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뭐꼬? 이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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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뭐꼬? 이것뿐!
  • 월호
  • 승인 2023.02.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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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과 명상, 그 절묘한 만남

 

이 뭐꼬? 이것뿐!
저작·역자 월호 정가 18,000원
출간일 2023-02-20 분야 종교
책정보

판형 신국판 변형(150×215mm)|두께 19mm | 312쪽 | ISBN 979-11-92476-88-9 (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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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실체 없는 세상 속에서 한바탕 번뇌 놀이에 몰두하는 당신,

‘진짜 나’를 속이는 가짜 현실에서 벗어나라!

고통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는 몸과 마음, 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고정된 실체’라고 믿는 데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를 ‘꿈’, ‘허깨비’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시시각각 늙고 병들고 죽거나, 생기고 머물다 소멸하는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집착을 거듭함으로써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동안 일반 대중에 맞춤한 참선법을 활발히 전해온 월호 스님은,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아바타’에, 그리고 이 세계(우주)를 ‘메타버스(가상현실)’에 비유한다. 우리는 가상의 현실 속에서 배회하고 고통받는 하나의 아바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스님의 신간 『이 뭐꼬? 이것뿐!』에는 허깨비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세 가지 처방을 권한다.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바타 명상’, 자존감 회복에 특화된 ‘바라밀 명상’, 일생의 평화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행불 명상’이 그것이다. 이들 명상법의 핵심은 불안한 몸과 마음을 객관화해 대면 관찰하고(아바타 명상),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크고 밝고 충만한 성품을 발견하며(바라밀 명상), 부처의 몸가짐・마음가짐을 연습하는 것(행불 명상)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나’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해도 좋다. 단계를 삼아 나아가도 좋다. 저자의 처방을 실천하기가 영 어렵다면 특유의 유쾌하고 명쾌한 문체로 풀어낸 이 명상 법문 안에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선택해 삶의 방향으로 삼아도 좋다. 그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나아가든 ‘월호 스님 표 명상’엔 메타버스 같은 세상 속에서 한바탕 아바타 게임에 몰두하는 ‘나’를 일깨우는 묘책이 담겨 있다.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나’도 만들 수 있다!”

저자소개 위로

월호(月瑚)

동국대 선학과에서 「고려 혜심의 간화선 연구」(1993)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리산 쌍계사로 입산 출가하여 쌍계사 강원을 졸업하고, 희양산 봉암사, 팔공산 동화사, 지리산 쌍계사, 설악산 신흥사, 인천 용화사, 가야산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참선 정진하였다.

동국대 선학과 겸임교수, 해인사승가대학 교수, 쌍계사승가대학 학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행불선원 선원장으로서 한국참선지도자협회와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로 있다.

BBS불교방송에서 〈월호 스님의 행불아카데미〉를 인기리에 진행하고 있으며, 월호 스님의 법공양 〈줄탁동시〉와 월호 스님의 게송명상 〈관찰자를 관찰하라〉를 통해 미디어 전법에도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참선 입문서인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를 비롯하여 『월호 스님의 유마경 강설』, 『월호 스님의 선가귀감 강설』, 『월호 스님의 십우도 강설』 등이 있으며, 팔만대장경의 핵심 게송을 선별하여 『붓다의 노래』, 『담마의 노래』, 『승가의 노래』를 편찬하였다.

목차 위로

들어가며-달다!

제1부. 화두 이야기

화두는 설정이다

첫째,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 병 속의 새를 꺼내라 | 송장 끌고 다니는 이놈은 무엇인가? | 마음을 가져오너라 | 누가 묶었냐? | 벌이 창을 두드리다 |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 부처를 뽑는 곳 | 목불을 태워 사리를 얻으려 하다 | 수미산 | 부대사가 『금강경』을 설해 마치다

둘째, 이것뿐!

