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미륵보살의 미소와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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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미륵보살의 미소와 서원
  • 명법 스님
  • 승인 2023.05.2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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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미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사유의 무게는 얼마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말은 흔히 사유의 힘에 대한 찬탄으로 읽히지만 인간의 유한성과 왜소함에 대한 실토라고 하는 것이 맞다. 파스칼이 지적하듯이 사유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죽음과 자신보다 월등히 우월한 우주를 만나지만 그것은 전 우주에 맞서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영웅서사라기보다 인간과 세계를 분열시키고 인간 내면에 깊은 파열을 만들어 낸 근대적 비극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생각이 많은 자는 시름이 깊은 법, 인간사의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우주의 근원과 영원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에 이르기까지 사유는 우리를 불가피하게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 이끈다.

지옥문 위에서 웅크리고 앉아 지옥 같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뒤틀린 자세, 온몸에 불거진 근육, 꽉 다문 무거운 입술, 거칠고 투박한 청동의 질감으로 바라보는 사람마저 심연으로 가라앉히는 사유의 무게를 전달한다. 그는 지옥 같은 세상을 혁파하려 고심하지만 지옥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에 짓눌려 있다. 고통을 직시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고통스럽다. 

놀랍게도 서양에서 사유하는 인간이 조형적으로 묘사된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산 로렌초 교회에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유력한 가문이었던 메디치가의 무덤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곳에 로렌초 메디치를 모델로 한 인물상을 조각했다. 턱을 괴고 앉아 사색에 잠겨 있는 사람,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벽화에도 같은 자세의 인물을 그려 넣었다. 구약에 나오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 타락한 시대를 고발하며 멸망을 예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깊은 수심에 잠겨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형상화한 작품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변혁하려는 그들의 도덕적 의지에도 불구하고 세계와 자신의 분열로 인해 고통스럽게 어그러져 있다. 여기에 같은 자세를 하고 있지만 정반대의 표정을 가진 상이 있다. 반가사유상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반가상의 호리호리한 몸매, 경쾌하고 부드러운 윤곽선, 매끈하게 빛나는 금동의 표면은 사유에 대하여 미켈란젤로나 로댕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얼굴의 표정이다. 짙게 음영을 드린 광대와 퀭하게 움푹 파인 두 눈에 깃든 심각함과 엄숙함, 억압되었다가 다시 분출되는 <생각하는 사람>의 남성적 에너지와, 반가사유상의 반쯤 감은 눈과 옅은 미소에 응축되어 있는 고요함과 밀도, 여성적인 부드러움 속에서도 깊이 정신을 끌어당기는 힘은 양자 사이의 거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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