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나, 진짜 나일까] 세상을 비추는 신령한 기물,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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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나, 진짜 나일까] 세상을 비추는 신령한 기물, 거울
  • 유현주
  • 승인 202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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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한 신물神物, 거울
그림 형제 동화책의 삽화 ‘거울 앞에 선 사악한 왕비’(1916).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거울을 볼까?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는 일은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평범한 습관이다. 거울은 그만큼 우리 일상과 가까운 물건임이 틀림없다.

거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어떠한 사물의 상을 비춰 보여주는 것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자세하고 깨끗하게 보여줄 때 그 거울은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거울은 실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상을 이르는 메타포로 많이 사용된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거나,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표현 등이 그러하다. 특히 역사 분야에서 거울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살펴서 현재를 통찰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왕조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서이자 제왕학 서적인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아예 ‘거울 감(鑑)’ 자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거울은 단순한 광학 기물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거울이 외면의 모습을 넘어서 그 내면까지, 혹은 더 나아가 미래나 인간이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영역까지 비춰 보여준다는 사유가 인류문화사 전반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통방통한 거울 이야기는 전 세계에 걸쳐 수없이 많이 나타난다. 가장 유명한 거울 이야기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거울일 것이다. 백설공주는 유럽 여러 곳에 퍼져있던 전설을 그림 형제가 동화 형식으로 묶어 편찬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Kinder-und Hausmärchen)』에 수록된 이야기다. 백설공주의 계모인 왕비는 신기한 거울을 가지고 있었다. 왕비는 매일 거울을 보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고 묻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는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거울은 왕비가 원하지 않았던 다른 대답을 하고 만다. 온갖 고초를 겪게 될 백설공주의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이야기에서 왕비의 거울은 보이는 것 너머, 인간의 사악한 내면, 혹은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거울이 신령한 기물이었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다.

고개지, 〈여사잠도(女史箴圖)〉의 부분도. 영국박물관 소장
4세기 무렵 중국 황실 여성들의 모습을 묘사한 고개지(顧愷之, 344?~406?)의 회화 작품으로 당시 거울의 사용 방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원형의 청동거울은 뒷면에 달린 꼭지(鈕)에 노끈을 끼워 거울대나 벽에 걸어놓고 사용했다.

 

청동거울의 탄생, 권력의 상징이 되다

최초의 거울은 잔잔한 물의 표면이었을 것이다. 흑요석과 같이 단면이 매끄러운 물체가 사물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돌로 만든 거울이 사용됐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거울을 만들어 낸 것은 청동기 제작 이후부터다.

청동거울은 크게 유럽계통과 중국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형태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집트나 유럽에서 출토된 거울은 손잡이가 있는 형태가 다수를 차지하는 데 비해, 중국계통의 청동거울은 원형을 기본으로 하며 뒷면에 끈을 달기 위한 고리 모양 꼭지(꼭지 뉴鈕)가 있고 바탕에 다양한 무늬를 넣었다. 중국계 청동거울은 일본에서부터 흑해 연안의 코카시아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넓은 지역에서 발견된다. 거울 뒷면의 문양과 꼭지의 개수 등 지역마다 형태적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 청동거울을 대표하는 이른 시기 유물로는 국보로 지정돼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에 소장된 정문경(精文鏡)을 들 수 있다. 이 유물은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도판 1]이란 명칭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다뉴(多鈕)’라는 것은 거울 뒷면 꼭지가 두 개 이상이라는 의미다. 다뉴경은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세문(細紋)’은 그 무늬가 가늘다는 뜻이다. ‘정문(精文)’ 역시 무늬가 정교하다는 뜻이니, 이 두 명칭 모두 거울 무늬의 섬세함을 강조한 이름이다. 요즈음에는 ‘잔무늬 거울’로 부르기도 한다. 

[도판 1]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소장 및 제공 
청동거울은 아주 소수의 권력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의기(儀器)였다. 

