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단순한 삶’이란 나의 말과 행위를 잘 다스리는 것

[특집] 불교와 미니멀리즘

2017-09-05     김성동

[특집] 불교와 미니멀리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덧없음을 느낀 사람들은 불필요한 것을 덜고 삶을 소중한 것으로만 채우길 원했습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문화적 흐름이 떠올랐습니다. 2,600여 년 전,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셨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월간 「불광」 9월호에서는 미니멀리즘을 재조명했습니다. 복잡한 일상을 가지치기하며 덜어내는 삶에 주목했습니다. 단순해질수록 명료해지고, 명료해질수록 삶의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들을 만났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삶. 과하지 않는 마음. 간소하게 사는 이들. 미니멀리즘입니다.

01    불교 미니멀리스트는 어떻게 살았는가  유윤정
02    비워내서 충만한 삶, 나는 미니멀리스트  유윤정
03    ‘단순한 삶’이란 나의 말과 행위를 잘 다스리는 것  김성동
04    덜어낸 밥상에서 얻은 지혜  유윤정
05    적게 먹고, 아껴 쓰고, 낭비 않는 소박한 삶  김우진

 

 ‘단순한 삶’이란 나의 말과 행위를 잘 다스리는 것

사진. 최배문

과천에 자리잡은 위빠사나 수행처 ‘보리수 선원’의 문을 열자 왼쪽 일인용 소파에 앉은 붓다락키따 스님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낮고 조용한 음성이 몇 차례의 전화 통화로 익숙하다. 음계로 치면 ‘솔’에 가까운 높이 때문에 조곤조곤한 이야기도 또렷하게 들렸다. 몇 번의 전화를 하면 항상 스님이 받았다. 스님은 이를 “당연하다.”고 했다. 스님은 “신도가 절에 전화하면 스님이 받아야 하고, 신도가 절에 스님을 만나러 오면 스님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 문을 열자마자 스님이 계셔서 당황하고 놀랐습니다. 
“사람들이 절에 스님 만나러 오니까 제가 늘 여기 있어야 합니다. 어디 다른 곳에 있으면 안 됩니다.” 
- 보통 절에서는 주지스님 만나려면 몇 번을 묻고, 몇 사람을 거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가요? 여기 선원에서 스님은 재가자들의 수행을 상담해야 하니까 (스님이) 눈에 잘 보여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질문하면 답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여기 이 자리에 늘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상담도 하고, 전화도 받습니다.”

 

|    우선 단순함의 무게를 견뎌라

필요한 것만 있고, 불필요한 것은 없다. 스님의 주변 공간이 그랬다. 왼쪽 창에서는 오후의 구름 빛이 옅게 내려왔다. 빛으로 채워진 공간. 스님이 앉은 곳 너머 또 하나의 문을 열면 법당이다. 이곳에서는 늘 언제나 몇 사람이 좌선坐禪하고, 행선行禪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평일 오후에도 네 명이 정진하고 있었다. 24시간 개방하는 까닭에 늘 사람들이 있다. 법당도 간결하다. 한국불교 법당에 있는 탱화, 좌우 불단 등이 없다. 부처님 한 분이 전부다. ‘보리수 선원’ 붓다락키따 스님을 만나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간결함과 단순함, 절제’ 등을 들어봤다. 스님은 한국에서 출생해 1990년 미얀마에서 비구계를 받은 후 미얀마, 라오스, 태국 등에서 두타수행(숲속에서의 금욕 수행)을 해왔다. 1999년에 한국으로 와서 보리수선원을 만들어, 지금까지 불자뿐 아니라 타 종교인들이 위빠사나를 배우는 데 스승의 역할을 해왔다. 출가 전 무용가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구계를 받으며 위빠사나를 수행한 결과일까. 말은 간결하고, 몸은 절제되어 있었다. 

- 많은 사람들이 간결하고 단순하면서 절제된 삶을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역설적이게 그런 삶을 원하면서도 낯설어하고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원하지 않고, 재미있고 편리한 것을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이런 것을 원합니다. 여기 선원에 들어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단순함을 지루함으로 여깁니다. 단순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말을 잘 하려면 침묵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잘 못 합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도 내가 행위를 잘 하려면 단순함이라는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 시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은 이를 ‘몽키 마인드monkey mind’라고 했습니다. 원숭이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다니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것은 결국 이 ‘몽키 마인드’를 어떻게 다스리는 것인가, 입니다.”

