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왕오천축국전] 12.초전법륜지, 사르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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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왕오천축국전] 12.초전법륜지, 사르나트
  • 김규현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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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왕오천축국전 별곡 12
사진=픽사베이

어찌 녹야원(鹿野園)이 멀다 하리오

혜초의 시 구절처럼, 바라나시에서 녹야원은 가까웠다.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붓다의 첫 설법지이며 안거지인 사르나트는 너무나 고즈넉하였다. 정신을 차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혼돈 속에 들어 있던 바라나시에 대비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유서 깊은 성지로서의 위상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한가하여 그런 대로 좋았지만, 한편 이런 현상이 현 인도 내 불교의 실정이라 생각하니 씁쓸함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6년의 고행 끝에 위없는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고타마 붓다는 한 동안 보드가야에 머물며 자신이 증득한 깨달음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그 요체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 망설이다가, 마침내 무명에 빠져 있는 중생들에게 빛을 주자고 마음을 정하고 그 첫 상대자로 그와 같이 오랫동안 고행을 함께 하였던 다섯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안통(天眼通)으로 그들이 아직도 미욱한 고행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내고는 보드가야를 출발하여 그들을 찾아 바라나시로 향하였다.

한편 구도를 위한 처절한 고행을 감내하던 고타마 사문을 마치 스승처럼 존경하며 함께 수행하던 콘단냐 등의 수행자들은 고타마가 고행을 포기하고 우유죽을 마시는 것을 보고는 그가 타락했다고 생각하여 그의 곁을 떠나 녹야원에서 독자적으로 수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고타마 사문이 자신들을 찾아온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의논 끝에 그가 와도 일어나 인사하거나 말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백안시였다. 그러나 250km나 되는 먼길을 걸어서 찾아 온 옛 도반의 달라진 모습에 그들은 일어나서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어 앉을 자리를 권하였다.

붓다는 이들에게 이후 45년 계속된 ‘설법자로서의 일생’의 첫 말문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하자면 ‘달마차크라(法輪)의 첫 굴림’인 셈이었다.

“의혹과 미망 속에서 살고 있는 중생들의 삶은 고통[苦]일 뿐이다. 이 괴로움은 부질없는 집착[集]에서 생긴다. 이런 허망한 집착을 극복한 상태가 열반[滅]인데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8가지 실천적 생활태도인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해야 한다[道].”라고 말하고는 이어서, “삶을 고통 이외의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환상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의 나날은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근심과 슬픔만을 더할 뿐 참된 자유를 찾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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