숭실대 소장 정문경은 지름이 21.2cm의 비교적 큰 청동거울에 속하는데 그 무늬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3개의 큰 원으로 구역을 나누고, 그 내부는 1만 3,000여 개가 넘는 선들로 작은 삼각형 무늬를 만들어 가득 채웠다. 이 가는 선들은 1mm 너비에 세 가닥이 들어갈 정도로 정교하다. 특히 가장 바깥 구역에 배치된 네 쌍의 작은 원 안에도 간격이 일정한 동심원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어 전체적인 무늬에 율동감을 더해준다. 청동거울의 무늬는 칼로 직접 새기는 것이 아니라 주물을 부어서 만들게 되는데 거푸집이 함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이 유물을 제작한 방식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히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라는 것이다. 

위의 유물처럼 탁월한 품질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시 청동거울은 흔치 않은 귀한 물건이었다. 현전하는 청동기는 대개 무덤의 부장품으로 여러 개가 동반 출토되는 경우가 많은데, 청동거울은 출토 사례가 많지 않다. 즉 다양한 청동기를 소유할 수 있었던 소수의 계층 중에서도 청동거울은 더욱 한정된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특히 제사장과 같은 종교적 영능자가 사용하던 의례용 기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기록 문자가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전승돼온 민족지적 자료들을 통해 그 대강을 추론할 수 있다.

 

무구(巫具)로서의 거울, 신령한 세계를 비추다

샤머니즘 세계에서는 지금도 거울의 종교적 기능이 살아 있다. 특히 시베리아 샤먼의 경우 ‘톨리(Toli)’라고 부르는 놋쇠붙이들을 몸에 주렁주렁 매달기도 한다. 톨리는 하늘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신성성에 대한 징표이며 악귀를 쫓아내거나 정화·축복하는 도구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거울은 핵심적인 기물로 목에 걸어 가슴이나 등 뒤에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착용한다[도판 2, 3]. 

[도판 2] 몽골 샤먼의 무복(巫服). 등드리개로 거울을 매달았다. 출처 MAA Collections
[도판 3] 부리야트(buryat)족 샤먼의 의례 장면. 거울 ‘톨리(Toli)’를 목에 걸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우리 무속 전통에서도 거울은 대단히 중요한 신물(神物)이다. 명두(明斗), 혹은 명도(明圖)라고 부르는데 무당은 이를 수호신으로 여기며 신방(神房) 벽의 무신도 상단에 모신다. 앞면은 불룩하며 뒷면에는 대개 해와 달,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거울은 점을 치거나 굿을 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데 황해도 굿의 경우에는 명두를 무당 머리나 가슴에 매달기도 한다[도판 4]. 

[도판 4] 명두(明斗)의 앞면(왼쪽)과 뒷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크기가 각기 다른 명두 세 개가 여러 가닥의 무명실에 고정돼 있다. 뒷면에는 해와 달, 북두칠성과 ‘日月大明斗(일월대명두)’ 자가 양각됐으며 사다리꼴 주머니가 명주실에 달려 있다. 

굿을 할 때 무당의 몸에 늘어뜨리는 거울은 무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 빛이 비치면 그 빛을 고스란히 반사해 거울 자체가 작은 해와 달이 된다. 무당의 머리와 가슴팍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거울은 일월의 광명과 우주의 신성을 무당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달-거울의 대응 구조는 무가(巫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옛날 옛 시절에 미륵님이 
한쪽 손에 은쟁반 들고 한쪽 손에 
금쟁반 들고 하늘에 축사하니 하늘에 
벌레 떨어져 금쟁반에도 다섯이오 
은쟁반에도 다섯이라 그 벌레 자라나서
금벌레는 사나이 되고 은벌레는 
계집으로 마련하고
은벌레 금벌레 자라나서 부부로 마련하여
세상 사람이 났어라”

-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

위의 무가는 1930년대 함경남도 무당 김쌍돌이의 <창세가> 채록본의 일부다.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읊는 대목인데, 미륵이 창세 주체가 되어 인간 남녀를 창조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금쟁반·은쟁반은 번쩍이는 명두를 연상케 하며, 해와 달의 상징체로 인간의 기원을 일월에서 찾고 있는 서사 구조를 보여준다. 

 

거울 속 글자가 고려 건국을 예언하다

이처럼 거울은 신묘한 기물로 여겨졌으며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통치자의 권력 그 자체를 상징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건국 설화에도 거울이 등장한다. 918년은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해다. 그해 3월의 일이다.

