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B 20차 회의_Ⅱ] 부처님처럼 전쟁 한복판 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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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B 20차 회의_Ⅱ] 부처님처럼 전쟁 한복판 앉기
  • 최호승
  • 승인 2022.11.0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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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참여불교연대에서 10월 23일부터 30일까지 한국에서 제20차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2003년 이후 19년 만에 두 번째로 한국에서 열리는 컨퍼런스 과정과 결과를 두 차례 연재한다. 공동 주최였던 2003년과 달리 이번엔 정토회에서 단독 주최했다. <편집자 주>

패널로 참여한 도법 스님이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패널로 참여한 도법 스님이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조계종 전 화쟁위원장이자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인 도법 스님, 스리랑카 와폴라 라훌라 불교연구소의 전무 이사 갈칸데 담마난다 테라 스님, 호주 멜버른의 불교 평화펠로우십지부 설립자 질 지린 제임슨, 인도네시아 불교 학생 연합의 고문 윈토모 챤드라 등 패널들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비폭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 과연 평화를 위한 평화로운 조율 과정은 얼마나 필요한가?”(인도 참가자)

“분열된 세계에서 중도를 지키기가 어렵다.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소수자 편에 서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중도를 택하면서 양쪽의 중재가 가능할까? 부처님이 전쟁 속 한가운데 앉으셨는데, 우리는 과연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스리랑카 참가자)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분열된 세계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한데, 오랜 기간 성 정체성을 두고 남성과 여성으로만 분류했다. *LGBT 등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는 성이 다양하다.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고, 그들이 포용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떻게 할 수 있나?”(태국 참가자)

“물리적인 폭력 외에 볼 수 없는 숨겨진 폭력도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시스템, 즉 자본주의의 폭력이 그것이다. 이 시스템에서 많은 이가 고통받는다. 불교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나? 불교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라다크 참가자)

*LGBT :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성적소수자를 의미. LGBTQAI+는 기존의 남성과 여성 외 다양한 성 정체성을 뜻함.

사이 샘 캄이 세계참여불교연대 20차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사이 샘 캄이 세계참여불교연대 20차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 성 정체성·폭력과 비폭력 사이에서 중도
질문은 가볍지 않았다. 본질적인 질문이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바탕으로 현실에 뛰어드는 불자들이 늘 부딪히는 고민이었다. 속 시원한 답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과연 부처님처럼 분열 한복판, 전쟁 한복판에 앉아 지혜롭고 평화로운 중재를 할 수 있을까?

패널들은 선뜻 마이크를 들지 못했다. 도법 스님이 입술을 뗐다.

“폭력적인 문제를 다루면 폭력적인 과정을 거치고 결과를 얻습니다. 평화를 바라지만, 기대와는 다르지요. 부처님도 실패했습니다. 전쟁 한복판에 들어가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도 평생 그 길을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길 말곤 다른 길이 없어서입니다. 이 정신을 국가와 민족으로 적용한 인물이 마하트마 간디입니다. 만남과 대화, 소통 그리고 합의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력도 필요합니다. 이 길을 가는 이유는 우리가 희망하는 평화는 그런 관점과 방식과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런 노력, 최선을 다했음에도 안 되고 전쟁으로 사람들이 큰 희생을 치른다면, 그런 상황이라면 무기를 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롯이 생명평화의 길만 걸어온 도법 스님의 대답은 의아했다. “무기를 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해서다. 제한된 시간으로 많은 맥락이 축약됐다. 스님은 1998년 시작된 문정댐 사업을 두고 극명히 갈린 정부 측과 주민 대책위 입장을 조율, 20년 만에 백지화시켰다. 빨치산 토벌 등 한이 서린 지리산을 달래고자 분단 이후 처음으로 위령제를 지냈고,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로 현재의 지리산둘레길 시작을 열었다. 이후로도 늘 갈등과 아픔의 현장에 스님이 앉았다. 스님 말마따나 “세상의 아픈 곳이 세상의 중심이며, 붓다가 법을 펴는 현장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스님의 답은 무기를 들라는 게 아니었다. 노력의 최선이 기준이라면 아직 불자 스스로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보라는 경책으로도 들렸다.

사이 샘 캄도 마이크를 들었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직접 겪고 있음에도 불자로서 원칙을 지키고 있음을 강조했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는 행위를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까요? 미얀마의 경우 폭력적인 저항과 비폭력 저항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폭력만으로 군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사람을 보호하고자 무기를 듭니다. (저항 세력은) 자비심을 갖는 게 원칙입니다. 군인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요청하고, 군부와 함께하려는 사람들에게 대화의 창을 열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놓인 상황에서 영적인 스승들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갈칸데 담마난다 테라 스님이 “우리에겐 고정적인 성 정체성이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다”며 “불교에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도 없다”라고 했다. 그러자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버클리 젠 센터 수도원장 호잔 알란 세나크는 불교 교리의 재해석을 주장했다. 그는 “불교가 수백 년간 가부장제를 도모하는 역할을 했다”며 “불교 교리가 수백 년 동안 어떻게 사용됐는지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과별 워크숍에서 평화를 주제로 논의한 그룹들
분과별 워크숍에서 평화를 주제로 논의한 그룹들

| 평화·기후변화·팬데믹을 대하는 불자의 자세
분과별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평화, 기후변화, 팬데믹 등 주어진 주제를 더 세분화해서 토론하고 논의했다. 한 번의 토의로 모든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내 열띤 논의를 이어갔다.

