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부적과 현대미술_경남도립미술관장 김종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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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부적과 현대미술_경남도립미술관장 김종원 작가
  • 송희원
  • 승인 2023.01.2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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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예술의 극치인 美가 되다
다천(茶泉) 김종원 작가는 오랜 시간 국내외에서 서예가로 활동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분리되지 않는 ‘서화동체(書畵同體)’ 이론을 추구하며 2015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대미술 분야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종원 작가는 인류 태초의 문자 형상을 가장 현대적인 회화법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전위적이다. 거기에 담긴 그의 작품 철학 역시 그렇다. 

2019년부터 경남도립미술관장을 맡은 김종원 작가는 “서예가에서 출발해 회화 작가로 관장직을 맡은 사례가 한국에서 매우 드문 편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성을 확보한 존재임에도 현대미술에서 외면했던 분야가 서예”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예를 기반으로 한 현대회화 작품 활동, 한문학·종교·철학·미학 연구, 관장으로서의 행정직까지 수행하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한없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국문자문명연구회 연구실이자 수많은 작품이 태동하고 산고(産故)된 그의 작업실에서 “글·신神·들린” 그를 만났다. 

〈통영신명(通靈神明) - 태극변상(太極變相)〉, 종이에 먹과 주사, 211×148.5cm, 2021
〈통영신명 - 문자와 태극〉, 종이에 먹과 주사, 210×148cm, 2020

 

영성을 잃어버린 현대의 서예

1954년생인 김종원 작가는 경남 창원 마산고 재학 시절, 소암 현중화 선생의 작품을 보고 서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스승을 따라 제주도로 유학을 떠나 제주대에서 서예를 수학했다. 이후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문자학을 공부했다. 김종원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반림동 인근 다호리는 삼한시대 때 사용했던 붓이 출토된 곳이다. 1988년 출토 당시 문자가 함께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고고학계는 이 붓을 기원전 1세기경 한반도에서 문자가 쓰였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로 봤다. 한반도의 문자 기록의 역사가 2,100년 전의 붓의 발견으로 수백 년 앞당겨지는 순간이었다. 한국문자문명연구회장으로 문자 연구에 매진하며 서예가의 길을 걸었던 김종원 작가와 잘 어울리는 곳이다. 

오랜 시간 서예가로서 붓을 들던 그가 현대회화의 장르로 그 활동 반경을 넓힌 때는 언제부터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오랜 시간 문자를 연구하며 정립하고 추구한 이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김종원 작가는 오랫동안 문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 이전의 문제와 언어 이후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군대에서 제대한 28살 무렵부터 오랜 기간 중국 고대 문자인 갑골문자(甲骨文字)를 연구하며 문자가 가지는 상형성(象形性)에 주목했다. 한자는 그 하나하나가 고대 사회의 역사적 기록물이자 신성(神性) 문자였다. 

“상고시대 갑골문자의 형상은 문자에 소리(언어)가 들어오기 전의 모습으로, 자연의 영성을 담고 있습니다. 고대에 문자를 만든 사람이 어떤 역사적인 사건과 사고를 보고 문자로 형상화한 것들이죠. 그 글자에 어떤 의미를 축약해서 넣을 때 나름대로 그걸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이게 글자 한 자 한 자의 아우라를 만든 거고요. 제 작업은 이 고대 상형 문자가 가지고 있는 신성, 즉 ‘성령(性靈)’에 초점을 맞춥니다.”

‘天’이라는 형태의 글자는 ‘하늘’이라는 뜻으로 ‘천’이라는 소리 언어로 읽는다. 일반적으로 언어가 먼저 나왔고 이를 문자화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 둘은 관계가 없다고 김종원 작가는 설명한다. 상형적인 형상(문자)에 어느 날 ‘음’이 들어가고 ‘뜻’이 들어가서 동거하게 된 것뿐이란다. 한 글자가 여러 개의 뜻을 가지거나, 정반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는 글자가 그러한 방증이다. 김 작가는 이러한 문자의 3가지 요소인 ‘소리’, ‘형태’, ‘의미’에 대한 서예 미학적 표현을 연구하다 보니, 현대의 서예가 고대 문자가 가졌던 영성을 잃어버렸다고 느끼게 됐다. 그때부터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오며 현대회화의 길로 들어섰다. 

“글씨 잘 쓰기가 곧 서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생각대로라면 서예가는 아주 도식적인 기능장에 불과한 거예요. ‘天’ 자를 초서로 쓰든 해서로 쓰든 행서로 쓰든 글자가 내용만 전달하는 경우라면 활자만 가지고도 충분히 전달되는데 굳이 그걸 붓을 들고 할 이유가 없죠. ‘天’이라는 글자를 쓴 서예가 개인의 생각은 어디 가버리냐 이 말이죠. 그래서 서예는 내용을 새롭게 번역 또는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서예가는 일종의 번역가다’라고요. 이 시대의 서예가들과는 다른 길을 가야 했던 거죠.” 