하루는 당나라 상인 왕창근(王昌瑾)이란 사람이 시장 거리에서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겉모습이 남달랐다. 훤칠한 용모에 수염과 머리털이 희고 옛 의관을 착용했는데 왼손에는 사발을, 오른손에는 오래된 거울을 들고 있었다. 그는 왕창근에게 “내 거울을 살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범상치 않은 외모 탓이었는지, 왕창근은 무엇에 홀린 듯 쌀을 주고 그 거울을 사버렸다. 그러자 그 노인은 쌀을 거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회오리바람같이 사라졌다. 

왕창근은 거울을 담벼락에 걸어뒀는데 햇빛이 거울에 비스듬히 비치자 가느다란 글자가 은은히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 글은 모두 147자였는데 언뜻 옛 시 같아 보였다. 대략 “상제(上帝)가 아들을 진마(辰馬)에 내려보내어 먼저 닭을 잡고 후에 오리를 치리니… 사년(巳年) 중에 두 마리의 용이 나타나 한 마리는 몸을 청목(靑木) 중에 숨기고 한 마리는 모습을 흑금(黑金)의 동쪽에 드러낼 것이다.…”라고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임을 직감한 왕창근은 궁예에게 아뢰었다. 궁예는 당장 관리를 붙여 창근과 함께 그 노인을 찾도록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발삽사(勃颯寺)라는 사찰의 불당에서 그 노인과 꼭 닮은 진성(鎭星, 토성) 소상(塑像, 찰흙으로 만든 인물상)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너무나도 기이한 일이었기에 궁예는 송함홍, 백탁, 허원에게 이 문구들을 해석하도록 명령했다. 이들은 이 기묘한 글을 궁예와의 패권 다툼에서 왕건이 승리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상제가 아들을 진마에 내려보냈다는 것은 진한·마한을 말하는 것이고, 두 마리 용 가운데 청목의 용은 송악의 왕건을 말하는 것이고 흑금의 용은 철원의 궁예를 뜻하는 것인데, 이 중 왕건이 신라를 얻고 압록강까지 수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포악한 궁예의 성정을 두려워하여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그해 6월, 왕건은 장수들의 추대를 받고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건국한다. 이 예언 글은 ‘옛 거울에 나타난 참요(讖謠)’라 하여 ‘고경참(古鏡讖)’이라 한다. 모든 패권자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이 고경참설 역시 정변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로 다름 아닌 거울 상징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글자의 형식으로 예언을 전달하면서 왜 하필 거울일까? 이와 관련해 우리의 흥미를 끄는 유물이 하나 있다.

청동거울 가운데 투광경(透光鏡)이라는 종류가 있다. 투광경 유물은 중국과 일본에서 가끔 발견되는데, 빛을 반사했을 때 거울에 새겨진 문양이 벽면에 투사돼 나타나는 일종의 반사경이다. 영어권에서는 ‘마술 거울(magic mirror)’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지난 2022년에 미국 신시내티 미술관 수장고에서 우연히 발견된 투광경이 그 대표적 예다. 

[도판 5] 15~16세기 중국 혹은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투광경(透光鏡). 앞면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각도로 빛을 반사하면 보이지 않던 부처의 형상이 벽면에 나타난다. 출처 artnet news, 사진 Rob Deslongchamps.

신시내티 미술관의 투광경[도판 5]은 마치 평범한 청동거울과 같은 형태다. 거울 뒷면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다. 그러나 특정한 각도로 거울 앞면에 빛을 반사하면 벽면에 부처상이 투영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햇빛이 거울에 비치자 은은하게 가느다란 글자가 나타났다’는 왕창근의 거울이 연상된다. 겉으로 볼 때는 단지 오래된 거울처럼 보이지만 빛이 반사되면 그때서야 숨겨진 메시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거울은 신성한 뜻을 전달하는 신물(神物)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나의 거울은 무엇을 비출까. 잠깐 틈이 난다면 거울을 마주하고 조용히 들여다봐야겠다. 문득 미처 보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눈 맞춤할지도 모를 일이다. 

 

유현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려사』 「예지(禮志)」 가례(嘉禮)를 통해 본 고려시대 국속(國俗)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암각화와 바위신앙, 의례 상징과 민속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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