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에 불국토 역사를 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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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에 불국토 역사를 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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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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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생활속의 불교수행 - 전법

처음 백령도 불사계획을 얘기하자, 도반과 선후배 및 어른스님들께서는 불교 신도도 몇 되지 않고, 교회가 지천이고, 교통 불편 등 너무도 열악한 환경인데다 자금 한 푼도 없이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모두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만류하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감과 명분이 있었기에 별 두려움 없이 오히려 평소 생각해 오던 이상적인 도량을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되새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천일기도 입재에 들어가기도 전에 섬의 개신교도들이 사찰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였다.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이교도들이 이미 선점하여 등등한 교세에 대한 불쾌감에서 비롯된 일이었으니 여간 낭패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독교 성지 백령도에 사찰 건립(관창동)이 웬 말이냐 결사반대.”서해 최북단의 자그마한 섬 백령도의 선착장인 용기포 초입부터 곳곳에 나부껴 흩날리는 현수막을 바라보는 마음 한편에서는 ‘수행력 일천하고 짧은 인생 이곳 백령도에서 순교하는구나.’ 하는 처참한 마음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불사의 원력을 세우고 천일기도를 입재하였던 스님이 개인적인 이유로 기도입재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회향을 하게 되었다. 불사의 시작은 가볍고 당찼으나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현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미궁의 은산철벽이 이와 같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으로 암담하기까지 하였다.

사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고 하는 중화동교회(중화동 절터라 불리는 곳인데 110년가량 되었다고 한다)를 비롯하여 10여 곳의 교회가 있으며 오래도록 사찰이 없었던 까닭에 주민들 대부분이 토착화된 교회의 영향력으로 개신교도가 되어 있었으며, 몇 명 되지 않는 불자들도 여간한 신심으로는 사찰로의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화정사 건립을 위한 백령도 입도 당시 한 불자님의 집에서는 여러 명의 목사와 교인들이 찾아와 사찰 건립에 동참할 때 일어나는 불이익을 감수할 것을 경고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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