이 뭐꼬? | 밥 먹는 놈이 누구냐? | 어떤 것이 그대의 본래면목인가? | 크게 수행하는 이도 인과에 떨어지나? | 뜰 앞의 잣나무 | 구구 팔십일 |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 | 눈과 귀가 없다고? | 호떡 | 한 번 때리자 알던 것 다 잊어버리다

셋째, 알겠는가?

어디에 계시오? | 어찌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는가? | 어떤 것이 불법인가? | 임제 할! | 덕산 방! |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 일곱 근 삼베의 무게가 얼마인가? | 문수보살이 주걱으로 얻어맞다 | 어떤 것이 기이한 일인가? | 여릉의 쌀값이 얼마인가? |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

제2부. ‘이 뭐꼬?’에서 ‘이것뿐!’으로

수행 패러다임의 전환 | 세 가지 명상

첫째, 아바타 명상

일반 명상 VS 아바타 명상 | 몸과 마음은 아바타 | 취미는 번뇌! 특기는 해탈! | 많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 인생의 목적은 해탈 | 괜찮아, 아바타잖아! | 아바타가 명상한다 | 대면 관찰! 해탈의 기쁨! | 몸은 물거품! 마음은 아지랑이! | 이와 같이 관찰하라! | 아바타가 화가 난다 |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 모든 고통 사라지는 진언 | 인욕바라밀 | 무아에서 대아로

둘째, 바라밀 명상

일반 명상 VS 바라밀 명상 | ‘마하반야바라밀’을 구념심행하라 | 사하월드의 발원 |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 관찰자와 아바타는 둘이 아니다 | 아바타가 걷고 있다 | 공 놀이 | 달은 항상 보름달이다 | 무명 이전은 명이다 | 무위도인과 무위도식 | 삼불은 다투지 않는다 | 상상 훈련 | 신비로운 진언 | 원불설 | 청구서와 영수증 | 패스워드를 기억하라 | 대아에서 시아로

셋째, 행불 명상

일반 명상 VS 행불 명상 | 행복은 현재의 선택이다 | 번뇌는 별빛이라 | 세 알의 약 | 견성 공부 | 좌선은 안락의 법문 | 행불 명상은 ‘바로 지금’ | 자성은 본래 완전하다 | 관찰자를 관찰하라 |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 | 네 죄를 가져오라 | 역경계가 순경계 | 불성에는 남북이 없다 | 불성은 항상 청정하다 |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 저승사자는 어째서 스님을 보지 못했을까? | 깨달음은 태초에 완성되어 있다 | 오직 앉아 있을 뿐 | 일체중생이 불성이다 | 생명을 생기 있게 | 완벽한 스님

제3부. 마음공부의 다섯 단계

마음 그릇에 대하여 | 그릇 비우기 –참회를 통한 자기 정화 | 그릇 채우기 –발원을 통한 자기 전환 | 그릇 키우기 –기도에 의한 자기 확장 | 그릇 없애기 –참선을 통한 자기 확인 | 그릇 만들기 –행불을 통한 자기 창조

나가며-문수는 문수! 월호는 월호!

상세소개 위로

번뇌를 초월해 ‘진짜 나’를 찾는 이들을 위한

월호 스님 표 수행 법문의 결정판!

… 모든 번뇌를 초월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세 가지 명상’

… 결코 깨지지 않는 모두의 마음 공부법, ‘다섯 가지 그릇 이론’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금강경』에서는 ‘모든 존재는 꿈과 같고, 허깨비 같으며,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갯불과 같으므로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토록 소중한 나의 몸과 마음은 물론, 보이고 느껴지는 내 눈앞의 현실과 세계 모두가 환상이라니,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 말의 속뜻은 무엇인가? 바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든 존재에 우리가 믿는 ‘고정된 실체’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반 대중에 맞춤한 참선법을 활발히 전해온 행불선원 선원장 월호 스님은, 그러한 이유로 나의 몸과 마음을 ‘아바타’에, 그리고 이 세계(우주)를 ‘메타버스(가상현실)’에 비유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펼쳐진 세계처럼, 우리는 가상현실 속을 배회하며 고통받는 하나의 아바타라는 것이다. 그럼 ‘진짜 나’는 무엇인가? 바로 고통스러운 현실(메타버스) 속에 존재하는 아바타를 관찰하는 자로서, 이미 크고 밝고 충만한 성품을 지닌 존재이다. 이로써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번뇌는 ‘진짜 나’의 것이 아니라 ‘아바타’의 몫이 된다. 이것이 월호 스님 표 명상 수행의 핵심 전제이다.

