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한 평생
붓다의 삶은 ‘길’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간 일생이었기 때문이다. 45년에 걸친 설법의 노정도 대개는 길에서 이루어졌고 특히 길 위에서의 마지막 회향은 우리 유교권의 정서에서는 매우 꺼리는 ‘객사(客死)’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붓다는 한 평생을 일관되게 후인들을 위해 ‘이상적인 길’의 이정표를 세우시려고 힘쓰셨던 길 위의 스승이셨다. 이는 우리들의 인생 길 자체를 ‘나그네 길’에 비유하는 불교적 사유의 한 실례를 직접 온 몸으로 나타내신 것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는 의미 있는 부분이다.
세수 80을 넘긴 고타마 사문은, 비록 영적으로는 깨달음을 얻어 붓다의 반열에 들었다지만, 육체적으로는 이미 노쇠하였기에 ‘가죽끈에 끌려가는 수레’ 같은 몸은 열반에 들 준비를 해야만 했다. 비록 깨달음을 얻은 여래라 할지라도 이번 생에 육체를 타고난 중생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해야 했다.
그렇기에 마지막 하안거 장소였던 바이샬리에서 붓다는 그의 열반이 가까이 왔음을 측근 제자들에게 알리고 수구초심(首邱初心)이었던지, 바이샬리를 떠나 고향 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붓다는 성의 서북쪽 5리쯤의 한 언덕에서 배웅 나온 사람들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정들었던 바이샬리를 코끼리처럼 온 몸을 돌려 돌아보셨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붓다의 일대기를 다룰 때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은 물론 ‘위없는 깨달음’이지만 열반 또한 불교사적으로는 그 다음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이는 고타마 사문의 죽음을 단지 육체적 소멸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인 니르바나(Nirvana), 즉 ‘열반으로의 입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혜초도 붓다의 마지막 땅에 대하여는 비교적 상세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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