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입춘과 삼재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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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 입춘과 삼재풀이
  • 구미래
  • 승인 2023.01.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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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삼재팔난三災八難과 생명을 위한 기도
매와 호랑이가 그려진 삼재부적,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소장<br>
매와 호랑이가 그려진 삼재부적,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소장

입춘의 의미와 세시풍속

입춘(立春)은 봄이 시작되는 날이자 24절기 맨 처음에 오니, 또 하나의 설이나 다를 바 없다. 옛사람들은 시작의 의미를 나타낼 때 ‘서다[立]·세우다[建]’는 말로 표현하기를 즐겼다. 이에 사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입하·입추·입동에도 ‘立(설 립)’ 자를 쓰면서, 봄기운이 땅에서 일어선다는 뜻을 담았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말처럼, 봄을 알리는 절기라 해도 양력 2월 4일은 아직 동장군이 물러나지 않은 시기다. 그러나 언 땅과 마른 나뭇가지에 새 기운이 움트며 온 자연이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면서, ‘이제 그만 일어서라’고 말해준다. 한자 ‘立’이 두 팔을 벌린 채 땅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이듯, 앉거나 누워서는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으니 겨우내 움츠린 온몸을 활짝 펴라는 신호다. 

입춘과 함께 농부들의 손길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고 두엄을 마련하는가 하면, 논밭의 두렁을 태워 병해충을 없애면서 본격적인 농사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농사에는 비가 중요하니 입춘에 비가 오면 만물을 소생시킨다며 반겼고, 그 물을 받았다가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까지 생겨났다. 

농사와 관련해 입춘 날 흙이나 나무로 소 모형을 만들어 쓰는 풍습이 있다. 토우(土牛)·목우(木牛)를 문밖에 내놓아 겨울 추위와 나쁜 기운을 떠나보내고,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렸다. 관청에서부터 시작해 마을 곳곳으로 목우를 끌고 돌아다니는가 하면, 제주도 관청에서는 목우에 제사를 지낸 다음 밭을 갈아 오곡 씨를 뿌리는 입춘굿을 행했다. 모두 한 해 농사의 풍작을 바라는 뜻이다. 

집집이 입춘 날씨나 곡식을 보면서 그해의 풍작을 가늠하는 농점(農占)을 쳤는데, 이는 설부터 대보름까지 정초에 성행한 풍습이다. 또한 입춘날 망치질을 금하거나, 이날 집 안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면 재물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고 여기는 풍습, 새알심을 넣지 않은 팥죽을 끓여 먹고 집 안 곳곳에 뿌리는 풍습 등으로 한 해의 시작을 조심스레 맞이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가장 보편적인 풍습으로 입춘방(立春榜)과 입춘부(立春符)를 꼽을 수 있다. 입춘방은 대문과 문설주에 좋은 글귀를 써 붙이는 것으로, ‘입춘대길(立春大吉)·건양다경(建陽多慶)’처럼 크게 길하며 밝은 기운과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라는 풍습이다. 입춘부는 삿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부적으로, 나라의 관상감(觀象監)에서도 붉은 주사(朱砂)로 쓴 벽사문(辟邪文)을 대궐의 문설주에 붙였다. 새해의 첫 절기이자 봄을 맞는 입춘 날,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됨이 가득하길 바라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팔왕일(八王日)’이라 하여 인간사를 맡은 왕신(王神)이 교대하는 날로 여겼다. 팔왕일은 봄의 입춘과 춘분, 여름의 입하와 하지, 가을의 입추와 추분, 겨울의 입동과 동지의 여덟 절기를 말한다. 사계절의 시작과 각 계절이 최고점에 이른 날들로, 이때는 하늘과 땅의 음양(陰陽)이 서로 바뀌니 거대하고 오묘한 자연의 질서를 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특히 입춘과 동지를 명절처럼 중요하게 여긴다.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 또한 다음 날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져 ‘작은 설’이라 불렀듯이, 두 절기는 ‘시작과 희망’이라는 공통의 의미를 지녔다. 동지가 하늘의 기운을 중심으로 본 것이라면, 입춘은 그러한 기운이 땅에 미쳐 생명의 온기가 싹트는 시절인 셈이다. 불자들도 이날 절을 찾아 불공을 올리면서, 새해를 경건하게 맞이하고 원만 무탈하기를 기원해온 역사가 깊다. 

조선 후기 삼재부적,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소장

 

민속으로 본 삼재와 삼재풀이

입춘에는 삼재풀이를 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삼재(三災)는 도교에서 비롯된 관념으로, 태어난 해에 따라 주기적으로 겪는 세 가지 나쁜 운수를 뜻한다. 도교에서는 이를 수재(水災)·화재(火災)·풍재(風災)라 보는데,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액운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액운을 막아내기 위한 다양한 처방을 삼재풀이라 부른다.

삼재는 9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와 3년간 머무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사(巳)·유(酉)·축(丑)년에 태어난 이는 해(亥)·자(子)·축이 되는 해에 삼재가 들고, 신(申)·자·진(辰)년생은 인(寅)·묘(卯)·진이 되는 해, 해·묘·미(未)년생은 사·오(午)·미가 되는 해, 인·오·술(戌)년생은 신·유·술이 되는 해에 삼재가 든다. 첫해는 삼재가 들어오니 ‘들삼재’라 하고, 둘째 해는 머무르며 누워 있다 하여 ‘눌삼재’, 셋째 해는 나가는 해라서 ‘날삼재’라 부른다. 

