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용 작가는 기도하는 사람의 형상을 먹과 물감을 이용해 한지에 표현한다. 합장 반배하고, 엎드리고, 오체투지하거나 좌선하는 단순한 형태를 반복적으로 그리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전체적인 조화와 다채로운 리듬감이 작품마다 느껴진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108배>, <만배>, <팔만사천> 연작, <명상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 연작 등이 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거울삼아 내면을 치열하게 들여다보며 구도하는 박청용 작가. 그를 14번째 개인전 《내 마음의 우주를 걷다-기쁨으로 가는 길》 마지막 날인 6월 28일 서울 평창동 아트센터 자인에서 만났다.
나를 비추는 거울
화가들에게 거울은 자화상을 그리는 도구이자, 내면의 정체성을 투영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곧 거울은 자신을 비춰 보는 도구라는 점에서 일종의 내면의 거울을 상징한다. 기도하는 형상을 수행하듯 그리는 박청용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대면한다.
“나를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제 작품을 거울로도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동이 많이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작업할 때 정말 다양한 생각이 들죠.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지금 이런 감정 상태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가 조금씩 더 잘 들여다보이더라고요. 제게 그림은 감정의 거울, 생각의 거울인 셈이죠.”
<기도하는 사람들> 작품의 출발은 ‘나는 왜 태어났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였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생사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일이 있었다. 정말이지 간절히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성현들과 철학자들의 책을 찾아 읽었고, 단전호흡도 배우며 자연스럽게 명상이라는 길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미대를 졸업한 뒤 충북 보은으로 내려가 집과 작업실을 마련했는데, 집 근처 법주사 불교대학에도 다녔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성장한다고들 하잖아요.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 화두에 꽂혀서 모든 신경과 생각이 거기에 집중됐어요. 이번 생에 최소한 내가 왜 태어나고 어디로 가는지 알면 후회는 안될 것 같았어요. 2015년 법주사 앞 작은 갤러리 전시를 시작으로 2018년 <기도하는 사람들> 작업을 모아서 첫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렇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치열하게 공부하며 작업하다 보니 부처님과 성현의 말씀이 다 맞더라고요.”
그의 작품 주요 모티브인 ‘기도’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간략한 점, 선, 면으로 이뤄졌다. 절하거나 좌선하는 형상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불교적인 그림, ‘불화’라고 구분 짓지 않는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들에 대한 작업에서 단지 형태가 기도하고 절하는 모습으로 표현됐을 뿐”이라고.
“마음을 찾아가는 데 있어 그림이 결국엔 저의 방편이 되는 거죠.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면 기도로 그걸 찾아가는 거고요. 제가 가진 그림 그리는 재능으로 부처님이나 성현들의 말씀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공(空)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리지 않음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요.”
여백, 비워진 거울
거대한 바탕에 기도하는 사람들을 깨알 같은 크기로 빼곡하게 채운 그의 작품에서 관객들은 감탄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낀다. 비단 수많은 형상을 화폭에 담았을 작가의 시간과 공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도하는 형상 하나하나마다 인생에 대한 통찰, 간절함이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최소한 만배 정도는 기도해야 나를 찾아갈 수 있겠다” 하고 그린 <만배(萬拜)>(2015)를 시작으로 108배, 삼천배 등 기도하는 사람들을 다양한 숫자와 구도로 그렸다. 그리고 2017년, 기도하는 사람들 연작에 변곡점이 돼준 작품이기도 한 팔만사천 연작을 그리게 됐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처럼 부처님께서 팔만사천 마음과 중생이 있다니까, 이걸 다 그려보면 뭐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팔만사천 시리즈의 첫 작품 완성 후 좀 지나고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내가 나를 찾으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요. 그러니까 팔만사천 마음 구하는 거에만 마음이 꽉 차 있던 거죠. 그렇게 비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여백과 다양한 색감이 표현됐어요. 사람들하고 조금씩 소통도 하면서 작품도 더 발전한 것 같고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걸 이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된 거죠.”
한 단계 도약한 그는 계속해서 내면 탐구를 이어갔다. <‘서광(西光)’-십만배귀의>(2020)를 비롯해 <팔만사천 ‘단비’>(2019), <팔만사천 ‘여백’>(2022), <팔만사천 ‘행(行)’>(2021~2022)은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었다. 작품을 그리는 순간은 명상하듯,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제 그에게 더 이상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초창기에 108배 작업을 할 땐, 기도 한 번에 기도하는 사람 하나씩 그렸어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거의 하루를 온전히 마음으로 그리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지켜볼 수 있는 알아차림의 힘이 커졌어요.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는 기복도 줄어들었고요. 사람 머리를 보통 점으로 찍는데 사랑스러운 사람을 표현할 땐 머리를 하트처럼 표현하기도 해요. 절하는 형상뿐 아니라 공양하듯 꽃을 바치는 형상, 책을 읽는 형상도 자연스럽게 중간에 그려 넣고요. 내 마음이 행복해지니까 캐릭터에도 그 행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더라고요.”
‘명경(明鏡)’, 거울 속 얼굴들
거울에 ‘나’와 ‘나의 마음’만 비추는 집착을 놓아버리자, 거기에 무수한 얼굴들이 비쳤다. 인연 됐던 수많은 이들이 인드라망처럼 그의 작품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그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해준, 늘 마음으로 기도해준 고마운 이들의 얼굴이었다.
박청용 작가의 말마따나 “기도하는 마음을 그리는 초기에는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에 온전히 집중”했다면 “점차 내면과 소통하며 비움의 과정에서 여백을 담아내고, 나, 너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마음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명경(明鏡)>(2022)이란 작품은 그런 고마운 인연들을 비춘다. 동그라미 안에 기도하는 사람 형상 하나가 크게 그려져 있다. 그 위로 한지 한 장을 덧대어 절하는 사람들을 중첩해 그려놓았다.
“어떨 땐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혹은 내가 기도해준 사람이 거울에 비치기도 해요. 거울은 내외가 없지만, 이 작품에선 기도하는 어머니(혹은 누군가)와 그 사랑을 뒷장에 그려서 표현해봤어요. 내면에서 비쳐 나오는 빛, 비어 있는데 채워진 마음 같은 거죠.”
경건함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 앞에 선 관람객들은 쉽사리 그 자리를 뜨지 못할 것이다. 2021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필자 역시 그랬다. 아마도 무언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봤던 이들이라면 그의 그림들에 더욱 감응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고 기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을까.
“팔만사천 작업을 하면서 간절함의 끝을 봤던 것 같아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있잖아요. 내가 간절히 구한 만큼 반작용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간절함이라는 것은 간절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 간절한 마음에 빠져서 주변을 못 볼 수도 있거든요. 저도 한때는 거기에 빠져 주변에 소홀했던 적이 있었죠.
어떤 꽃은 봄에 피고 또 어떤 건 가을에 피듯, 그분들의 인연이 맞는 타이밍에 그런 간절함의 꽃이 분명 피어날 거예요. 그리고 간절한 사람을 위해서 같이 옆에서 기도해주는 친구, 가족, 어르신, 스님, 신부님, 목사님들…. 그런 모든 분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찾아왔으면 합니다.”
평산(平山) 박청용 + 2005년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과를 졸업한 뒤, 2015년 박청용 초대전(美갤러리), 2018년 보은동학제 특별초대전(보은문화원)을 시작으로 2024년 박청용 초대전(아트센터 자인, 서울) 등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2021년 제31회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최우수상(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상 및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