월호 스님이 권하는 세 가지 처방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에서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Neo)에게 두 가지 알약 중 하나를 삼킬 것을 권한다. 파란색 약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그대로 머무는 약, 붉은색 약은 ‘진짜 세계’에서 눈을 뜨게 하는 약이다. 네오는 붉은색 알약을 삼키고 진짜 세계의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 완전한 존재(the ONE)로 추앙된다.

월호 스님도 이 책에서 ‘세 가지 알약’을 우리 앞에 꺼내 놓는다. 이 세 약이 〈매트릭스〉의 두 약과 다른 점은 무엇을 선택하든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고, 같은 점은 이를 통해 우리도 마음에 걸림이 없는 (본래의) 완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처방 ‘아바타 명상’은 근심 걱정을 벗어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번뇌에 고통스러워하는 몸과 마음에 닉네임을 붙여(아바타) 관찰하는 것이다. 이때 ‘진짜 나’는 관찰자가 되어 객관적인 시각으로 생로병사와 탐진치에 점철된 ‘아바타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객관화를 통하여 고통으로부터의 해탈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게 된다.

두 번째 처방 ‘바라밀 명상’은 스스로를 결핍된 존재라 여기는 습관을 버리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달의 비유를 사용한다. 어느 날은 초승달로, 어느 날은 그믐달로 보이는 달이 본래 보름달인 것처럼 관찰자인 ‘진짜 나’는 잠시 무명의 그림자에 가려 있을 뿐 항상 크고 밝고 충만함을 깨닫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최상의 진언인 ‘마하반야바라밀’을 입으로 염(念)하고 마음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세 번째 처방은 ‘행불 명상’이다. 이는 부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연습함으로써 일생의 평화를 도모한다. 예컨대 달은 항상 보름달이므로 초승달이나 그믐달이 굳이 보름달이 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때그때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그뿐, 부처가 따로 있어 부처의 행(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행을 하는 자가 곧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평화로울 수 있다. 나아가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어 모두 해탈하도록 이끄는 것, 그것이 행불 명상이자 진정한 참선이다.

불교 명상의 새로운 패러다임

월호 스님 표 명상의 세 가지 처방은 일반의 대중화된 명상과 차별된다.

첫째, 일반 명상은 몸과 마음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해 그것의 실체 없음을 확인한다. 아바타 명상은 이에 더 나아가 실체 없는 몸과 마음을 아바타의 현상으로 분리해 대면 관찰함으로써 아바타가 겪는 고통과 번뇌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둘째, 일반 명상은 몸 보기, 마음 보기 등에 집중한다. 하지만 바라밀 명상은 처음부터 몸이나 마음 대신 본래 ‘보름달’인 ‘본마음 참 나’의 공(空)한 성품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일반 명상은 수행을 통해 깨달은 이, 즉 부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행불 명상은 부처의 행을 수행하는 것으로 본래 부처에 입각해 닦는 수행이다. ‘우리는 본래 부처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렇다.’ 이를 굳게 믿고 ‘지금 부처’로 현성해 나아가는 것이다.

결코 깨지지 않는 마음공부의 바른길, 그릇 이론

하지만 초보 수행자에게 ‘the ONE’으로 거듭나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초보자의 발심(發心)은 무쇠와 같아서 깨지기 쉽고 성취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 발심을 강철로 거듭나게 하는 ‘용광로의 불’과 ‘대장장이의 단련’이 필요한데, 그것이 마음공부의 다섯 단계로서 저자가 고안한 ‘그릇 이론’이다.