평화를 주제로 모인 분과에서는 전쟁은 무엇인가? 전쟁의 이유는 무엇인가? 평화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평화로 갈 수 있나? 4가지 질문을 놓고 소그룹으로 나뉘어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기후변화(환경)가 주제였던 분과에서는 괴로움의 유발하는 원인으로서 기후변화를 살폈고, 변화의 방법을 모색했다. 팬데믹 분과는 인도 출신의 불교 활동가 키쇼어 투크랄 INEB 집행위원이 발표로 대체했다. 평화. 기후변화, 팬데믹을 대하는 불자의 자세는 무엇일까?

분과별 워크숍 논의 결과 브리핑
분과별 워크숍 논의 결과 브리핑

평화 분과는 호잔 알란 세나크 버클리 젠 센터 수도원장이 요약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평화에 이를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대화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사랑이 싹트는 사회는 갈등이 평화적으로 비폭력적으로 해결되는 사회입니다. 좋아하지 않더라도 서로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가진 인간성, 즉 불성에 기초합니다.”

기후변화 분과는 소비주의의 문화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는 현재 기후변화로 나타났고 인류는 직접적인 괴로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기업들에 대한 세금, 기부금으로 매일 한 그루씩 나무를 심는 방법, 에코템플 운영, 그린워싱에 대한 제동 등 개인의 실천이 대중운동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키쇼어 투크랄 INEB 집행위원은 팬데믹이 초래한 분열, 즉 불평등을 언급했다. 여성, 트렌스젠터, 이주노동자, 어린이 등 약하고 소수 그룹이 불평등 피해자라고 했다. 가정 폭력이 많아졌고, 일터로 돌아온 여성이 적었으며, 20억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번아웃을 비롯한 정신적 스트레스 등 분열이 불러온 고통을 나열했다.

“INEB에 제안합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놓인 그룹에 교육과 보건을 지원하고, 아동인권을 옹호하는 단체를 지원하며, 여성들이 더 자존감을 느끼고 보호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INEB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키쇼어 투크랄, 정토회 제공
INEB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키쇼어 투크랄, 정토회 제공

| ‘선언뿐인 선언문’이 되지 않기 위해
INEB는 10월 29일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평화, 기후, 팬데믹, 성평등, 사회참여, 영적인 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의 기회 제공 등 지원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선언했다.

분쟁 지역에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서 증진하고, 분쟁을 통찰하는 불교 분석 모델을 개발하며, 환경의 고통을 일으키는 구조적 문화적 원인을 지속적으로 조사하면서 종교간 기후 생태 네트워크로 영적 감수성을 가진 활동가를 양성하는 동시에 에코템플 프로젝트로 공동체 개발모델을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풀뿌리 차원에서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기구를 지원하고, 성평등과 사회적 포용에 공개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INEB 모든 구성원이 성평등 관련 대화와 교육 기회를 만들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 비구니 수계가 허용되지 않은 점을 인정하고, 비구니 수계를 지지하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한편 대승불교 비구니 승가와 협력해 교육과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등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겠노라 선언했다.

나아가 자살예방, 호스피스 등 인류의 정신 건강과 영적인 건강을 돌보는 운동을 강화하며, 서양 정신건강학과 불교 사상 그리고 수행을 교차해 새로운 형태의 영적인 치료법을 조사하고 설명하겠다고 했다.

평화를 심도있게 논의 중인 분과별 워크숍 소그룹
평화를 심도있게 논의 중인 분과별 워크숍 소그룹, 정토회
평화를 심도있게 논의 중인 분과별 워크숍 소그룹, 태국

선언문은 사실상 사회적 이슈 전 분야에 걸쳐 불교를 접목해 참여하겠다는 서원이다.

1989년 태국에서 시작한 INEB은 25개 국가에서 개인과 단체가 뜻을 같이하고 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사회 활동과 개인의 불교 수행을 통합하는 게 목적인 독립단체로 한국의 정토회 등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불교를 실천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연대 중이다.

정토회가 기반인 JTS, 에코붓다를 비롯해 부탄의 소녀와 여성을 교육하는 부탄 비구니 스님 재단, 스리랑카의 와폴라 라훌라 불교연구소, 인도네시아의 불교 재단, 라오스의 비영리 사회적기업 RDA, 미얀마와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 그리고 미국 수감자들을 지원하는 버클리 젠 센터, 일본 불교도네트워크(JINEB), 말레이시아 불교선교협회, 테라와다 비구니 승단 복원에 앞장서고 있는 스리랑카 인권위원회 위원, 태국 트랜스젠더 연합 창립자이자 아시아태평양 트랜스젠더네트워크 코디네이터…. 이들은 한국에서 열린 INEB 20차 컨퍼러스 현장에 참가했으며, 열의도 남달랐다.

그래서다. 기조 연설과 패널 토론, 분과별 워크숍 등 여러 논의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론을 도출한 INEB의 선언문은 ‘선언뿐인 선언문’으로 보기 어렵다. INEB는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에 힘을 실었다.

“10년 전략 기획에 반영된 것처럼, 이 선언문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만들 것을 만장일치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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