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원(表忠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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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원(表忠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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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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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고향

420년 아도 스님이 창건한 갑사는 679년에 의상 대사가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로 삼았으며 이때부터 화엄 10찰 중의 하나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타버린 뒤에 크게 중창하였다. 갑사 내에 소재한 표충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2호)은 1738년 건립되었으며 서산 대사 휴정(休靜)과 그의 걸출한 두 제자 사명 대사 유정(惟政), 기허 대사 영규(靈圭)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호국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는 불교는 숭유억 불(崇儒抑佛)의 조선조 시대에 더욱 큰 빛을 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서산 대사에게 나라를 구할 방법을 물었고, 서산 대사는 곧바로 전국 사찰에 격문을 돌려 각처의 승려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독려하였다. 수많은 승장들과 의승병들은 혁혁한 전공 을 세웠는데 특히 사명 대사는 유점사 인근 아홉 고을의 백성을 구출하였으며 평양성 탈환, 삼각한 노원평 전투에서도 크게 전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선교양종판사를 제수받았다. 또한 전후에 제 차례나 적진에 들어가서 회담을 가져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였으며, 선조에게 토 적보민사소(討賊保民事疏)와 을미상소를 올려 국가 기강을 쇄신하여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 울 것을 촉구하였다. 영규 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스로 승장이 되어 의승 수백명을 규합, 청주성의 왜적을 물리쳐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이어 1592년 의병장 조헌과 함께 금산 전투에 참가, 500의 의승과 더불어 산화하였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운 금산전투로 왜적의 호남침공을 저지할 수 있었으며, 또한 임진왜란 때 최초로 참전하여 장렬히 전사한 영규 대 사로 인하여 전국 각지의 승병이 궐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나라와 백성을 구한 호국불교 의 전통, 북한의 위기도 우리 한민족의 위기인 만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있으면 곧바로 실천할 일이다.

바라밀다 메아리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문미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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