불교에는 다양한 수행법이 공존한다. 그런데 서로가 부딪히기도 하고, 입문자들에게는 수행의 문턱에서 갈피를 잡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 주요한 원인은 수행상의 체계가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음을 하나의 그릇에 비유하여 불교의 다양한 수행법을 하나의 체계로 구성한다.

① 그릇 비우기 - 참회(懺悔)를 통한 자기 정화

② 그릇 채우기 - 발원(發願)을 통한 자기 전환

③ 그릇 키우기 - 기도(祈禱)를 통한 자기 확장

④ 그릇 없애기 - 참선(參禪)을 통한 자기 확인

⑤ 그릇 만들기 - 행불(行佛)을 통한 자기 창조

이 다섯 단계는 본격적인 마음공부를 위한 준비 단계(①, ②)로 시작해 일념(一念)과 무념(無念)의 성취를 이루고(③, ④), 마침내 자신의 삶의 창조자는 자신임을 깨닫는 단계(⑤)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바른길로 하여금 우리는 마음의 주인으로서 매사에 감사하고,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나아가 일체가 곧 ‘부처’임을 깨닫게 되므로 중생과 더불어 생동하는 삶을 살게 된다. 깨어 있는 삶을 살되 시비분별하는 입장이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서 일체중생을 자비의 눈길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불교 명상 수행의 가이드이자, 명상 에세이이다. 저자 특유의 유쾌하고 명쾌한 문체 속에 행불사문으로서의 지난 공부 결과를 아낌없이 녹여냄으로써 ‘참 나’로 사는 길을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깨닫도록 하였다.

무엇을 선택해도 좋다. 단계를 삼아 나아가도 좋다. 저자가 제시한 처방의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기가 영 어렵다면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선택해 삶의 방향으로 삼아도 좋다. 그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나아가든 ‘월호 스님 표 명상’엔 가상의 현실을 진짜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헤드셋을 벗고,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묘책이 담겨 있다.

책속으로 위로

모든 것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진실은 ‘바로 지금 여기서 이것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도 계속 흘러가므로 과거와 미래는 물론 현재 또한 금방 가상현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_ 25쪽

생사는 한 조각 뜬구름의 일어남, 사라짐과 같다. 온 바도 없고, 간 곳도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이 있을 뿐 고정된 실체는 없다.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本空)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 부처가 보고 듣고 앉고 눕는다. 몸과 마음은 아바타요, 보고 듣는 이가 진짜 나다. 그렇다고 보고 듣는 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보고 들음이 보고 듣는 이다. _ 27쪽

몸과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은 다르다. 오늘의 몸과 내일의 몸도 다르다. 아침・저녁의 몸이 다르다. 또한 어제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오늘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내일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이 몸과 마음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 변화하는 현상만 있을 뿐! 결국 몸과 마음은 아바타인 것이다.

그러니 불안한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다. 아바타의 마음이다. 아바타의 마음이 불안하다고 관찰하는 순간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관찰자인 성품은 공(空)하다. 크고 밝고 충만하다. 달이 항상 보름달인 것처럼. _ 28~29쪽

사람들은 대부분 가상현실에 묶여 살고 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과 몸・마음이 위치한 공간에 묶여 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는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다. 모두가 가상현실인 것이다. 또한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변한다. 고정된 실체가 없고 변화하는 현상만 있는 아바타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나가 버린 과거를 근심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에 기꺼이 머무르고자 한다. 스스로 묶여 있는 것이다. _ 31쪽

몸과 마음은 물거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다. 몸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상이 있을 뿐 고정된 실체는 없다. 한마디로 아바타인 것이다. 이렇게 관찰해야 죽음의 왕도 그를 보지 못한다. _ 36쪽

몸과 마음은 아바타다. 수미산 또한 명칭이 있을 뿐 고정된 실체는 없다. 우주가 온통 변하는데, 그 안에 있는 어떤 존재인들 변하지 않겠는가? 변화하는 현상뿐인 아바타에게는 실체가 없는데, 허물을 따져서 어쩌겠는가? (…) 육도윤회(六道輪廻) 또한 모두 가상현실 속에서 배회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항상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 진짜 현실을 사는 것이다. _ 43쪽