- 우리의 몸과 마음은 스님께서 말씀하신 ‘몽키 마인드’를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내가 ‘몽키 마인드’로 달려가는 것이지, 그것이 내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마음의 집중력을 생각해봅니다. 마음의 집중이란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하고 평정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반대가 산란하고 산만하고 방황하는 마음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면 산란해집니다. 하다못해 경전을 보더라도 하루에 30분 이상 보면 마음이 산란해집니다. 왜냐하면 자꾸 사유하고 떠올리니까요. 또 보는 것을 좋아하고, 듣는 것을 좋아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면 마음이 산란해집니다. 이것들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거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합니다. 단순함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 있는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 최배문

|    고요함과 평정심

- 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쉰다는 것은 마음이 올바른 곳에 가서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먹고, 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유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것만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나의 게으름과 감각적 욕망, 또 현재의 생활에서 약간 방향을 틀어서 그동안 하지 못한 것을 하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게으름과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거기에 팔정도八正道가 어디에 있을까요. 팔정도를 하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 마음이 올바른 곳에 간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몸과 마음, 즉 오온五蘊에 대해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는 것입니다. 그래야 몸과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마음의 안정이 안 되면 말이 많아집니다. 먹는 것도 많아지고, 잠도 많아지고, 불필요한 생각도 많아집니다.”  

 - 재가자들이 살아가는 세속에서는 부족한 것을 채워야 몸과 마음에 안정을 갖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많이 갖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아무리 많이 소유하더라도 탐욕과 어리석음이 해소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재가자들에게 오계五戒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계를 지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 재가자들이 마음이 안정을 위해서 가장 먼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고 배워야 합니다. 올바르게 가르치는 분을 만나고, 그런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수행이란 것은 현재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아는 것이고, 현재의 마음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수행은 행주좌와行住坐臥입니다.”

- 현재에 몸과 마음의 상태를 두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몸과 마음의 성품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근심과 걱정, 슬픔, 스트레스, 자만, 교만, 성냄 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현재의 몸과 마음에는 그런 성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에는 단지 움직이는 성품, 단단하구나, 부드럽구나, 따뜻하구나, 딱딱하구나, 떨리는구나, 이런 것들만 있습니다. 잘 된다, 안 된다,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올바르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인가 자꾸 덧붙이고, 꾸미고, 계량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성품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싫다, 좋다가 없습니다.”

- 스님께서는 집중력을 많이 강조하십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집중이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가 대화를 하는데 내가 대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대화가 되는지 듣고 기억하면서 가야 대화가 됩니다. 그것이 집중입니다. 집중은 모든 것에 있어야 합니다. 먹고, 자고, 말할 때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집중은 마음의 안정으로 나타나고, 더 집중되면 차분해지고, 더 집중되면 고요해지고, 더 집중되면 평정심이 일어납니다. 음식을 먹을 때 산만하게 먹는 것과 안정되어 먹는 것은 차이가 많습니다.”

사진. 최배문

|    잠자기 전 마음을 집중하라

- 먹을 때 집중해서 먹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내가 마음을 두면서 먹는 것이죠. 아, 급하면 급하구나, 씹으면 씹고 있구나. 이렇게 아는 것이죠. 몸과 마음의 상의성相依性입니다. 또 씹을 때만큼 눈을 감고 씹으면 먹는 양이 줄어듭니다. 그렇지만 배는 부릅니다. 말을 할 때 입술의 움직임이나 혀의 움직임 등에 알아차림을 두면 말이 짧아지게 됩니다. 많으면 안 되고, 적어도 안 됩니다. 적당해야 합니다. 잠자는 것도 적당해야 합니다. 먹는 것도 적당해야 합니다.” 

- 적당하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보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잠들기 전에 수행하면 짧은 시간에 깊게 (잠을) 자게 됩니다. 일어나면 몸이 가볍고 웃으면서 일어납니다.”

- 자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흡에 마음을 두고, 앉아서 또는 누워서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려서는 일기를 쓰면서 정리했는데, 커서는 정리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어떤 마감을 할 것인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집중이죠. 집중하면 즐겁고 평온한 마음만 있습니다.” 

-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요?    

 “마음을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가, 그것은 현재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현재에 마음을 둘 것인가, 우선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또는 움직임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다, 다 같은 말입니다. 또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것은 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는 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오계는 말과 행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재가자는 오계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를 지키는 것이 마음과 선업을 지키는 것이고, 이것이 생활을 단순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계는 나와 상대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라, 하지 말라. 다른 것은 없습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것은 상대의 재산을 지켜주라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하지 말라는 것은 그 가정을 지켜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안 했다고 계를 지켰다는 것은 아닙니다. 해야 될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게 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떳떳한 태도가 나오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말과 행위를 잘 다스리면 세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전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진. 최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