그때부터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이해, 감동, 심상 등을 붓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글자를 구성하는 점과 획, 즉 필획(筆劃)이 간략화되고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된 독특한 그의 작품 세계가 펼쳐졌다. 그의 내면을 표현한 해체된 문자들은 현대회화처럼 전위적이었다. 예술의전당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김종원의 작품은 주문(呪文)에 걸린, 신들린 필획으로 텍스트와 그 이전의 본래 의미를 우리시대 미감으로 번역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 여느 작가와 다르다”며 그의 작품을 ‘제3의 추상언어 발명’이라고 칭했다. 

“결국에는 서예적인 요소예요. 서예는 어쨌든 일필휘지 한 획으로 모든 것을 끝내야 하니까. 어떻게 보면 선(禪)의 정신하고 거의 같죠. 계속 덧칠하는 것은 서양화적인 요소이기도 해요.”

2015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문자학, 종교학, 동·서양의 철학과 미학 등을 공부하며 작품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이론, 논리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의 책상엔 한중일 미학사부터 『논어』, 『주역』, 서양의 현대철학서가 고서들과 함께 쌓여 있었다. 예순이 훌쩍 넘은 지금도 학문적 탐구와 사유의 경주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문문자자(文紋字孶) - 반야심경(般若心經)〉, 종이에 먹, 90×40cm, 2010
〈문문자자 – 금강경 그 서적 변상〉, 
종이에 먹, 225×160cm, 2014, 미국 LA 카운티미술관 소장
『금강경』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담았다. 텍스트 자체가 아닌, 텍스트에 대한 작가 개인의 사유와 심상을 몇천 개의 형상들로 표현했다.  
〈차운(次韻) 최치원 가야산 독서당(讀書堂)〉, 
종이에 먹과 주사, 210×150cm, 2009
최치원의 시 <가야산 독서당>을 읽은 뒤 지은, 작가의 시를 형상화한 작품.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비의 윗부분에 새겨진 최치원의 글자의 자형에서 영감을 받었다. 

 

동양의 서화동체(書畵同體) 사상

김종원 작가의 ‘서적 변상(書的 變相)’ 연작은 『반야심경』, 『금강경』을 비롯한 불교 경전부터 장자의 철학인 ‘소요유(逍遙遊)’,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까지 형상화해 낸다. 경전과 다양한 고전을 읽고 떠오르는 영감과 생각, 감정들을 자동기술법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다. 말 그대로 텍스트의 ‘변상(變相)’이다. 

“『금강경』을 읽고, 내용에 대한 나의 해석을 나타낸 작품이에요. 일종의 변상도죠.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글자로 옮기는 게 아닌, 다른 세계로 가는 거죠. 그럼 이때부터 이건 새로운 미술이자 새로운 세계가 돼요.” 

문자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읽을 수 없다. 읽히지 않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읽어내고 숭고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작가의 사유와 느낌을 문자 조형으로 재해석해낸 그의 작품은 그림[畵·화]일까? 아니면 서예[書·서]일까? 

이를 김종원 작가는 “서화동체(書畵同體)” 사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정된 기호의 뜻을 담은 것을 문자로 생각하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그림으로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서예의 선을 긋는 행위[書]는 동시에 그리는 행위[畵]이기도 하다. 즉 이미지와 텍스트는 하나다. 조형과 내용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같은 이유로 그는 “알타이 암각‘화(畵)’는 동시에 암각‘문(文)’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서(書)’와 ‘화(畵)’ 둘이 분리돼 있지만 원래 출발은 같은 선상에 있었어요. 인간이 최초로 어떤 사물을 보고 어떤 도구로 선을 그었을 적에 이게 그림이냐 글씨냐는 거죠. 선과 획으로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전달할 수 있어요. 인간은 그저 본래적인 행위를 할 따름입니다. 서화동체, 여기에 서예의 새로운 의의가 있죠. 서는 획(劃)의 미(美)를 극대화하여 자형(字形)과 의미의 지배를 벗고 언어 이전의 생각, 그 자체 속으로 직접 교통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언어에 영성이 생기면 시서화 일체를 이룹니다. 그게 바로 동양화의 정수, 기운생동(氣韻生動)이지요. 동양이 서양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미학적인 개념이 바로 시서화 일체입니다. 이건 서양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합니다.”