산도 있고 물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것은 있고, 저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이다. 명칭이 있을 뿐 고정된 실체는 없다. 상대적인 유와 무를 초월한 ‘이것뿐!’이다. _ 51쪽

탐・진・치 삼독(三毒)을 아바타에게 맡겨 버리면 삼독에서 분리된다. 비로소 해탈의 맛을 알아가게 되며 지혜가 발생한다. ‘마하반야바라밀’이다. 크고 밝고 충만해지니 온 우주가 내가 된다. 온 우주가 ‘견문각지’할 뿐, ‘견문각지’하는 자는 없다.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껴지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만 할 뿐! 거기에 ‘그대’는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_ 107쪽

몸이나 음성은 진정한 여래가 아니다. 여래의 아바타일 뿐! 결국 물질적 존재이든 정신적 존재이든, 모든 존재는 ‘아바타’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고, 변화하는 현상만 있다. 이를 직시하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다. _ 111쪽

‘일천 강에 비친 달’은 아바타요, ‘청천 하늘의 달’은 관찰자다. 관찰자는 크고 밝고 충만하다. 사바세계에서 살다 보니 작아지고, 어두워지고, 결핍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것은 착시현상이다. 달은 본래 보름달인 것처럼 관찰자는 항상 크고 밝고 충만하다. 초승달이나 그믐달로 보이는 것이 착시현상인 것처럼 스스로 중생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바타에서 관찰자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마하반야바라밀’을 입으로 염하고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 _ 112쪽

결국 이 세상은 메타버스이며, 인생은 한바탕 아바타 게임에 불과하다. 그 속에서 아바타로 잘 먹고 잘사는 것은 궁극적으로 부질없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길몽이든 악몽이든 꿈은 꿈일 뿐! 좋은 꿈을 꾸려 말고, 꿈에서 깨야 한다는 것이다. _ 116쪽

운전 중 갑자기 신호도 없이 끼어드는 자동차가 있으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화가 북받쳐 올라온다. 화는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업(業)이 된다. 하지만 바라보면 가라앉는다. ‘아바타가 화가 나려 하는구나.’, ‘아바타가 화가 올라오는구나.’, ‘아바타가 화를 내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몇 번 반복하면 서서히 가라앉게 된다. 화는 아바타가 내는 것이고, 정작 나는 이를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화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_ 188~189쪽

명상법을 중국에 최초로 전한 달마 대사는 명상의 주요한 마음가짐으로 ‘무소구행(無所求行)’을 강조했다. ‘구하는 바 없음’이야말로 참다운 명상의 전제 조건이다. 행복을 바라지 않음은 물론, 불행

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과거세의 업을 갚는다 생각하고, 좋은 일이 생겨도 그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갈 뿐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떤 일이건 복 닦기와 도 닦기의 계기로 삼을 뿐이다. _ 125쪽

아바타의 잘잘못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서는 안 된다. 이는 운전자가 비 오는 날 창문의 윈도우 브러시에 시선을 맞추는 것과 같아서 이러한 경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윈도우 브러시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전방을 주시해야 하듯 관찰자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이때 윈도우 브러시는 오히려 길을 밝혀 주는 역할을 한다. 번뇌를 통하여 관찰자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_ 131쪽

『금강경』 사구게의 핵심은 결국 ‘모든 존재가 마치 꿈과 같고 아바타(幻)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하라’는 것이다. 또한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몸과 마음 아바타(空)라 관찰하고 모든 고통 벗어났다’고 한다. 결국 거울 보듯, 영화 보듯,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면해서 관찰하되, 아바타로 보는 것이 해탈의 시작이다. _ 147쪽

깨달음이란 무언가를 새롭게 얻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얻으면 그것은 ‘얻는’ 것이지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얻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성, 불성, 공성(空性)을 이미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또 얻는가? 얻을 수가 없다. 왜 그런가? 온 세상에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_ 149쪽

