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해가 아름다운 암자
구례 오산(鰲山)에 있는 사성암은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사람을 치유해 주는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 사랑받아 한 해 20만 명이 찾는다.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가 머물며 수행했다 하여 ‘사성암(四聖庵)’이라 불렸다.
장쾌하게 선 기암괴석들 사이 절벽 위로 아찔하게 세워진 주불전 유리광전(琉璃光殿)에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암벽에 그렸다는 마애여래입상을 모셨다. 자연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이 약사여래불을 예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화엄사 부주지이기도 한 우석 스님은 사성암에서 8년째 주지 소임을 보고 있다. “화엄사 말사 중 바다에는 해동용궁사와 향일암이 있다면, 육지에는 사성암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사성암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사성암은 유적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다 하여 2014년 명승으로 지정됐고, 2020년에는 CNN에서 꼽은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로 구례 화엄사·천은사·연곡사와 함께 선정됐다. 특히 가을에는 암자 앞 섬진강을 가득 뒤덮는 운해가 여기야말로 도솔천임을 실감 나게 한다.
“보시다시피 경관이 뛰어나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요. 가파른 절벽에 세워진 암자에서는 지리산이 바라보이고 또 아래로는 섬진강이 흐르죠. 오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하동까지 보여요. 암자를 두른 산책로에는 소원 한 가지는 꼭 이뤄준다는 소원바위와 화엄사를 향해서 예배할 수 있는 배례석(拜禮石)도 있어요. 그야말로 산과 강과 들 세 가지가 한꺼번에 보이는,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죠.”
영험한 기도처
사성암은 한국 풍수의 창시자로 불리는 도선국사가 풍수를 연마한 곳으로도 알려졌다. 지리산에서 이인이 내려와서 도선국사에게 풍수도참을 전수했다는 설화가 있다. 특히 4대 성인이 수행한 곳이라 하여 기도가 많이 성취됐다는 영험담도 제법 전한다.
“도선국사가 사도리마을에서 풍수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래 ‘사(沙)’ 자를 쓰는 사도리는 사성암 앞의 섬진강 모래밭이었는데 국사가 모래에 지도를 그리면서 풍수를 배웠다고 하죠. 오산 역시 자라 ‘오(鰲)’를 쓰는데 모래사장에서 거북이가 나오는 형상의 산이란 뜻이죠. 사성암은 특히 4명의 스님이 세상으로 나가 중생을 교화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기도를 점검하면서 수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구산 스님, 청화 스님도 이곳에서 수행하셨고요. 불자들에게는 기도 수행이 잘 되는 곳이고 일반인들에게는 이 경관 자체가 주는 평안함이 사성암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길도 나 있지 않은,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은 암자였다. 우석 스님이 주지로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약사전과 산신각 쪽 건물 외에는 모두 판잣집이었다. 점점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도량 이곳저곳을 꼼꼼히 손보기 시작했다. 요사채와 종무소를 짓고 주차장 입구의 건물들도 불사했다.
내후년에는 현대식 건물에 불교적 색채를 더한 불교문화체험관도 활공장 인근에 지을 예정이다. 그곳을 북카페, 갤러리 카페로도 활용해 구례 지역민과 관광객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계획이다.
트렌드에 발맞춘 사찰의 변화
사성암은 화엄사에서 차로 30분 남짓 걸린다. 그만큼 가까이에 있어 연계된 행사를 많이 진행해왔다. 화엄문화제 때 사성암에서 출발해 섬진강 길을 6.9km를 걷는 ‘어머니의 길 걷기 대회’, 사성암 일몰을 본 뒤 화엄사 야간 관람을 하는 ‘별빛 문화재 야행’, 화엄사 모기장 영화음악회와 함께 진행한 ‘낙樂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화엄사 본사 위주의 행사가 많이 진행돼요. 천은사도 나름대로 재즈음악회를 하면서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화엄사-천은사-사성암 3개의 사찰이 트라이앵글로 ‘삼사순례 템플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행사 자체를 쪼개거나 부풀리기 위해서 여기저기 하는 게 아닌, 3개의 사찰이 자신만의 색깔을 덧입혀 함께할 수 있는 행사요. 일단 머리를 맞대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죠.”
우석 스님은 현재 화엄사가 진행하는 모기장 영화음악회,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 등의 행사들과 비건버거·김밥 등의 식품 사업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사찰이 가진 문화적인 자원과 인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트렌드에 발맞춘 사찰의 변화가) 너무 세속의 사업가적인 마인드가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나옵니다.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많은 방편이 필요하다면, 사찰은 비건 김밥이든 문화축제든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주지의 역할과 책무가 신도들을 위한 기도나 포교에 주안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 비종교인들이 사찰에 찾아와서 자기의 삶을 변화하는 계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또 다양한 사업들도 진행해야 하죠. 단지 돈 벌자고 하는 일들이 아니니까요.”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