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눈과 귀가 즐거운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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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눈과 귀가 즐거운 사찰
  • 관리자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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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도비산 부석사(浮石寺)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 시 「서해(西海)」 중에서

스무 살 무렵 이성복 시인의 ‘서해’를 처음 읽으면서부터, 오랫동안 서해는 아득한 그리움과 슬픔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서산 부석사를 향하는 내내, 동해나 남해를 갈 때와는 분명 다른, 미묘한 떨림이 일었다.

매섭던 혹한마저 한풀 꺾인 후 겨울비의 여파로, 서해를 바로 마주하고 있는 부석사는 잔뜩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서쪽을 향해 아무리 응시해도 흐린 날씨 탓에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종무소와 공양간으로 쓰이는 ‘심검당(尋劒堂, 지혜의 검을 찾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두 분 스님이 점심공양을 마치고 툇마루에 앉아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부석사 주지 주경 스님과 총무 원우 스님이시다.

못 이룬 사랑 돌이 되어

부석사는 와우(臥牛, 누워있는 소)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큰 법당인 극락전이 머리, 심검당이 몸통부분에 해당한다. 그래서 심검당 아래의 약수를 우유(牛乳)약수라고 한다. 가람을 잘 살펴보면, 소의 뿔과 발톱, 여물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서산 부석사는 영주 부석사와 이름뿐 아니라 그 창건 설화를 같이 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의상 대사를 사모한 당나라 여인 선묘 낭자는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하여, 신라로 돌아가는 의상 대사가 탄 배를 수호하였다.

의상 대사가 선묘 낭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찰을 지으려 하는데 마을 사람들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자, 큰 돌이 공중에 둥둥 떠서 이들을 위협하여 불사를 다시 재개할 수 있었다. 큰 돌은 훌쩍 날아가 서산 앞바다에 자리를 잡고 바위섬이 되었다. 바다로 날아간 돌이 있던 산이라 하여 도비산(島飛山), 절에서 볼 때 돌이 바다에 떠 보이는 것 같아 절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 부르게 되었다.

서산 부석사는 677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극락전 상량기와 1330년 조성된 관세음보살상이 일본의 대마도 관음사에 봉안되어 있어 적어도 고려 후기 이전에 창건된 고사찰임을 알 수 있다.

부석사 주변의 바위나 고목, 부도 등에서 발견되는 지의류의 형태와 크기를 보더라도 천년의 역사가 고즈넉하게 숨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가늠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무학 스님이 중창하시고, 근대에는 한국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스님이 주석하며 수행정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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