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몽골 3 칭기스칸 자나바자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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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순례기] 몽골 3 칭기스칸 자나바자르의 꿈
  • 관리자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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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 순례기/몽골3

번뇌가 크면 깨달음도 크다

10월말이면 벌써 겨울이 시작된다기에 몽골에서는 가장 풍요로운 계절인 지난 9월 몽골 땅을 밟으면서도 일견 아쉬움이 있었다. ‘막막한 몽골의 초원, 끝없는 눈보라를 헤치며 강인한 몽골인의 기상을 느껴보고 싶었기에….’

그런데 마른하늘에 생벼락이라고 했던가. 몽골에는 한국 땅에서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뜻밖의 재난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더니,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황사 회오리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온 도시가 뿌옇게 되어 한 치 앞을 바라보기 힘들었다. 식당에서 나오다가 엉겹결에 당했는지라 우리 일행은 황급히 차안으로 피신(사진기자는 카메라 단속에 여념 없다), 도시 전체가 날아갈 듯한 상황을 한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돌고르잡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무표정했고, 예혜 아저씨는 새떼처럼 흩날리는 비닐 봉투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김선정 교수는 “몽골의 불교사도 몽골의 자연처럼 격정적이에요.”라고 하는데, 나는 그 때 “번뇌가 크면 깨달음도 크다.”는 말이 생각났다. 척박함, 혹독함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몽골의 자연이 몽골인들을 강하게 단련시켜 결국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리라.
몽골의 격정적인 대자연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불교의 근본교의인 삼법인(諸行無常, 諸法無我, 一切皆苦, 涅槃寂靜)이 저절로 깨달아질 것만 같았고, 몽골이 희대의 영웅 칭기스칸과 그보다 더 위대한 자나바자르를 탄생시킨 인연의 땅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칭기스칸을 숭배하는 나라

“징 징 징기스칸 하늘의 별처럼 모두가 사랑했네… 겁이 많던 내게 와하하하 용기를 주었네.”
몽골인들의 칭기스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호텔 이름을 비롯해서 지폐, 술병, 심지어 자그마한 열쇠고리에도 칭기스칸이 새겨져 있고, 사찰의 사무실에도 칭기스칸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웬만한 사무실에는 다 모셔져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백여 년(12세기~14세기)에 걸쳐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지는 곳까지’ 승리의 깃발을 꽂았던 역사의 정점에 칭기스칸이 있었으니 어찌 그를 한시라도 잊을 수 있으랴. 그야말로 근대화 이후 줄곧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상황에서 칭기스칸은 몽골인뿐만 아니라 몽골 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의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까지도 칭기스칸은 몽골인들에게 신격화되어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혼 관습 등 전통적인 몽골의 세시풍속의 기원을 모두 칭기스칸에게 돌리고 있다.

훗날 몽골에 불교가 뿌리내리면서 칭기스칸은 기도문 중의 하나인 “소원을 실현할 장소 여기에 강림하기를 빕니다. 귀중한 물건으로 만든 옥좌에 여덟 개의 장려한 연꽃 양탄자에 가장 조화로운 수호신 흰 우바새(남자신자를 일컫는 불교용어)

칭기스칸(중략) 법륜의 칸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당신 이단의 포악한 적을 제압하여 주소서. 장수와 기쁨과 평화와 힘을 더해주소서. 나의 행위와 소원이 실현되도록 보장하는…”에서 볼 수 있듯 흰 우바새로 등장하여 몽골불교의 수호자가 되기도 했다.

한편 몽골학자 이쉬담딘(1867~1937)은 그의 금서에서 칭기스칸을 바자라파니(金剛佛)라 하였는데 이는 환생한 부처라는 뜻이다. 곧 인도의 마하삼마타 왕을 갠지스 강의 흐름처럼 계승해온 것이 몽골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몽골의 대학자 이시발제르(1704~1788)는 『인도 중국 몽골 불교사』에서 칭기스칸을 ‘종교를 전파시킨 법왕’이라 하면서 “종교일치사상은 칭기스칸 시대부터 연유되었다.”고 하였다.