 

인생은 미(美)를 추구하는 여정

김종원 작가는 2015년 《CHAOSMOSSTROKE – 글·신·神·들·다》 전시에서 〈혼돈(混沌)〉·〈문자성령(文字性靈)〉·〈문문자자(文紋字孶)〉·〈통영신명(通靈神明)〉 연작을 선보였다. 하나같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주문을 거는 듯한 강렬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통영신명〉 연작은 악귀, 잡신을 쫓거나 복을 가져다준다는 주술적 도구인 부적을 연상케 한다. 부적에 쓰는 붉은 안료인 주사(朱沙)를 사용해 그린 이 작품에는 ‘고대적인 영성을 가지고 현대 시대의 아픈 부분을 치유해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그가 신들린 듯 화폭에 담아낸 강렬한 형상과 색들, 즉 그림(혹은 글자)들은 서예와 현대회화의 경계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묵(墨)으로 표현된 혼돈의 우주(카오스) 속에서 기운생동하는 붉은색의 원초적인 문자들. 거기에는 신성과 성령이 깃든 듯하다. 

“최초의 부적은 샤먼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문자가 부적화되거든요. 원하는 내용을 고대 문자를 갖다가 막 조합하면서 뭔가 신비스럽게 만든 거죠. 부적을 보면 구조가 딱 문자 구조와 비슷하게 돼 있습니다. 부적이란 게 귀신으로 하여금 ‘인간이 원하는 내용을 해라’라고 하는 일종의 명령서입니다. 이게 문자 부적입니다. 휘어진 선들이 많으니까 그린다고 하는데, 사실 부적은 쓰는 거지 그리는 게 아닙니다.” 

〈통영신명 – 용화세계(龍華世界)〉, 종이에 먹과 주사, 210×148cm, 2021
부적을 주제로 한 연작 중 하나. 검정 바탕에 주사(朱沙)로 형상을 그렸다. 상서로운 동물인 용과 호랑이가 결합된 형상과 문자들을 조합해 주술적인 느낌을 준다.
〈핏빛 달을 지키는 부엉이〉, 종이에 먹과 주사, 210×150cm, 2018
붉은 달 형상 아래의 부엉이 눈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듯하다. 부엉이 주둥이 밑으로 부적과 같은 신비한 문자들이 나열됐다. 

〈통영신명〉 연작은 부적을 주제로 했지만, 주술적인 부적과는 다르다. 그의 그림에서 우리가 붙잡는 것은 귀신을 물리치는 액막이도, 행운을 가져다주는 기복적인 신앙도 아니다. 김종원 작가는 “나의 부적 작품은 뭘 비는 게 아닌, 내가 가진 미적인 감정을 집어넣는 것”이라며 “오늘날 사회가 이성화(理性化)된 나머지 주술적 주문이 사라졌는데, 서화적 표현에 있어서 주술적 주문이 가지고 있던 혼돈적 의미의 깊이를 되살리는 곳에서 현대의 서화가 시대 예술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김종원 작가는 “예술의 극치가 바로 ‘미(美)’”라 말한다. 인생에서 온갖 실수를 하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미적인 존재로서 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선(善)의 극치가 바로 ‘미’”라고. 

“우리가 출근할 적에 넥타이를 이리저리 매보거나, 밥상 위 숟가락을 여기에 놓을까 저기에 놓을까 고민하는 것도 다 미적인 행위예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름답게 죽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미(美)’거든요. 사실 선(善)의 극치가 미예요. 미와 선은 다른 게 아니에요. 다만, 선한 행동은 의지적으로 하는 건데 미는 감성적으로 하는 거거든요. 의지적인 것을 초월하면 미가 돼요. 어떻게 보면 선(禪)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실천적인 철학이자 미적인 행동이죠. 제가 서예를 공부한 거는 미가 뭔지를 알기 위해서였어요. 미술관 관장이 된 것도 미를 가지고 세상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해 보기 위함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미를 향해서 가고 있는 거예요.”  

“서(書)는 획(劃)의 미(美)를 극대화하여 자형(字形)과 의미의 지배를 벗고 언어 이전의 생각, 그 자체 속으로 직접 교통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언어에 영성이 생기면 시서화 일체를 이룹니다.” 

 

다천(茶泉) 김종원 작가 

현재 작품 활동과 함께 경남도립미술관 관장(2019~), 한국문자문명연구회장(2009~)을 지내고 있다. 일본 태현회(太玄會) 심사위원, 경남서예가협회장, 창원대·경상대에서 한문학과·미술학과 강사 등을 역임했다. 

 

● 주요 참여 전시

예술의전당 《풍류전》, 세화미술관 《전통이 미래다》, 《아트링크》 개인전·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채색화 - 생의 찬미》, 송원갤러리 《김종원 미美의 역정》 등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열었다.  

2014년 중국 선전에서 개최된 《字控(자공) 한자예술대전》에 한국 대표로 초청, 2021년에는 미국 LA 카운티미술관 《Beyond Line 한국 서예전》에 『금강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문문자자 금강경 그 서적 변상〉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벨기에EU의회 한국문화의날기념·영국런던한국문화원 G20런던정상회담기념 한글퍼포먼스전에 초청되는 한편, 서예에 관한 많은 연구 저술 및 강연을 했다.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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