 듯했다. 붓 선의 지나감과 작은 점의 굵기를 말한다. 밖에서는 사경의 고수인 이들이 스승 앞에서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김 원장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 사경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는 하나하나가 다 작품 같습니다.

“예. 작품이죠. 아주 정성껏 사경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보기에 점검할 부분이 있으니까요.”

10대 시절부터 『법화경』과 『벽암록』 등 불교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구입해 읽으면서 불교를 공부했고, 경전과 게송들을 필사해 각종 서예대회에서 입상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생사를 초탈하는 선승이 되고자 3번이나 야간열차를 타고 행자생활까지 했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로 번번이 실패했다. 대학을 마치고 군복무 중에서도 부대 내 온갖 글씨 쓰는 일을 도맡았다. 제대할 때까지 거의 200만 자를 썼다. 20대 후반부터 그는 사경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전국의 박물관을 돌면서 선조들이 사경한 것을 찾아보면서 마침내 고려 전통사경과 만난다. 사경이 단순히 경전을 베껴 쓰는 것을 넘어 그 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신심과 수행 정신이 녹아있는 것이었다. 1997년에는 조계종에서 처음으로 서예의 대가인 여초 김응현 선생 모시고 사경대회를 열었다. 당시 제법 글씨 쓴다는 이들은 다 모였다. 그때 김 원장은 세필로 『화엄경』을 사경했다. 결과는 대상이었다. 본격적인 전통사경 연구를 시작한다. 이후 사경 개인전과 초대전 등 총 15회의 사경전을 열었고, 미국 LA와 뉴욕 등 주요 도시를 돌면서 전통사경을 강의하고 사경 작품을 전시한다. 이를 계기로 해외에 한국의 전통사경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김경호 원장은 앞으로 전통사경의 우수성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릴 수 있도록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에 작품 활동을 넓힐 계획이다. 국내 최고의 전통사경 전문가인 그에게 사경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해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사진 : 최배문

|    사경 초학자들은 어떻게 시작하나

- 사경을 입문하려면 어떤 경전을 선택해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얼마만큼 내가 사경의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처음 사경하는 초학자가 『법화경』이나 『화엄경』등을 사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짧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게송, 진언, 발원문 등이 좋습니다. 뭘 선택해도 내 마음이 환희심이 나고 맑아지는 것이 좋습니다.”

- 초학자들이 처음 사경할 때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습니다. 어디에서 사경하는 것이 좋고, 또 사경하는 곳 주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경 장소는 최대한 청정하고, 외부에 영향을 덜 받는 곳이 좋습니다. 햇볕이 너무 직사광선으로 오는 곳은 좋지 않습니다. 습기가 너무 많은 곳도 피하고요. 경상에서 사경을 했다면, 그 경상을 밥상이나 술상으로 쓰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사경을 전용으로 하는 경상이 있으면 좋습니다. 또 경상이든 책상이든 중요한 점은 허리를 바로 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옵니다.”

- 초학자는 사경 시간이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요?

“본인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20분이 적절하다면 그렇게 하고, 1시간이 좋다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해보면 본인이 잘 압니다. 사경을 계속하면 자연히 시간이 늘어납니다. 해보면 압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시간이 아니라, 꾸준하게 하는 것입니다.”

-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라는 것인가요?

“그렇죠. 그게 기도입니다. 사경은 기도고 수행입니다. 일이 있어서 빼먹으면 안 됩니다. 새벽에 30분, 혹은 낮에 할 수도 있고, 자기 전에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꾸준히 매일하는 것입니다.”

- 원장님은 붓으로 사경하는데, 사경을 처음 만나는 초학자들은 붓 펜이나 일반 펜으로 사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펜으로 사경할 때도 붓으로 사경할 때와 동일한가요?

“동일합니다.”

-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사경하는 것은 어떠한가요?

“괜찮습니다. 제가 아는 고위직 공무원도 출근하면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법화경』을 조금씩 사경하셨습니다. 다만, 펜보다는 붓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펜은 사경을 빠르게 하는데, 붓은 느리게 합니다. 천천히 사경하면 경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또 붓은 세워서 쓰는데 펜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경은 붓을 세워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 처음 사경하면 글씨를 바르게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글씨를 잘 쓸 수 있을까요.

“초학자들이 글씨를 잘 쓰는지 못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사경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경을 계속 끊임없이 하면 글씨를 바르게 쓰는 것은 오래지 않아 해결됩니다.”
 

|    사경하는 공덕

- 사경을 계속하면 어떤 공덕이 있을까요?