문헌상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없으나 노예나 심지어 적군이었을지라도 공로가 있으면 그에 합당한 상을 주고, 왕이라기보다는 만인의 친구로 살았던 칭기스칸의 통치철학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칭기스칸은 꿈을 이룬 사람이다. 정복자와 피정복자가 한데 어울려 더불어 함께 사는 평등한 세상, 열린 세상을 이미 800년 전에 실현시킨 칭기스칸을 신(神)으로 또 부처님으로 숭배하는 몽골인들에게 진한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불가사의한 성자 자나바자르

몽골인들에게 칭기스칸처럼 존경받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자나바자르(1635~1723)다. 그는 칭기스칸의 후손인 압후태쌘 칸(1554~1558)의 증손자로서 아기 때부터 법회를 하는 것처럼 놀아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다섯 살 때 이미 찝중담바를 깨달아 할하 몽골의 법왕위에 즉위하였다.

어린 시절 티벳의 린포체인 ‘잡춘다르나뜨’의 환생으로 밝혀져 14살에 티벳으로 유학,‘달라이라마’에게 ‘젭춘담바(聖人)’의 칭호를 받았다. 2년 동안 수학 후 몽골로 돌아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업적을 남겼다. 몽골 최초의 법왕으로서 번역가(몽골은 중국, 티벳에 이어 대장경을 완역한 나라이다. 경전은 물론이고 천문, 의학, 예술서도 번역), 문자 창제자(소욤보, 지금도 몽골의 국장은 ‘소욤보’의 첫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건축가(겔식의 몽골 특유의 사원건축양식 창안), 화가(독특한 몽골풍 불화로 세계적인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수많은 탱화를 직접 제작), 불상 조성가(추상적·철학적인 교의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여 일반인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한다고 극찬받는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한다) 등으로 불리며 각계 각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심지어 도살법 고안, 관혼상제의 의례, 유희, 복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활풍습을 만들어 보급하였고, 종족간 분쟁을 중재, 국제정세를 논의해 외교정책을 결정하기도 했으니 그의 영향력은 몽골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제1대 ‘젭춘담바 자나바자르’는 그 후 환생을 거듭해 몽골의 마지막 복드왕(활불, 법왕)인 8대까지 이어지면서 불교지도자이자 몽골 통치자로서 티벳의 달라이라마와 같은 지위를 가졌다. 현재 9대 젭춘담바는 티벳에서 환생하여 인도에 망명 중이다.]

이렇듯 몽골불교사에 찬란한 금자탑을 일구어 몽골불교의 독자적인 물줄기를 형성시킨 자나바자르에 대해 먼저 알아야 몽골불교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겠기에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울란바토르 시내의 자나바자르박물관으로 향했다.

1966년 6월에 개관한 자나바자르 박물관에는 신석기, 구석기, 청동기 시대의 동물암각화와 자나바자르와 그의 제자들이 남긴 작품들과 탱화와 민화, 아플리케 불화와 탱화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 듣던 대로 자나바자르가 조성했다는 차간다리에흐상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인체 미학의 결정체… 그 균형잡힌 우아한 아름다움은 고도의 집중을 체험한 수행자, 깨달은 천재예술가의 작품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자나바자르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비로소 “몽골의 용사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불살생계를 지키는 승려가 되어 바깥의 적이 아닌 자기 내면의 적과 싸운 것은 칭기스칸의 세계정복보다 더 위대한 인류의 대 진화사건입니다.

인간 능력의 최정점을 드러낸 ‘자나바자르’가 승려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몽골사람들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서구문명의 가치관과 삶의 방법을 불교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지구촌의 현재와 미래가 너무나 절망스럽기 때문입니다.”라는 김선정 교수의 말씀이 이해되었고 자나바자르의 꿈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칭기스칸이 정복 전쟁을 통해 가난한 유목민을 살리고 모두 함께 살아가는 꿈을 이루었다면, 자나바자르는 인간의 내면에 본래 갖추고 있는 위대한 불성(佛性)을 찾아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부처님 나라를 이루는 꿈을 실현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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