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로써 울타리를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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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로써 울타리를 삼아
  • 관리자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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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뵙고싶은 큰 스님/자운(慈雲) 스님

* 자운 대율사 율풍 선양 제1차 특별심포지엄 자료집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운 문도회와 가산불교 문화연구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자운 스님은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율사로서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도 가사 장삼을 벗지 않으실 정도로 한평생 계율을 수지하고 홍포하셨다. 율행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불법 중흥의 근본임을 천명하신 스님의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날 청정승단의 기틀이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님께서 계율 지킬 것을 그토록 간절히 주창하셨던 데는 다 시절 인연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한국 불교는 대처승화되면서 세속화의 길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들 가운데 걸출한 인물들을 보면 전생부터 기연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찍이 자장 율사의 후신으로 칭송받던 스님의 숙연설(宿緣說)이 감동적이다. 스님의 제자인 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자운 대율사 율풍선양 특별 심포지엄’에서 그 내용을 밝혔는데 다음과 같다.

“양산 통도사가 1950년 6.25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당한 국군 상이병들의 정양소(31육군정양소)로 사용됨에 따라 사중(寺中) 스님들은 모두 사하촌의 사가(私家:대처승측에서 종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서 숙식하고, 사찰법당은 보궁 금강계단만 제외하고는 군인들의 수용소가 되었다.

각 법당은 모두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면서 마룻바닥은 장기판으로 각선(刻線)되었고, 이발한 머리카락과 소를 잡아 끓여먹고 남은 뼈다귀는 마루 밑에 집어넣어 법당이 마치 쓰레기장과 다름이 없었다. 군인들이 1952년 3월 신축한 부산요양소로 옮겨간 후에도 법당에 쌓인 오물을 청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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