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더 고위의 탐색이 왔다. 이제 부모는 내가 어떤 승려의 왕생이거니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일이고 집안 형도 그렇다고 증명되어서 나도 동네 절 승려가 입적한 다음 그의 환생을 찾는 정도로 생각했다. 따라서 어린이가 지난 번 생애를 기억함은 보통이다. 글을 몰라도 경전을 암송하고 인물을 알 수 있다.
내가 하는 언행으로 방문객들은 제대로 찾았다고 단정했다. 그들은 꼭 닮은 흑색 염주 두 벌을 내게 보였다. 그 중 하나가 제13대 달라이 라마 소유였는데 제대로 골라서 목에 걸더란다. 노랑 염주로 시험해도 제대로 집었다.
다음은 북인데 큰 것은 금줄 장식이고 작은 것은 달라이 라마가 시자를 부를 때 쓰던 작은 북을 들고 염불할 때 처럼 두드렀다. 마지막으로 지팡이는 잘못 골랐으나 한참 생각하더니 제대로 찾았다. 그들끼리는 잠시 당황했으나 사실은 먼저 것도 한 때 쓰다가 남에게 준 물건이었다.
이들은 이제 성지에 나타났던 석자를 풀어보기로 했다. 아자는 암다라는 지명이고, 가자는 굼분이란 지명, 가와 마를 합치면 마을 산에 있는 절 이름이 됐다. 그 절은 제 13대 달라이 라마가 중국서 돌아올 때 머무른 일이 있다. 온 동네가 경배하느라 찬치가 벌어졌고 그 때 아버지 나이 9살로 달라이 라마 친견을 했단다. 또 달라이 라마는 우리 집에도 들러 잘 지었다고 했단다.
최종적으로 검토 결과를 수도 라사에 전보로 알렸다. 이때 전신 방법은 인도하고만 교신이 가능해서 차라리 중국을 경유하는 쪽이 빨랐다. 답신도 중국 중계로 왔는데 라사로 데리고 오라는 지시였다.
그런데 이 일대가 중국 관리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묻는대로 대답할 수도 없어 트집 잡히지 않도록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나다를까 중국관리는 후보에 올랐다는 어린이들을 두 번씩이나 불렀다. 자기는 무슬림이지만 시험하겠다고 과자통을 내밀었다. 놀라서 가만히 있는 아이, 욕심대로 잔뜩 챙기는 아이, 그런 중에 나는 1개만 조심스럽게 집었단다. 중국관리는 내가 가장 그럴싸하다고 빼놓고 딴 아이들에게는 부모 옷감을 줘서 보냈다. 그리고 나에게는 형이 공부하는 절로 보내란 결정이 났다.
겉으로는 그랬으나 중국돈 10만 냥을 요구했다. 엄청난 돈일 뿐더라 터무니 없는 요구였다. 일행은 굴복했다. 또 이번엔 그 세 배를 요구했다. 일행은 내가 확실한 후보도 아니고 전국적으로 물색중이라고 사정을 이야기하면서도 더 이상 낌새를 채고 붙들고 늘어질까봐 적정이었고 더욱 티??통치권을 주장하면 일은 더욱 꼬이게 된다.
실정을 라사에 보고해야 할 텐데 전보를 의뢰하면 중계할 때 가로채서 안 되겠고 그래서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 처음 찾아나선 때부터 라사로 사람이 가고 오고 2년이 걸렸다. 중국 관리의 농간도 문제였지만 국가에서 공개적으로 다루지도 못할 일이라 더욱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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