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서 출발한 어느 별은 이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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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서 출발한 어느 별은 이 책을 썼습니다.
  • 불광미디어
  • 승인 2022.11.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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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꿰뚫다

등현 지음 | 528쪽 | 25,000원

 

저는 꽤 오랫동안 불교계 언저리를 맴돌며 입에 풀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계를 받은 적도 없고 법명도 없습니다. 불자도 아니면서 불교 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자니 뭔가 어색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스님들을 만날 때 그렇습니다. 그분들은 저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습니다. <불교를 꿰뚫다>의 저자인 등현 스님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스님을 처음으로 만나 뵙게 된 것은 작년 여름 고운사에서였습니다. 그때도 저는 스님들에 대한 거리감을 이기지 못해 사무적이고 냉랭한 태도로 스님을 대했습니다.

이후 스님과의 작업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책의 방향과 우리 편집부가 생각하는 책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스님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이것저것 공부하고 조사해서 상세한 기획안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스님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사실 애써 기획안을 만들어 봤자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 상대가 ‘스님’이라는 사실이 특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역시 스님들은 대하기 어렵다는 나름대로의 지론(?)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잘 다듬어진 본문에 추천사, 인사말, 저자 후기까지 붙은 완전한 원고가 도착했습니다. 원고를 살펴보다가 유독 저자 후기의 첫 구절에 눈길이 갔습니다.

내가 삶과 죽음과 같은 철학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홉 살 즈음이었다. …… 나에게 그런 길을 걷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나는 사람들이 코와 귀와 입에 솜을 틀어막은 아버지를 관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막았다. 그리고 사흘을 울었다.

과거에 스님은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홉 살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울면서 아버지의 입관을 막았고, 그 이후로도 사흘을 울었습니다. 그 아이는 커서까지 죽음에 대해 고민하다가 출가를 했고, 많은 공부를 했으며, 결국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글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았을 때 저는 스님을 원망했습니다.

저는 스님의 이면에 울고 있는 아홉 살 아이가 있으리라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울고 있는 아홉 살 아이가 제 앞에 있다면 저는 무엇을 할까요? 아마 같이 닭싸움을 하고, 묵찌빠를 하고, 꽃반지를 만들어 주고, 놀이동산에 가서 놀고, 핫도그가 먹고 싶다면 핫도그를 사 줄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아이가 슬픔을 잊을 수 있다면 이것저것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아이의 슬픔이 사라질 리는 없지만, 그 슬픔 속으로 영영 가라앉아 버리지는 않도록 손을 내밀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 아이는 슬픔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오늘날 한 권의 책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언젠가 읽었던 러시아 시인 예프투센코의 시 구절이 생각납니다.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란 없다. 그들의 운명은 별들의 역사와 같지.” 우리들 모두의 삶이 저마다 별의 역사인 것처럼, 스님의 삶도 별의 역사일 것입니다. 아홉 살 아이의 슬픔에서 출발한 어느 별의 여정은 이제 한 권의 책으로 현현했습니다. 인쇄와 제본을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한 책을 만져 보며, 저는 제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 않은 것도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편집자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느 별이 흘러간 유구한 여정의 결과물을 대할 때에는 겸허함 또한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스님들에 대해 거리감을 느낄 것입니다. 다만 등현 스님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약간은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울고 있는 아홉 살 아이에게 제가 해 주지 못한 것들, 그러니까 닭싸움, 묵찌빠, 꽃반지, 놀이동산, 핫도그 같은 것들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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