마하는 큼이요, 반야는 밝음이요, 바라밀은 충만함이다. 나와 남을 나누지 않음이 진정한 ‘큼’이다. 인과를 굳게 믿는 것이 진정한 ‘밝음’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충만함’이다. _ 153쪽

불교적 마음 치유의 대증요법은 ‘대면 관찰’이며, 근원치유는 ‘마하반야바라밀’이다. 대면 관찰을 통해 무아를 연습하여 근심 걱정을 완화시킨다. 그리고 ‘마하반야바라밀’을 통해 무아를 넘어선 대아(大我)로 나아가 밝은 미래를 그리고 창조하는 것이다. _ 157쪽

달은 항상 보름달이다. 다만 착시현상으로 반달이나 그믐달로 보일 뿐이다. 또한 태양은 뜨고 지지 않는다. 지구가 돌고 있을 뿐! 하지만 사람들은 일출과 일몰을 보며 태양이 뜨고 진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착시현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몸과 마음은 생멸하는 아바타일 뿐 관찰자인 성품을 ‘참 나’라고 하는 것이다. _ 165쪽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다. 재앙을 돌이켜 복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번뇌를 굴려 해탈의 계기로 삼는 것, 즉 전(轉)번뇌 위(爲)해탈이 지혜로운 삶이다. 번뇌는 끊어야 할 것이 아니라 활용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_ 169쪽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일 년에 한 번 대보름날을 기다려서 소원을 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먼저 웃음으로써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행복의 창조자만 가능하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나날이 좋은 날인 것이다. _ 179쪽

참선이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수행임을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원칙일 뿐이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시 일정한 방법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곧 몸의 좌선이며 마음의 화두 챙김(看話)인 것이다. _ 213쪽

자성, 즉 우리 모두의 본 마음・참 나는 본래 완전하므로 더 이상 그릇됨만 없으면 자성의 계(戒)요, 더 이상 산란함만 없으면 자성의 정(定)이요, 더 이상 어리석음만 없으면 자성의 혜(慧)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행을 해나간다거나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하는 것도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 무엇도 추구할 필요 없이 다만 5분 앉아 있으면 5분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_ 215쪽

바로 ‘지금’을 떠나 마음의 평화 또는 육체적 안식을 구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성취할 수 없다면 어느 때를 기다려 성취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후회, 설움 등 일체를 놓아 버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걱정 따위도 떨쳐 버린 채, 오직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다만 좌선에 몰두할 뿐이다. _ 216쪽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道不屬修). 닦아서 터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어졌으니 다시 부서질 것이다. 즉 인과에 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닦지 않는다면 그저 범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도를 깨칠 수 있는 것일까? 마조 스님이 설했다.

“자성은 본래 완전하니 선이다, 악이다 하는 데 막히지 않기만 하면 도 닦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_ 218쪽

평상심이란 평상시의 마음을 뜻한다. 평상시의 우리 마음은 안팎의 역순경계(逆順境界)에 흔들리고 있는 듯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평온을 기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경계에 부딪혀 홀연 분간하고 선택할 따름인 것이다. _ 219쪽

명상과 참선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내부로 돌려 자신을 돌이켜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찰의 대상에 차이가 있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참선은 관찰하는 자를 관찰하는 것이다. _ 220쪽

달마 대사에게 혜가가 말했다.

“저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 주십시오(我心未寧 乞師與安).”

대사가 말했다.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 주리라(將心來 與汝安).”

혜가가 대답했다.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얻을 수 없습니다(覓心了 不可得).”

대사가 다시 말했다.

“네 마음을 벌써 편안케 해 주었느니라(與汝安心竟).” _ 223쪽

비유컨대 다른 명상이 아날로그식이라면 참선은 디지털식이다. 가령 5시라는 시간을 가리키기 위해서 반드시 3시와 4시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날로그식이라면 디지털식은 곧바로 5시를 나타내 줄 수 있다. 항상 바로 지금 여기에서 완전한 시간을 가리킬 수 있는 것이다. _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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