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5> 포탈라에서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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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5> 포탈라에서의 공부
  • 달라이 라마
  • 승인 2007.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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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불교 총수이며 국가원수인 비구 달라이 라마의 망명 수기 : 내 나라, 내 겨레

윤회 속에는 자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끝없는 윤회 속에는 우리의 부모 자식 형제 자매며 친구가 다 있다. 자비에는 관용 인내 박애 친절 등의 덕목이 포함됐다. 윤회하다가 아라한이나 보살이 나온다. 이들은 남을 돕기 위하여 낳고 죽으며 끝내 모두 부처가 되게 힘쓴다. 이들의 윤회는 땅위에 비추는 달 같다. 잔잔한 호수나 바다에서 본다고 하지만 하늘에 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달은 하나지만 보는 사람은 많고 볼 수 있는 처지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 보듯, 부처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기의 윤회에 따라 지난날과 미래가 연결된다.

   나는 신앙공부에 무던했지만 딴 일은 몰랐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는 포탈라 궁의 죄수라고 한단다. 공부하느라 궁과 라사 중간에 지은 가족집도 한 달이나 6주에 한 번씩 상봉했다. 아버지는 가끔 궁이나 하계 별궁에 참석하면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말에 대한 취미로 말부터 먹이고 조반을 들었는데 계란이나 차도 말먹이로 했단다. 하계 별궁에는 달라이 라마 마구간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나보다 말 구경을 즐겼던 것 같다.

   라사에 산지 1년 만에 누나가 오고 큰형도 왔다. 누나가 도착 후 새로 여동생 남동생이 생겼다. 막내 동생이 귀여웠으나 두 살 때 죽었다.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매장하지 말고 두면 다시 난다고 들었다.

   과연 어머니는 아기를 낳고 죽은 동생과 같은 자국을 몸에 지녔다.

   집안일에는 자주 참석을 못했다. 언제나 어른들 속에서 사느라 어린이다운 것도 없어졌다. 그러나 남들이 포탈라가 감옥이라 한들 나에겐 황홀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건물이라 같은 건물에 거주한 사람들끼리도 서로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언덕 하나를 완전히 덮은 하나의 도시다. 1300년 전 티베트 왕이 처음 시작해서 선방으로 쓰다가 17세기에 제5대 달라이 라마가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13층짜리 중앙 부분도 그때 시작했는데 2층 올리고 그가 입적하자 수상은 그의 유언대로 그와 비슷한 승려를 골라 달라이 라마처럼 분장시켜 13년 만에 공사를 끝냈다. 지금도 2층에는 그때 왕생을 기원하던 비문이 남았다.

   중앙부분에는 행사용 장소 외에 법당 35, 선방 4, 달라이 라마 능 7개소가 있는데 어떤 능은 30피트 높이에 귀금속으로 장식됐다. 서쪽 부분은 나중 건축인데 2백 명의 승도를 수용하고 동쪽 부분은 정부청사다. 나의 집무실은 최상층에 있었다. 거리에서 쳐다보면 4백 피트 높이에 방이 네 개로 제일 많이 쓴 방은 25평방피트짜리에 제5대 달라이 라마 일대기로 벽을 메워 인물크기를 1인치로 그렸는데 공부를 하다가 지루하면 벽을 둘러보며 보낼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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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2019-03-10 02:37:51
저간의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한말씀. 자세히 보면 이 글이 불광에 실린 것은 통권 118호 입니다. 불광이 1974년 11월 창창간호를 냈으니, 10년이 지난 1984년 9월호쯤이라 생각됩니다. 그 당시에 구글번역기가 없었을테니, 번역기를 쓴 번역은 아닐거라 추측되구요.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보이기는 합니다. 저는 번역의 질보다 척박했던 1980년대 초반에 외신에 실린 글을 번역해 소개하려했던 불광 편집부의 노력을 더 애틋하게 봅니다.

-_- 2018-08-30 10:33:53
이건 구글 번역을 돌린 글인가요?

비문이 너무 많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불교 언론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니 너무나도 실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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