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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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의 외출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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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여행기 1

광복절 전 날인 8월 14일 오후 1시 30분. 나는 불교계의 내 친구인 연담 거사와 함께 수원역에서 광주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두 남자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2박 3일 일정으로 전남 고흥군 건너 섬인 거금도로 현정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오랫동안 그려오던 여행이었다. 내가 현정(玄靜) 스님을 최근에 만났던 것이 1989년이었으니까 무려 8년이나 기다렸던 여행이었다. 8년 만의 외출, 무슨 소설 제목 같기도 하고, 나는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현정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인연이었다. 그러니까 10년 전인 1987년 어느 날, 나는 이전 직장인 국토개발원에서 광주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복작거리고 항상 시끄럽고 닭장 같은 대도시가 싫었는데, 서울을 떠나 출장을 가는 김에 하루밤을 광주 근처의 산사에서 보내고 싶었다. 나는 직장의 불교모임인 국불회 회장인 연담 거사에게 광주 근처 백양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면서 스님을 한 분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다. 며칠 후, 연담 거사가 적어주는 메모쪽지를 들고 광주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걸리는 백양사를 찾아갔다. 마침 주지스님이 출타 중이고 제2인자 스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는데, 그 스님이 이번에 만나러 가는 현정 스님이었다.

그 때에 백양사를 목적지로 정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1972년 5월 어느 토요일. 그 때 나는 학군단 제10기로 임관하여 광주포병학교에서 16주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힘든 훈련도 거의 끝나갈 무렵 외박이 허용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물론 광주시내로 외박을 나갔다. 광주에는 별로 아는 사람도 없고 돈키호테(이것은 20년 동안 한 집에 살고 있는 아내가 나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 기질은 그 때도 있었던지, 나는 내무반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백양사를 찾아 갔었다.

그 때만 해도 절이 한가했던지, 아니면 친절했던지 스님은 예약도 없이 찾아간 두 명의 육군소위에게 요사채의 방 하나를 내주셨고, 나는 난생 처음 절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백양사는 크지는 않아도 매우 아름다운 절이었다.

절 구경을 하고, 저녁공양을 하고, 밤 9시에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한참 자다가 잠이 깨어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산사의 밤 12시 경이었으리라. 요사채 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때마침 보름달이 머리 위 가까이서 교교하게 비치고 있었다. 연못 안에는 달이 있었다. 천지는 고요하고, 절에는 어스름한 안개 비슷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온몸을 휘감는 신비한 기운을 느꼈으며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서 황활경에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의 그러한 느낌이 아마도 참선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는 무아지경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백양사를 가보고 싶었다.

연락을 이미 받은 현정 스님은 친절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그 때는 일행이 없이 나 혼자 출장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정 스님은 인자한 표정이었으며, 특히 목소리가 맑은 물방울 구르는 소리가 나듯 독특한 목소리였는데, 여자가 들으면 매우 매력을 느낄 그러한 목소리였다.

스님은 불교계에서도 독특한 분이었다. 스님은 서옹 큰스님에게서 계를 받았다는데,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스님이 되셨다고 한다.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결심이 아닐텐데, 스님은 불혹의 나이를 넘겨 출가를 단행하셨단다. 이러한 경우를 불교계에서는 늦깎이라고 하는데, 늦게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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