고려속요인 〈처용가〉에 ‘삼재’라는 용어가 나오고 용주사의 고려 석탑에서 삼재 부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삼재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삼재에 해당하는 이는 집 문설주에 매 세 마리를 그려서 붙인다. 삼재에 든 3년간은 언동을 조심하고 모든 일에 삼가며 꺼리는 일이 많다”고 하여, 조선시대에는 삼재 개념이 널리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삼재가 들었을 때 근신하는 한편, 이를 막아내기 위한 민속적 대응 또한 다양하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문에 붙여 두는 것인데, 주로 머리가 셋 달린 삼두매[三頭鷹・삼두응]나 호랑이 등을 그려서 썼다. 입춘 부적은 나라에서부터 서민들까지 중요한 날을 맞는 전통 풍습이었고, 매년 새것으로 바꾸면서 이전 해의 것은 불에 태웠다. 

액운을 다른 곳으로 옮겨 보내는 대수대명(代數代命)의 풍습도 있다. 삼재 든 이의 옷을 태워서 그 재를 삼거리에 묻거나, 짚으로 허재비(허수아비)를 만들어 ‘제웅치기’를 하기도 한다. 허재비 안에 삼재 든 이의 이름과 사주를 쓴 종이, 동전, 쌀, 소금 등을 넣어 길가·내·다리 등에 버리기도 하고 땅에 묻거나 태우는 방식이다. 새해의 첫 범 날[寅日・인일]·말 날[午日・오일]에 삼거리에 밥 세 그릇과 과실을 차려놓고 빌거나, 보다 적극적 양법(良法)으로 무당을 찾아가 삼재 굿을 하는 이도 있다. 역학에서는 삼재의 액운을 ‘살(殺)’이라 하여, 격렬한 변화수(變化數)를 동반하는 것이라 본다. 살이 들어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지만, 삶의 역동성과 변화의 기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삼재가 드는 해라고 하여 나쁘게만 보거나 위축돼 살아가는 이는 사실상 없다. “삼재는 들었는지 모르게 지나가면 제일 좋다”는 말이 있듯이, 삼재와 무관하게 시절 인연과 마음의 작용이 만났을 때 나쁜 운세도 얼마든지 ‘복삼재(福三災)’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재부 목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불자들의 입춘기도와 삼재풀이

입춘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을 보면, 입춘이야말로 종교적으로 체감하는 새해의 구실을 하는 시기임을 실감하게 된다. 미지의 해를 앞두고 신적 존재에 기대어 벽사기복(辟邪祈福)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심리고, 불자들의 이러한 심성은 부처님을 향하게 마련이다. 특히 삼재는 몰래 지나가면 제일 좋지만, 집안에 누군가 삼재에 든 이가 있음을 알게 되면 처방이 따라야 안심이 되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다. 

입춘 날 사찰을 찾는 불자들 또한 이러한 바람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라, 사찰에서도 삼재소멸 기도를 올려주고 입춘 부적에 해당하는 다라니주를 나눈다. 한 해의 신수(身數)를 부처님 위신력에 의지함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종교의 중요한 역할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다고 볼 때, 부처님이 처방하는 부적이야말로 최상의 심리적 안정 장치인 셈이다. 사실 세상의 어떤 글씨나 그림도 그 자체로 인간에게 복과 평안을 주는 것은 없다. 기도를 올리며 삼재부(三災符)를 받아 지니는 이의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고, 또 그 속에 삼보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기에 스스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과 정성스러운 과정이 모두 생략된 채, 가게에서 무심히 사서 쓰는 부적과는 견주지 못할 차이를 지닌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 또한 『부모은중경』에 나오는 다라니를 백성들에게 나눠주며, 입춘 날 집에 붙여 재앙을 물리치도록 했다. 다라니에는 인간의 신심에 호응하는 불법의 위력이 담겨 있으니 단순한 부적에 비할 바 없다고 본 것이다. 

궁극적으로 불교에서는 ‘선행을 가장 큰 부적’이라 보고 있다. 부적이 지닌 심리적 처방을 넘어서서, ‘최고의 벽사기복은 최선의 자비’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듯, 나쁜 운수를 부적으로 막아 방어만 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공격해야 더 큰 효험이 있지 않겠는가. 악을 물리치는 가장 큰 공격력은 선을 실천하는 보살행이니, 부적을 쓰는 것이 소극적인 삼재풀이라면 선행으로 복을 짓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삼재풀이다. 

입춘 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 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 하였는가.

〈상여소리〉에 담긴 내용처럼 입춘 날 공덕을 짓는 풍습 또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 민족은 선행이야말로 불교와 민간의 구분 없이 최고의 삼재 액땜이라 여겨온 것이다. 남을 위해 행한 일이 나를 위한 복이 되고, 나를 향해 닦은 신행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중생을 위한 복으로 작용한다. 입춘기도는 그저 가피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 해를 어떤 원력으로 살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더욱 크다. 봄기운이 언 땅과 마른 나뭇가지에 생명을 불어넣듯, 우리의 입춘기도 또한 삼재팔난(三災八難)에 처한 모든 생명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겠다.  

조선 후기의 입춘첩(立春帖), 위패 형태의 연화대 위로 용(龍)을, 아래에 귀(龜)의 문양을 정밀하게 새겼다. 고양 원각사 소장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이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회·문화창달위원회·불교문화진흥위원회 위원이다. 불교민속 전공으로 안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존엄한 죽음의 문화사』, 『종교와 의례공간』(공저), 『공양간의 수행자들』 등이 있다.

 

(*월간불광 580호 <입춘, 삼재 그리고 부적>의 특집 중 무료로 공개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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