“공덕이 있는데, 눈에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듯이, 공덕이 있는데 사람들이 잊어버립니다. 사경을 지속하면 공덕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한두 달만 하면 알게 되고, 또 늦은 사람도 1년이 지나가고, 2년이 지나가면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여법하고 올바르게 사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경하면 매 순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살아가면서 얽혔던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지혜가 나옵니다.” 

- 사경할 때 허리를 곧바로 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사경할 때 몸가짐은 어떠해야 할까요.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몸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자신이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누가 해줄 수는 없습니다.” 

- 원장님께서 사경할 때 걸리는 시간은 어떤가요?

“작품마다 다릅니다. 어떤 때는 몇 달이 걸리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합니다. 만약 하루를 빠지게 되면 흐름이 끊어집니다. 평상심이 끊어집니다. 마음이 끊어지고, 그다음에 눈과 손이 다 끊어집니다. 다시 흐름을 잡으려면 일주일이 걸리기고 하고, 보름이 걸리기도 합니다. 다른 것을 할 수 없습니다.”

- 사경을 시작할 때 하루 일과는 어떠신가요?

“저는 낮에는 사경하지 않습니다. 보통 오후 1시에 눈을 뜹니다. 오후 7시까지는 원고도 쓰고, 책도 읽으며 소일합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잠깐 눈을 붙입니다. 밤 11시부터 본격적인 사경을 오전 7시까지 합니다. 아침 먹고 오전 8시 넘어 잡니다.”

- 외출도 하지 않나요?

“반경 500m를 나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갇혀 지냅니다. 그래야 사경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무문관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 사경하면서 어금니와 앞니도 빠졌다고 들었습니다.

“사경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물고 있습니다. 계속 쌓이면 치과에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사경 흐름을 깨기 어려워서 자꾸 미루니까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2008년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 사경특별전 준비로 2년 반 동안 두문불출했습니다. 작품을 끝내고 치과에 갔더니 치아 뼈가 다 녹았습니다.”       

- 전통사경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제가 말씀드린 전통사경은 고려시대 사경인데, 그 영향이 조선 초까지는 남아있습니다. 약 1,100년 동안의 시기인데, 그 시기에는 내면과 외면으로 최상의 장엄을 했습니다. 점과 선을 하나 찍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정도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사경의 최고 전성기는 1280년부터 1350년까지입니다. 이 시기의 사경을 제가 전통의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진 : 최배문

|    사경한 이후 어떻게 회향하는가

- 사경 입문자들이 사경할 때 한글 사경과 한문 사경 중에 어떤 것을 할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입문자들에게는 한글 사경을 권합니다. 물론 한문 사경이 한글 사경보다 훨씬 좋습니다. 근데 문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경을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경하면서 뜻이 머릿속에 지나가야 합니다.”

- 경의 내용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경의 내용을 알아야 한문 사경도 잘 할 수 있습니다.”

- 개인이 혼자 사경할 때 최소한 필요한 의식은 무엇인가요.

“먼저 사경 장소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또 사경 도구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중요한 것은 ‘두고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 두고 보는 시간이요?

“예. 사경할 때 곧바로 붓이나 펜을 들고 사경하면 안 됩니다. 간단하게 『반야심경』을 봉독하거나, 내가 사경할 곳을 읽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몸과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별도 형식은 필요 없습니다. 고요히 마음을 보고 있으면 됩니다.”     

- 사경을 마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경한 경의 내용을 다시 읽어봅니다. 독송讀誦입니다. 독송하면서 틀리게 사경한 것은 없는지, 점검도 합니다. 그리고 회향게를 합니다.”   

- 회향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옛날부터 서사書寫하면 수지受持하라고 했습니다. 서사는 사경이죠. 수지 다음에는 독송해야 합니다. 독송은 간경입니다. 그 다음에 위인연설爲人演說입니다. 남을 위해서 설해야 합니다. 그게 전법입니다. 옛날부터 전법하려면 사경해야 했습니다. 사경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 사경의 궁극적인 회향은 전법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사경 정신이 그렇습니다. 부처님 법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 개인별 사경했던 사경지는 사경자 개인이 보관하나요? 

“사경지는 부처님 법이 담겨있습니다. 진리를 서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경지는 소중하게 보관해야 합니다. 보관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개인의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청정한 곳에 모아 두면 훗날 인연이 지어지는 날이 옵니다. 그때 회향하면 됩니다.”          
          

사진 : 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